감사받던 RIST 직원, 왜 목숨 끊었나

유족 "죽음으로 내 몬 강압적 감사 때문"... 포스코측 "우리 책임 아냐"

등록 2013.10.25 10:15수정 2013.10.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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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직원 이아무개(43)씨가 감사를 받던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어 파장이 일고 있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직원 이아무개(43)씨가 감사를 받던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어 파장이 일고 있다. ⓒ 조정훈


포스코가 전액 출자해 설립한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의 한 직원이 최근 감사를 받다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사실이 밝혀져 강압 감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족들은 "강압적인 감사가 원인을 제공했다"면서 경찰의 철저한 수사와 포스코측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포항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7일 포항시 남구 대잠동의 한 원룸에서 RIST 직원 이아무개(43)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이날 오전 11시 40분경 회사에서 나와 여자친구와 지인에게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유서와 문자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이씨의 유족들은 이씨가 지난 7월부터 3개월간 포스코 정도경영실의 감사를 받아왔으며 사망하기 3일전부터는 집중적인 감사에 시달려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씨는 자신이 개설한 통장의 모든 거래내역을 요구받았고 감사원들은 심지어 그의 집까지 따라왔다는 것이다.

이씨의 지인과 직장 동료들에 따르면 그에 대한 집중적인 감사는 지난 15일 오전부터 시작됐다. 이씨는 그날 오전 자신의 사무실에서 물품구매에 대한 감사를 받고 오후에 휴가를 내고 퇴근했다. A감사는 이때부터 이씨의 구매자료와 거래업체에 대한 자료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16일 출근하자마자 감사실로 호출돼 모든 거래통장 목록과 5년 치 거래내역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자신의 부인이 4년 전 암으로 사망해 자녀들의 저녁을 챙겨줘야 한다며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도망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해 "따라올테면 따라와도 좋다"고 하자 2명이 이씨의 차량에 동승해 집까지 따라왔다는 것이다.

a  포스코가 전액 출자한 포항산업과학기술원 직원 이아무개씨가 감사를 받으면서 감가원과 함께 자신의 집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이씨는 감사에 대한 모멸감을 느끼고 자살했다.

포스코가 전액 출자한 포항산업과학기술원 직원 이아무개씨가 감사를 받으면서 감가원과 함께 자신의 집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이씨는 감사에 대한 모멸감을 느끼고 자살했다. ⓒ 조정훈


이씨가 아파트에 도차하자 1명은 아파트 입구를 지켰고 1명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씨의 집까지 따라가 확인하기까지 했는 게 유족들의 전언이다. 마침 이씨의 어머니가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아이들에게 저녁을 챙겨줄 것을 당부한 후 바로 회사로 돌아가 오후 9시까지 감사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동생은 "오빠는 감사를 받으면서 죄인취급을 받았고 온갖 모욕과 협박이 이어지자 금품을 받았다고 허위 자백을 하고 통장 거래내역을 제출하겠다는 확인서에 사인을 한 다음에야 퇴근할 수 있었다"면서 "퇴근 후 집에서 한참동안 흐느끼며 울었다"고 전했다.


이씨의 한 동료는 "17일 오전 이씨가 동료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며 감사 스트레스로 인해 허위진술을 했으니 이에 대한 징계를 받겠다고 말했고, 동료들이 거짓 진술을 하지 말라고 위로하기까지 했다"면서 "감사실로 들어가 감사를 받다가 오전 10시 30분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죄인취급 하느냐'며 울면서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회사 연구동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동료들의 눈을 피해 자신의 여자친구 집으로 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자살하기 직전에 "너무 감사가 죄인취급 하니까 싫다"며 "애들한테 미안하고 부모님께 미안하고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썼다. 이어 "내 몸은 1200만원..."이라며 자신이 정리하고 남은 돈 1200만원을 아이들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유족들은 이씨에 대한 무리한 감사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포스코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씨의 동생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엄마도 없는 애들을 놔두고 죽었겠느냐"면서 "칼만 안 들었지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자살이 아닌 타살이다, 감사했던 분들이 와서 해명하고 사과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의 한 직원은 "연구과제 중 재료비 등 구매를 많이 한 직원들을 타겟으로 심도있는 감사를 진행했다"고 말했고, 또다른 직원은 "투서에 의한 조사도 아니고 범법자도 아닌데 금융거래까지 요구하는 등 고압적인 감사가 이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RIST의 이번 감사는 5년마다 하는 일반감사였다. 자체 감사직원은 3명뿐이어서 인력이 부족했다. 한 관계자는 "정식 공문을 통해 포스코 정도경영실에 감사직원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RIST의 한 관계자는 "유족들은 경찰에서 조사한 이야기만 듣고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감사를 진행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포스코 정도경영실에서 감사한 내용에 대해 RIST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측은 유족들의 주장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면서 녹음을 하기 때문에 강압은 없었다"며 "이씨가 사망하기 전날인 16일 집에 따라간 것은 '늦어서 우리 집에 같이 들렀다가 저녁이나 먹고 하자'고 해 따라간 것이다"라고 밝혔다.

    
a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서 감사를 받던 이아무개씨가 쓴 유서 내용. 강압적인 감사에 대한 지적과 함께 자신의 자녀들과 부모,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을 적었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서 감사를 받던 이아무개씨가 쓴 유서 내용. 강압적인 감사에 대한 지적과 함께 자신의 자녀들과 부모,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을 적었다. ⓒ 조정훈


포스코 측은 이씨가 사망하기 전 작성한 유서에 대해서도 "유서에 대해 이런저란 말을 하기는 힘들지만 일방적으로 강압적이었다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것은 맞지 않다"며 "통장거래내역을 요구한 것도 서면 동의를 받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또 "유가족들이 포스코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데 법적인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우리도 RIST에서 요구해 지원한 것이지 우리 자체 감사가 아니기 때문에 포스코를 끌어들이는 것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구인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구지부장은 "포스코 직원이 감사를 진행하면서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포스코에 당연히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감사는 매뉴얼에 따라야 하고 유족들이 요구하면 감사매뉴얼을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3월에도 감사를 받던 직원이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이 직원은 올해 초 실험실 에어컨의 실외기를 수리하던 중 화재가 발생해 감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직원은 장기간 감사를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포스코의 감사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포스코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자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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