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불석권 독서습관으로 이룬 노예해방의 꿈

노예해방의 아버지 링컨의 독서 습관

등록 2013.10.25 10:01수정 2013.10.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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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성년이 되었을 때에도 아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 가지, 읽고, 쓰고, 외우는 것은 계속해 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 뒤로 학교에 다닌 적은 없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계속해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필요에 따라 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노예해방의 아버지이자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1809∼1865)의 말이다. 링컨은 1809년 2월 12일 켄터키주의 외딴 오두막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그의 말처럼 읽고, 쓰고, 외우는 일을 평생 계속했다. 특히 몇 마일이나 떨어진 곳까지 책을 빌리러 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독학으로 법률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으며, 25세 되던 해에는 일리노이 주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850년대를 통하여 노예문제가 전국적인 문제로 크게 고조되자, 노예반대를 표방하며 미국 공화당에 입당했다. 1854년 정적 스티븐 더글러스가 미주리 타협안을 폐기하고 노예제를 각주의 자율에 맡기는 법을 제정하자, 노예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연설을 함으로써 전국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

1858년 일리노이 주(州) 상원의원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더글러스와 치열한 논전을 전개함으로써 더 유명해졌다. 링컨은 이 선거에서는 패하긴 했으나, 7회에 걸친 공개토론으로 정치인으로서 명성을 쌓았으며, 1860년 대통령선거에서 40%가 못되는 지지율로 제16대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862년 남군이 수세로 몰린 때를 노려 노예제를 폐지한다는 노예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공표하고 외국의 남부연합국 승인을 저지함으로써, 북부와 해외여론을 자기편으로 유도하여 전황을 일거에 유리하게 전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국립묘지 설립 기념식 연설에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전쟁 중인 1864년 대통령선거에서 그랜트 총사령관이 이끄는 북군의 승세를 따라 재선에도 성공하였다.

전쟁이 종막에 가까워짐에 따라 관대한 조치를 베풀어 남부의 조기 연방 복귀를 바랐으나, 남군이 항복한 2일 후인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연극관람 중 존 윌크스 부스가 쏜 총에 맞아 이튿날 아침 사망했다.

링컨은 어렸을 때 삼면으로 된 오두막집에 살면서 나이프와 포크가 없어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을 만큼 '처절한 가난'을 겪었다. 아버지 토머스 링컨은 '이름을 서툴게 사인할 때 외에는 글자를 써본 적이 없는' 사실상의 문맹이었고, 목수와 농장 일꾼으로 전전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어머니 낸시 행크스는 자식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어렸을 때부터 독서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링컨이 아홉 살 때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링컨은 새 어머니를 맞이하게 된다. 다행히도 새어머니 사라 부시 존스턴은 링컨을 친자식처럼 사랑하며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성경> <이솝이야기> <천료역정> <신밧드의 모험> 등 많은 책을 구해다 주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명연설문을 만드는 링컨의 독서습관

링컨은 항상 많은 책을 읽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책이나 신문을 빌려 읽었고, 그것도 부족하여 당시 나와 있던 인쇄물은 모두 빌려 읽었다.


"어느 날 링컨은 나무뿌리를 뽑아주고, 옥수수 수확을 도와주는 대가로 이웃 농부에게 몇 권의 전기물을 빌렸다. 그 중 하나가 파슨 윔즈의 <워싱턴 전기>였는데, 책에 완전히 매료 되어 밤늦게 까지 읽다가 날이 밝으면 곧바로 읽을 수 있도록 통나무 사이에 끼워 놓고 잠이 들었다. 그날 밤 폭풍우가 몰아쳤고, 책은 흠뻑 물에 젖어버렸다. 책 주인이 책을 받지 못하겠다고 해서 그는 3일 동안 꼴을 베어주는 것으로 책값을 대신해야 했다." - 데일 카네기의 <링컨 당신을 존경합니다>. 임정재 역

스물두 살 때 집을 떠난 링컨은 뱃사공, 가게 점원, 장사꾼, 우체국장, 측량기사 등으로 일하면서도 열심히 책을 읽었다. 스물다섯 살 때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철저히 독학에 열중했는데, 늘 젊은이들에게 "책을 구해서 읽고 공부하게. 책을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은 어디서나 다 똑같네.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늘 마음에 새겨두게"라고 조언하곤 했다. 성공하겠다는 굳은 결심과 의욕, 그리고 엄청난 지식욕과 독서욕이 젊은 링컨이 지닌 자산이었던 셈이다.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책을 읽으며 평생 독서의 길을 걸었던 링컨의 독서습관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항상 책을 가지고 다녀라. 링컨은 종종 생가몬 강의 숲과 산책로를 거니는 것을 즐겼는데, 그때에는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책장을 펼쳐 들었다. 항상 책을 가지고 있다가 틈만 나면 읽었는데, 심지어 일을 하러 나갈 때에도, 말에게 꼴을 먹일 때에도, 식사를 할 때에도 5분이라도 짬이 나면 책을 펼쳤다.

둘째, 좋은 구절은 메모하고 암기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어라. 링컨은 책을 읽다가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늘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다. 종이가 없을 땐 널빤지에라도 그것을 적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 스크랩북으로 만들어 항상 가지고 다니며 수많은 장시(長詩)와 연설문을 암기할 때 까지 읽고 또 읽었다.

셋째,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골라 읽어라. 링컨은 그의 친구 겔소가 읽어주는 <햄릿>과 <맥베스>를 들은 후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어떤 작가의 작품보다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대통령이 되어 남북전쟁으로 인한 고뇌와 번민으로 마음이 무거울 때에도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즐겨 읽었고, 정무로 바쁜 와중에서도 셰익스피어 권위자들과 세익스피어의 극에 대해서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그의 작중 인물들의 명연설을 통해 후에 유명한 연설문들을 작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넷째,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책에 몰두하며 읽어라. 그는 일을 할 때나 길을 걸을 때에도 늘 한손에는 책을 펴든 채 읽곤 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 있으면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책에 몰두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큰소리로 책을 읽었고, 가끔씩 책을 덮고 방금 읽은 내용에 대한 느낌을 적고 분석하며, 다시 이해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는 이런 독서습관을 통하여 수많은 명연설문을 만들어 냈고, 마침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노예해방의 꿈을 이루었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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