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과 대형유통매장이 나란히 들어 선 대전 중구 문화동 도로, 이 곳은 상습적인 교통체증구간이다.
장재완
대형 시설물을 교통 혼잡의 원인자로 보고 시설물 소유자에게 징수하는 '교통유발부담금 제도'가 1990년부터 도입돼 시행 중이다.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연면적 1000㎡ 이상의 시설물에 부담금을 징수해 대중교통 확충과 교통수요관리 대책 등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서울시의 경우, 3만㎡ 초과 대형시설물이 전체 발생 교통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에 달한다. 2009년 서울시가 2300여개 시설물로부터 거둬들인 교통유발부담금은 총 804억 원에 이른다. 다만 이는 교통혼잡비용 7조5000억 원 대비 1%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엔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에서도 백화점을 비롯한 대형 상업시설들로 주민들이 불편을 겪으면서 교통유발부담금을 징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산 기장의 '부산 프리미엄 아울렛'이나 제주시 연동 '신라면세점' 모두 심각한 교통 정체의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교통유발부담금 납부 등 사회적 책임에선 벗어나 있다. 그럼, 이들 업체에게 교통유발부담금을 물게 하면 상황은 나아질까.
안타깝게도 교통유발부담금은 시행 이후 단 한 차례도 인상되지 않아 23년 전과 동일한 단위부담금을 적용 받고 있다. 매년 매출 증가를 기록하는 기업들이 계속 동결된 교통유발부담금을 '부담'으로 느낄 리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9월 9일 정부가 교통유발부담금을 올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1㎡당 350원인 단위부담금을 2014년부터 올려 2020년까지 최대 1000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도시교통정비 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9월 9일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인상안은 기업의 눈치만 살핀, 지나치게 느슨한 안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매년 인상안 마련을 연기했던 것은 업체들의 경영난을 덜어준다는 명목에서였다.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3차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정부는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을 한 차례 더 미루며 그 근거로 '기업의 부담'을 언급했다.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도 더 이상 이를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올해 가까스로 인상안을 마련했다. 국토교통부는 백화점을 비롯한 업체들과도 협의를 거쳤다고 했지만, 부담금 인상에 반대하는 업계의 볼멘소리는 여전했다. '손님 줄었는데 교통유발부담금 폭탄'이라는 제목의 8월 16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경기 침체에 따른 매출 감소와 출점(出店) 규제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데 교통유발부담금까지 크게 올라 경영에 부담이 될 것 같다"는 한 대형마트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반대로 교통 혼잡을 일으키는 원인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한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오히려 대형마트 등으로부터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이 생활필수품의 가격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체인스토어협회)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만 들릴 뿐이다. 전국에서 교통유발부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시설물은 영등포 타임스퀘어로 2011년에만 10억1149만 원을 냈다. 이 건물은 그 해 1조5000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원인자 부담 원칙'이라는 제도의 취지 바로 살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