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자신의 고민을 법륜 스님에게 질문하는 남성 분.
이준길
결혼 8년차인데 권태기라 남편의 얼굴만 봐도 화가 나는데 참고만 살아야 하는지 묻는 분, 3년 동안 육아 휴직을 하고 내년에 초등학교 교사로 복귀하는데 자신감이 없고, 자신의 아들을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보내도 되는지 묻는 분, 일본에서 살고 있는데 요즘 한일관계가 좋지 않아 연일 한국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고 혐한 시위를 하는 것을 보면 무섭기도 한데 한국인으로서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 분,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겠지만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된다는 61세의 남자 분, 법륜스님의 멘토는 누구인지 묻는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 세상이 갈수록 흉흉해져 지하철에서 뒤에 남자가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두려운데 이를 없애는 방법을 묻는 분, 매사에 부정적이고 학교를 가기 싫어하며 모든 걸 남 탓 하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둔 엄마의 처신 방법 등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가족 사이에도 쉽게 꺼내놓기 어려운 질문들을 스님 앞에서는 편하게 꺼내 놓았다. 법륜 스님의 신뢰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중에서 한 분의 질문과 대답을 자세히 소개한다.
"어렸을 때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지 사람을 대할 때 낯설음이 심합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사람들에게 마음이 잘 열리지 않습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나이 많은 분들에게는 마음을 잘 여는데 나이 어린 분들에게는 마음을 잘 못 엽니다. 그래서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됩니다. 한 사람만 좋아하고 잘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법륜 스님은 이렇게 답하고 다시 질문자에게 되물었다.
"자기가 가진 성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밥과 김치를 먹는 음식 습관도 빵을 먹는 음식 습관으로 바꾸려고 하면 어느 정도는 바뀌지만 늙으면 다시 돌아갑니다. 담배 피웠던 습관도 바꾸기가 어렵고 화를 벌컥벌컥 잘 내는 것도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생각은 바꾸기가 쉽지만 마음은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무의식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기 어려우니까 그냥 생긴 대로 살던지, 바꾸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전자 충격기로 지져가며 생존본능까지 위협해야 바뀔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천성을 바꿔볼 각오가 되어 있나요?"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긴 대로 살라는 겁니다. 젊은 여자는 부담스럽고 늙은 여자가 편하다면, 한 다섯살 정도 나이 많은 여자랑 사귀면 됩니다. 업식은 못 바꾸면서 왜 젊은 여자한테 자꾸 관심을 가져요? 관심을 갖지 마세요. 나이 든 편안한 여자 분을 만나면 여자 분도 좋아합니다. 알았지요? 부인은 꼭 나이가 어려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생각 바꾸기가 쉽지 업식 바꾸는 건 어렵거든요.
바로 결혼하겠다 하지 말고 누나랑 편안하게 같이 지내다가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하면 됩니다. 큰 종이는 큰 구멍에다 바르고 작은 종이는 작은 구멍에다 발라야 일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큰 구멍에 작은 종이를 바르려면 종이를 이어야 됩니다. 작은 구멍에 큰 종이를 바르려면 종이를 잘라야 된단 말이죠. 그래서 젊은 여자는 아예 상대를 안 하는 겁니다. 찾아와서 얘기하면 어쩔 수 없지만요.그리고, '나는 한 여자만 보고 영원히 살고 싶다' 이건 이치에 안 맞습니다. 얼음 구슬을 가지고 영원히 안 녹았으면 좋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나만 여자를 자꾸 바꾸지 않으면 됩니다. 나는 이 여자를 좋아하는데 그 여자는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닙니다. 한 여자만 좋아하겠다는 원칙을 어긴 것도 아닙니다. 그 여자가 떠나면 나는 다시 새로운 여자를 만나면 됩니다. 그 여자가 떠나줌으로 해서 나는 한 여자를 좋아하겠다는 원칙도 지키고 새로운 여자를 만날 수도 있게 되는 겁니다(청중들 박수).나를 싫어해서 그 여자가 떠난 것은, 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내 원칙을 어긴 것이 아니니까 떠난다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떠나주면 결과적으로 나에게 이익입니다. 왜? 나는 새로운 여자를 만날 수가 있게 되기 때문에(청중들 웃음). 같이 있어도 좋고 떠나도 좋다. 괴로울 일이 없죠? 이것이 해탈로 가는 길입니다. 매달리는 게 사랑이 아니라 그 여자가 다른 남자가 좋다면 보내주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괴로움이 없습니다. 집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겁니다.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 아니라 집착이 눈물의 씨앗입니다. 대가를 바라기 때문에 과보가 따르는 겁니다."명쾌한 답변에 청중도 크게 웃고 질문자도 환하게 웃었다. 질문과 대답이 무려 2시간 반 동안이나 진행되었음에도 지루함 없이 한편의 공연을 본 것 같이 쏘옥 빨려 들어간 느낌이었다.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 속에서 그 감동이 함께 전해졌다.
오후 7시 30분부터는 아주대학교 율곡관에서 50회 연속강연 중 13번째 강연이 열렸다. 법륜 스님의 스케줄은 쉴틈 없는 강연의 연속이었다. 아주대학교에서는 청년 대학생들을 위해 '방황해도 괜찮아'라는 주제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다. 483석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641명이 참석하여 복도와 계단에도 청년들이 빈자리 없이 앉았다. 간혹 머리가 희끗한 늙은 청년들도 보였지만, 대부분 대학생 또는 20대 청년들이었다.
스님은 질문을 받기에 앞서 통찰력과 지혜가 무엇인지 먼저 소개해주며 대화의 장을 열었다.
"고생을 많이 하게 되면 통찰력이 생깁니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험이 짧기 때문에 한 부분만 보게 되는데, 고생을 하게 되면 위만 보던 사람이 아래도 보고, 앞만 보던 사람이 뒤도 보고, 왼쪽만 보던 사람이 오른쪽도 보고, 이렇게 평소에 못 보던 여러 면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통찰력이 생기는 겁니다. 성경에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는 말이 있지요. 어려움에 처해야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 편안한 상태에서는 잘 안 들립니다. 고생이 곧 능력을 배양해주고 통찰력을 갖게 해줍니다. 통찰력이 지혜입니다. 지혜를 갖게 되면 한쪽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저쪽면도 보게 되기 때문에 덜 괴로워지고 행복도가 높아집니다. 자, 이런 관점에서 어떤 고민이든 함께 나눠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