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판에 빨래를 비벼 옷을 빨았다. 수돗물을 아끼느라 빨래를 빨은 더러워진 물에 또 빨았다수돗물 값이 아까워 옷을 빨아서 더러워진 물에 다른 빨래를 넣어 빨았다.
이월성
수도나 변소를 집집마다 만들어 놓을 형편들이 못 되어, 공동변소에서 줄 선 사람들이 용변을 보는 사람더러 "빨리 나오라" 소리치는 풍경이 잦았다.
학생들은 연필을 아끼느라, 몽당연필에 침 발라가며 마분지로 된 갈색 공책에 글을 썼다. 침은 고무지우개 여서 공책에 침을 발라 문지르면 구멍이 뻥 뚫린다. 이 뚫어진 공책 구멍으로 세상을 내다보았던 추억이 있다.
아낙네들은 떡판과 팥죽항아리를 이고 부두 노동을 나가는 노동자를 따라가서 부두에서 팔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힘들고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던 곳이지만 인천 발전의 심장이었다. 인천의 내일을 바라보던 눈들이 반짝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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