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수거 어르신에게 떨어진 '세금 폭탄'

[등골 브레이커②] 2013년 세법개정안 서민·중산층 세부담 증가 논란

등록 2013.11.18 14:06수정 2013.11.1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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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 대란, 가계 부채 대란, 물가 대란까지... 서민들의 시름은 하루하루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부자감세' 기조를 철회하지 않은 채, 세수 부족을 이유로 각종 복지 공약을 철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정부·여당은 각종 범칙금 강화, 중소기업 부담금 강제, 세무조사 강화 등으로 부족한 세금 메우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이 '국민 등골 브레이커'로 둔갑한 상황, <오마이뉴스>가 시리즈 기획으로 짚어봤습니다. [편집자말]
 2013년 세법개정안이 통과되면,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의 사정은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세법개정안이 통과되면,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의 사정은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조정식 의원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홀로 살고 있는 정아무개(77) 할머니는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김 할머니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폐지 등을 수거해 고물상에 전달한다. 이를 통해 받는 돈은 1만3000원 남짓이다. 한 달에 25만 원가량 번다. 고스란히 사글세 내는 데 다 쓴다.

노령연금 10만 원이 한 달 생활비다. 정 할머니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 두 끼만 식사한다. 나머지 한 끼는 우유 등으로 때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정 할머니의 사정이 내년에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 세법(소득세법 등 14개 세금 관련 법안의 묶음) 개정안 때문이다. 여기에는 재활용 폐자원에 대한 의제매입세액공제율을 현재의 절반수준으로 축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고물상이 부가가치세를 신고할 때 납부하는 세금이 늘어난다. 자연히 고물상이 폐지 수거 어르신에게 주는 돈도 줄어든다.

2013년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서민 등골 브레이커' 논란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세법개정안은 지난 8월 8일 첫 발표 후 세수 확보를 위해 서민·중산층의 세부담을 늘린다는 거센 비판이 일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서둘러 재검토를 지시했지만, 큰 뼈대는 바뀌지 않았다. 세법개정안에 대한 본격적인 국회 논의를 앞두고, 세법개정안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리지갑은 '봉'? 월급쟁이 세부담만 크게 늘어

세법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리지갑'을 가진 월급쟁이 위주로 세부담이 증가하는 것이다. 정부는 당초 연 3450만 원 이상 버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고 했다가, 여론에 밀려 세부담 기준선을 5500만 원으로 높였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총급여 5500만 원 이하 근로소득자는 세부담이 증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근로자의 세부담은 정부 예산보다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달 발간한 <2013년 세법개정안 분석>에서 "세부담이 늘어나는 근로소득자의 비중(13.2%)이 실제로는 더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2011년 자료로 통계를 마련했기 때문에, 그동안 월급이 오른 월급쟁이의 세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비·교육비 공제 축소는 실질적인 세부담 증가로 연결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근로소득자만 적용되는 근로소득공제의 축소와 특별공제의 세액공제 전환으로 인해, 전문직·자영업자 등 종합소득자에 비해 근로소득자의 세부담이 크게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2015~2018년 근로소득세는 연 평균 1조2283억 원 증가하는 반면, 종합소득세는 연평균 174억 원 증가하는 데 그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세법개정안을 두고 "근로소득자 위주의 세부담 조정과 세수 확보 측면에 치중된 개편안에 머물고 있다"면서 "정책 취지와 효과 등을 충실히 검토하고 신중하게 추진했다고 보기에 미흡한 점이 많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종합소득자의 탈루소득 축소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근로소득자의 공제를 축소하는 것은 수평적 과세형평성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이에 대한 보완조치 없이 근로소득자의 미미한 세부담일지라도 증가시키는 것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야기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세법개정안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재벌·대기업이 주로 내는 법인세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2014년 1277억 원의 법인세가 덜 걷힌다. 2014년부터 5년간 이렇게 줄어드는 법인세는 8669억 원에 달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대규모 기업에 대한 감면정도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법인세 개편은 감면제도 정비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식점도 '세금 폭탄'... "조세 저항 일어날 것"

유리지갑이 아니라 해도 일부 영세자영업자의 세부담도 늘어날 전망이다. 농수산물 의제매입세입공제 한도 설정 탓이다. 농수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제도는 식당이 구입한 농수산물의 일정비율만큼 부가가치세를 깎아주는 제도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농산물 구입비용의 8/108만큼 식당이 납부해야 할 부가가치세가 줄어든다. 하지만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통해 매출액의 30% 안에서 같은 비율을 공제하기로 했다. 사단법인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세법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평균 104.4%의 조세부담 상승이 예상된다. 외식업중앙회 소속 한 횟집 사장의 증언이다.

"한 달에 15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여기서 각종세금·인건비·임대료를 빼고 나면 400만 원가량 남는다. 여기에서 부가세·종합소득세 등 기타 잡비를 빼고 나면 150만 원 정도 남는다. 가뜩이나 어려워 가계를 매매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저히 운영할 수 없는 적자 속에서 빚만 늘어날게 뻔한 일이다. 월 30만 원 이상 연간 350만 원 이상의 세금의 증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중산층·서민 죽이기 정책이다."

외식업중앙회는 "전체의 77%가 넘는 음식정의 경우,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면서 "의제매입세입공제 한도 설정은 평균 연 소득 1500만 원대에 불과한 자영업자에 대한 세금 폭탄이다, 음식업 종사자의 조세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합리적 정부 정책"이라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세법개정안의 문제를 지적한 조정식 민주당 의원은 "담세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부자는 놔둔 채, '십시일반'을 거론하면서 서민·중산층 호주머니부터 털 생각을 한다면,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이 이러한 세법개정안에 동의할 수 있겠느냐"면서 "조세정의에 대한 고려 없이 만들어진 세법개정안은 필연적으로 국민들의 조세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세법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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