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대덕산'... 강원경찰청, 민간인 공작수사 파문

2009년 7월부터 전교조 강원지부장 등 사찰... 강원경찰청 "법률에 의거해 실시"

등록 2013.11.20 20:24수정 2013.11.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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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서 경찰이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공작 수사'를 벌인 사실이 적힌 문건들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강원희망신문>은 지난 11일 "강원지방경찰청 명의의 '수사보고', '내사첩보' 공문에 의하면 경찰청 보안과는 2010년 춘천의 모 시민단체 대표와 노동조합 간부의 정상적인 학술, 시민단체, 노동조합 활동을 반미·반정부, 친북 활동으로 규정하고 은밀하게 내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 보도 이후, 지역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경찰 공문은 한 익명의 제보자가 사찰 대상자들에게 보내면서 공개됐다. 이 공작 수사 공문들은 2009년 7월과 2010년 11월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대부분 3급 비밀로 분류돼 있다.

 전교조 문태호 강원지부장을 대상으로 한 공작 수사 보고서 내용 일부.
전교조 문태호 강원지부장을 대상으로 한 공작 수사 보고서 내용 일부.성낙선

경찰, 시민사회단체 대표 일거수일투족 감시 활동 보고

강원지방경찰청이 공작 수사를 벌여온 대상자들은 전교조 강원도지부장인 문태호씨를 비롯해,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 온 강원도 내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의 대표와 활동가들이 대부분이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이들의 신상정보를 파악해 보고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문태호 지부장의 경우, 주변 사람들의 동향까지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전교조 강원지부 홈페이지와 개인 블로그 검색을 통해서 66건의 문서를 입수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애초 공작 수사 대상자들에게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찾아내 사법 처리할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건은 "(사찰 대상자에게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점 구증되면 사법 처리 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경찰은 먼저 문태호 지부장을 내사하는 과정에서, 문 지부장이 '학생 학부모 교육원 자치와 교육자치 방해 교과부 규탄 기자회견' 등 여러 집회와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실을 보고했다.


경찰은 문 지부장을 내사한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공작 진행 보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하고는 문 지부장이 기자회견에 참석한 뒤에 "특이동향 없이" 종료 또는 해산했다고 적었다. 또 앞으로 취할 '조치 및 의견'을 달아 "최근 활동 사항에 대한 지속적이고 세밀한 수사를 진행"하는 한편, "수시 접촉 인물 등에 대하여 지속적인 수사로 구증자료를 확보하고자 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보고서에는 또 경찰이 채증한 것으로 보이는 기자회견 사진도 첨부돼 있어, 문 지부장이 행사에 참가할 때마다 따라다닌 것을 알 수 있다. 문 지부장에 따르면 이 행사들은 모두 합법적으로 열렸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다른 수사 대상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도내 한 시민단체의 공동대표를 지낸 인물과 관련해서는, '내사첩보' 보고서에 그가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을 적시하고 "반정부 활동이 예상된다"고 적었다. 경찰은 그 보고서에서 그가 "MB정부 퇴진 운동, 국가보안법 철폐 등 반미·반정부·친북 활동이 예상"된다며, "민주노동당과의 연대 활동 내용 등을 내사하여 혐의점 발견 시 공작으로 전환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이번에 공개된 경찰 공작 수사 문서에는 특정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한 '종합공작계획서'도 포함됐다. 이 계획서는 공작명을 "대덕산" 등으로 정하고, 음어까지 공유하면서 비밀을 유지했다. 공작 목적으로는 "'전농 강원도연맹', '춘천청년회' 조직 실체 규명·핵심 활동가 사법 처리"로 적고 있다.

이 계획서에는 또 '공작 요령'으로 경찰인 공작관과 협조자(수사 대상자에게 근접할 수 있는)와의 관계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공작관과 협조자의 관계를 친인척 관계로 가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문서는 공작을 벌이는 기간까지 특정해 놓았다.

 전농강원도연맹 등을 대상으로 한 종합공작계획서 내용 일부.
전농강원도연맹 등을 대상으로 한 종합공작계획서 내용 일부.성낙선

공작 수사 대상자들 "불법 사찰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

경찰이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이고 세밀한 수사"를 벌여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려는 공작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사자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강원도 내 시민사회단체들은 19일 강원지방경찰청 정문 앞에서 '시민단체 불법 사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강원지방경찰청에서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해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사찰을 진행해온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찰의) 사찰 내용을 보면 개인의 인적사항은 물론, 합법적인 단체의 활동이 마치 불법인 것처럼 명시되어 있다"며 "정당하게 진행된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감시하는 것"이 오히려 불법임을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불법 사찰은 공익적이고 비판적인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왔음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중대한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들은 또 "공적인 권력은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라고 주어진 것이지 국민을 불법으로 사찰하고 마음대로 휘두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의 인권을 짓밟는 권력, 국민의 머리 위에 서고자 하는 권력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것"을 경고했다. 시민단체들은 경찰의 불법사찰과 관련해 형사상, 민사상의 법적 책임을 물게 한다는 방침이다. 또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등과 연대해 이번 불법 사찰의 진상을 반드시 규명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공작 수사 대상자들이 참석해, 경찰의 불법 사찰과 공작 수사 행위를 맹렬히 비난했다. 전교조 문태호 강원지부장은 "경찰 문건을 보고 나서 어디 가서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럽고 두렵다"며 "또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는 말이 어떻게 반국가 행위로 보고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 문건을 보면) 내가 해직교사 복직과 일제고사 폐지를 요구하고, 고교평준화 실현하자고 한 것도 반미 반정부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러면 고교평준화를 처음으로 시행한 고 박정희 대통령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일제고사 폐지를 주장했는데, 현 박근혜 정부에서 일제고사를 폐지했다"며 "그러면 박근혜 정부도 반미 반정부 활동을 한 셈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교조가 존재하는 이유는 정부의 교육 정책이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엄밀하게 분석하고 그것이 잘못되었으면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법이 보장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내사를 하고 공작을 하고, 그 결과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몰아가려고 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과 정치가 온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의 공작 수사 대상자 중의 또 다른 한 명인 전농강원도연맹 전기환 의장은 "문서를 보는 순간 경악했다"며 "이 사건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문서에) 공작이니 협력자니 하는 말이 나오는데, 협력자는 돈을 줘서 프락치를 심었다는 얘기다"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경찰의 내사를 받았는데 이런 것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공작까지 해서 (시민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시키는 것이 경찰들이 할 일인지"를 되묻고, "이 땅에서 국민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공작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원지방경찰청 앞에서 '불법 사찰, 공작 수사'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활동가들.
강원지방경찰청 앞에서 '불법 사찰, 공작 수사'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활동가들.성낙선

한편, 강원지방경찰청은 경찰의 시민단체 사찰 보도가 나간 직후, 민간인을 대상으로 공작 수사를 벌인 것과 관련해 "법률에 의거해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사람만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자신들이 진행한 수사가 불법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경찰 내부의 비밀 문건이 외부로 유출된 것과 관련해서는 "현직 경찰관 중에 한 명이 시간외 수당 부당 수령 등으로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받게 되자 앙심을 품고, 함께 근무했던 동료를 무고하기 위해 보안문서를 외부로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해당 경찰을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해당 문건이 2010년에 작성된 것이라는 점을 들어 "현재 문서 내용의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국가보안법 #공작 수사 #사찰 #내사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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