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부도 그간 김장 속을 넣고 싶었었나 봅니다. 자리가 비자마자 앉아 한참동안 속을 넣었습니다. 우리 제부 참 예쁘죠?
김현자
매일 밤 마늘 100개씩 깐 부모님 배추를 뽑아 절이고 갖가지 양념 준비하는 일이 어디 그리 쉽나요. 김장 열흘 전이나 1주일 전부터 마늘이나 생강, 쪽파 등을 손질한다고 밤에 편히 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요. 지난해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고요. 하룻밤에 깔 수 있는 마늘은 한 접(100개)이라고. 닷새 동안 매일 밤마다 한 접씩 깠다고.
그런데 준비할 양념이 어디 마늘뿐인가요. '토요일에 버무리면 올해는 고생 덜하며 올라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식들을 조금이라도 고생 덜 시키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이 헤아려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양념 준비며 배추를 뽑아 절일 부모님 생각에 걱정이 컸습니다. 다행히 오빠와 둘째 언니가 휴가를 내 오빠는 수요일에, 언니는 목요일에 친정에 가서 배추 뽑는 것부터 절이는 것까지 모두 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둘째 언니는 형제들과 나눠먹을 추어탕까지 한 솥 가득 끓여놨더군요. 둘째 언니의 마음 씀 덕분에 김장을 하는 내내 시래기 듬북 넣어 끓인 추어탕을 맛있게 먹었는데요. 올라오던 날 아침상에서 아버지가 "김장 때는 올해처럼 해마다 추어탕 끓여먹자"고 말씀하시는 것이 매우 맛있게 잡수셨나 봅니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김장은 부모님 두 분이 하시곤 했습니다. '이왕 하는 김에 좀 더 해서 아들들에게 보내주자. 도시에서는 배추는 물론 마늘 한 쪽까지 죄다 사서 김장을 한다는데, 있는 배추에 있는 양념거리로 조금 더 해서 딸들에게도 나눠주자.' 이러다 보니 김장 양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두세 명의 일손을 사 김장을 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해마다 시간이 되는 딸이나 며느리들이 내려가 김장 일손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김장 속을 넣는 날에나 갈 수밖에 없었고, 학교와 상관없이 내려갈 수 있는 형제는 어린 아이들을 둔 형제뿐이라 마음만큼 돕지 못했습니다. 도와줘봤자 김장하러 온 동네 어르신들 점심을 준비하는 정도였거든요.
사정이 이렇고 보니 평일에 김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시골에선 일손을 사기 무척 힘들거든요. 저마다 김장을 하고보니 돈을 줘도 일손을 사기 쉽지 않답니다. 때문에 일손 사정에 따라 평일에 김장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여하간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그렇다보니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은 더더욱 갈 수 없게 되더군요.
일손을 사 김장을 해도 엄마나 아버지가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이렇다보니 부모님께선, 특히 친정엄마는 김장 후 몸살도 앓곤 했습니다.
전, 결혼 후 한동안 시댁에 가 김장을 했고, 시댁에서 김치를 가져다 먹곤 했습니다. 친정의 김치는 한두 통 맛보는 정도로나 얻어먹는 정도였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댁에서 전혀 가져다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친정 부모님께서 많은 양의 김치를 보내주시곤 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헤아려 보니 막둥이가 결혼을 해 아들 삼형제 모두 가정을 이룬 12년 전 그 이듬해 겨울부터네요.
몇 년 동안 김치를 얻어먹으며, 김장 후 몸살을 앓는 어머니 소식을 들으며 죄송하고 죄스럽기만 했습니다. 고춧가루며 깨, 각종 콩 등 제대로 쉬지 못하고 피땀 흘려 농사지은 것을 1년 내내 먹을 수 있을 만큼 나눠 주시는 것으로도 모자라 일손을 사 김장까지 해 보내주시는 것을 받아먹으며 입에 익은 김치를 먹을 수 있음이 행복한 한편 마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