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하기싫은일은 정말하기싫어싫어(어느새,도롱뇽中)
꺽꺽이
"매.스.꺼.워?"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오전 2시 즈음이었다. 온몸에 식은 땀이 흐르며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매일 오전 7시면 출근을 하는 피곤한 그를 이 정도 일로 구태여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침대에서 내려온 순간 눈앞이 깜깜하고 머리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내 몸도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오빠!!!"다급하게 부르는 내 목소리에 깨어 보니 나는 방바닥에 반쯤 쓰러져 앉아있었다.
"뭐야, 어디 아파? 왜이래!""모르겠어. 춥고 배도 살짝 아픈 것 같은데… 그것보다 너무 어지러워서. 매스꺼워.""???!!! 매.스.꺼.워?"아마도 그는 나보다도 드라마를 많이 본 것 같다. "매스껍다"는 말 한 마디에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혹시…"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거든. 일단 나 좀 세워봐.""병원 가야는 거아냐? 약은 좀 먹기 그런데…."나는 1시간 내내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저녁에 먹었던 음식물을 고스란히 뱉어냈고, 몸의 한기는 더해갔다.
"야야, 병원가자. 얼굴 좀 봐. 하얗게 질렸다고!"나는 그의 등에 업혀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나는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는데 그의 등에 업혀있는 동안 너무 웃음이 났다. '아직 살아있긴 하네. 이 추운 날 맨발로 업고 뛰는 것 보니'부터 시작해서 '대학병원 응급실? 있어 보인다. <그레아나토미>같은 풍경이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서는 열이 너무 높아 급하게 해열제를 놓아주었고 그 추운 날 이불도 못 덮게 했다.
그는 간호사에게 "응급실에선 오래 일하셨나봐요?"에서부터 시작해서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했다.
"오빠, 창피해. 그러지마 좀. 어련히 알아서 해주겠지.""야… 요즘 응급실에서 의료사고가 얼마나 많은 줄 아냐? 그리고 이 시간엔 닥터들도 자다 일어나서 비몽사몽이라 더 위험해."그는 정말 드라마와 뉴스를 너무 많이 봤다.
"아프지마... 심장이 철렁했어" 나는 피검사, 소변검사, x-ray까지 찍어보았지만 별다른 원인을 찾아볼 수 없었고,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슬쩍 바랐던 '임신'도 아니었다.
"큰 이상은 없어 보이네요. 혹시 댁에 돌아가셔서 또 이런 증상이 있으시면 그때는 외래로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우리는 오전 3시부터 11시까지 병원에 있어야했다. 그런데 다섯 걸음 정도 걸었나. 그의 진술(?)에 따르면 나는 눈에 초점을 잃은 채 얼굴이 정말 A4용지처럼 하얗게 질려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고 한다.
나는 해열제 부작용이 있는 '여린 여자'였던 것이다. x-ray 찍으러 갈 때 어지럼증이 있었는데 아픈 것 때문에 어지러운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때 의사를 불렀어야 했다.
그대로 나는 또 응급실침대에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손끝에서 그의 따뜻한 체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보호자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 사람이 흐릿하게 보였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그는 의사와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성격을 고려해보건대, '해열제 부작용 있는 사람에게 해열제를 놔주면 어쩌냐. 처방이 잘못된 것 아니냐. 앞으로 부작용 증상이 있으면 어쩔 거냐' 등이었을 것이다. 과거력이 없었던 나였기에 의사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졸고 있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서로 애절했던 시간들이 그의 얼굴 위로 필름처럼 지나간다. 그는 결혼 후 좀 나이들어 보이는 것 같다.
'참 많이 사랑했던 사람인데… 나는 지금도 누구 못지않게 그를 아직 사랑하고 있을텐데….'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죽 한 그릇을 사고 짜장면을 한 그릇 배달시켰다. 어제부터 토해내느라 속이 텅 빈 나에게 그는 인심 쓰듯 간이 되지 않은 죽을 주었고 그는 윤기가 빛나는 수타짜장면을 후루룩 소리와 함께 먹었다.
부끄러운지, 짜장면에게 얘기하는 건지, 고개를 숙인 채 그가 말했다.
"아프지마. 너 아픈 거 보고 있으니 심장이 철렁했어. 그리고 내 짜장면 자꾸 먹고 싶다고 쳐다보지마. 밀가루 먹고 또 아프면 내가 또 너 업고 뛰어야하잖아. 실은 좀 무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