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된 지 9년, 행복하다면 미쳤다고 하겠죠?"

[인터뷰] 제21회 전태일노동상 수상한 최일배 코오롱정투위 의장

등록 2013.11.27 14:13수정 2013.11.2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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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코오롱정투위 최일배 위원장이 전태일열사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 10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코오롱정투위 최일배 위원장이 전태일열사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자료사진)노동과세계 변백선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가 지난 10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제21회 전태일노동상을 수상했다. 지난 24일 과천 농성장에서 최일배(46)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코오롱정투위) 의장을 만났다.

9년의 정리해고 투쟁을 돌아보며 그는 "행복하다고 하면 미친놈이라고 하겠느냐?"며 미소 지었다. 최 의장은 해고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사람들, 함께하는 좋은 사람들이 자신의 최고 재산이라고 말한다. 먼저 최일배 의장에게 코오롱 입사 때부터 코오롱 정리해고 투쟁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저는 1992년 코오롱 구미공장에 입사해서 폴레스트 필라멘트 원사를 생산하는 일을 했어요. 노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노조 간부는 과격한 사람들이라는 선입견도 있었어요. 그냥 조합비만 내는 조합원이었던 거죠."

그랬던 그가 1999년 코오롱노조 부위원장이 되면서 노동조합운동에 발을 디뎠다. 최일배 의장을 비롯한 7대 집행부는 임금을 올리는 대신에 조합원 구조조정을 당연시하던 그때까지의 노사관계에 반기를 들었다.

"코오롱노조 7대 집행부는 더 이상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돈과 사람을 바꿔먹는 것은 안 된다고 선언했어요. 임금은 동결해도 신규투자와 고용안정을 요구하자고 했죠."

조합원들이 1년 365일 3조3교대 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노조를 만들자며 간부들이 당직근무를 시작했다. 밤이고 낮이고 현장을 순회하며 조합원을 만나 올해 임단협 요구는 임금이 아닌 고용안정이라고 설득했다.

"처음에는 임금 올릴 자신이 없으니까 괜히 헛소리 한다고 조합원들이 반발했어요. 그래도 줄기차게 현장을 돌며 설득했고 넉 달 만에 조합원들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요구안을 만들어 교섭을 시작했는데 회사는 임금은 올려줄 수 있어도 고용은 안 된다고 했어요."


코오롱노조가 2000년 6월 파업에 돌입했다. 회사는 3일 이상 못 갈 거라고, 노조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그 파업은 17일간이나 이어졌다.

"조합원 70%가 파업대오를 유지하며 17일간 파업투쟁을 벌였어요. 현장을 순회하며 조합원들과 쌓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싸움이죠. 우리가 현장순회를 할 때 조합원들은 미친놈들이라고 했거든요. 조합 활동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미친놈처럼 현장순회를 했던 거에요. 조합원은 간부 하기 나름입니다. 간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조합원이 움직인다는 확신을 저는 아직도 갖고 있어요. 간부가 그냥 흉내만 내는지, 아니면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해 진정성을 갖고 쏟아 붓는지를 조합원들은 다 알아요."


파업 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조합원 세상, 노동조합 세상이 됐다. 회사는 이때부터 현장을 유린할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 착착 진행하기 시작했다. 물량공세를 통해 8대 집행부를 유령노조로 만들어 현장과 노동조합을 괴리시켰다. 또 파업을 유도해 64일간 파업을 하고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해 극심한 패배감까지 안겼다.

2004년 11월 구조조정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희망퇴직 정리해고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현장에 불었다. 노조 집행부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1500명 중 400명 넘게 희망퇴직을 신청한 상황에서 회사는 더 밀어붙였다.

2005년 해고... "복직투쟁 하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코오롱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코오롱 스포츠용품 불매운동을 시작하여 주요 매장 앞에서 1인시위를 전개할 것을 선포했다. (자료사진)
코오롱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코오롱 스포츠용품 불매운동을 시작하여 주요 매장 앞에서 1인시위를 전개할 것을 선포했다. (자료사진)노동과세계 변백선

2005년 2월 노조는 430명 희망퇴직자가 자발적으로 나갔다는 것을 인정하고, 신입 충원을 요구하지 않으며, 임금 15%를 삭감한다는 데 합의했다. 또 회사가 희망퇴직자 430명을 포함해 최종 509명을 해고한다는 데 도장을 찍었다. 코오롱은 희망퇴직자 말고도 78명을 더 해고했다. 7대 집행부 일원으로 위력적 파업을 주도한 최일배 의장을 비롯해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던 노동자들을 찍어냈다.

해고자들이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를 만들었고 50명이 정리해고 투쟁을 시작했다. 해고자 신분으로 10대 임원선거에 출마한 최일배 의장이 노조 위원장에 당선됐지만 사측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빌미삼아 그를 현장에서 내몰았다. 2006년 4월 중앙노동위원회는 최일배 의장 등이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해 회사 손을 들어줬다. 해고자들은 완전히 공장 밖으로 밀려났다.

"우리가 복직투쟁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구미공장 내 송전탑 고공농성, 단식, 청와대 앞 크레인 고공농성, 본사 로비점거, 이웅열 회장 자택 점거, 손목 자해까지 안 해본 거 없이 다 했어요."

그는 이웅열 회장 집 점거농성 때 잡혀가 6개월 간 구속생활를 했다. 2013년 11월 현재 코오롱 정리해고자 14명이 끝까지 남아 싸우고 있다. 최일배 의장과 김혜란 조합원,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파견된 이상진 조합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생계투쟁을 나가 투쟁기금을 모은다. 코오롱정투위는 2012년 5월 11일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최일배 의장은 민주노총 경북본부 구미지부 조직부장 직책도 갖고 있다. 2010년 KEC 파업투쟁 때 20대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에 들어가 점거농성을 벌였다.

"내 노조의 조합원은 아니나 노조활동을 먼저 한 사람으로서 저 어린 동지들을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KEC 공장이 코오롱 바로 맞은편에 있잖아요. 우리가 잘못해서 KEC 동지들이 이런 일을 당하나 싶어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최 의장은 KEC 점거투쟁으로 인해 그해 11월 초 구속됐고 6개월을 또 감옥에서 살았다. 코오롱 정리해고자들은 지난 봄부터 코오롱스포츠 불매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2005년에도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불매운동을 했어요. 그때는 코오롱 제품 전체를 대상으로 했는데 민주노총 대규모 사업장에서 조합원 단체선물로 코오롱 제품을 줬어요. 또 민주노총에서 코오롱이 운영하는 연수원에 모여 행사를 하고 코오롱 택이 붙은 옷을 나눠줬구요. 당시 불매는 실패로 돌아갔어요."

이번 불매운동은 코오롱스포츠 한 가지에만 집중한다.

"대외적으로도 SNS 소문도 나고 하니까 코오롱이 압박을 받는 것 같아요.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나 불매를 시작한 후에 노무팀 담당자도 만나자고 해요. 별거 아니지만 작은 변화는 있어요."

노동자들이 산행을 하며 불매운동을 외치자 코오롱은 전국 102개 산에 대해 가처분을 신청했다.

"정작 우리가 민주노총에 요청한 것은 조합원들이 코오롱 정리해고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코오롱 옷을 안 입고 단체선물로 코오롱 스포츠를 구매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는 노동조합이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에서 패배감과 상실감이 큰 것 같다고, 코오롱불매가 아니어도 무엇에든 집중해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민주노총이 하니까 되더라 하는 자신감을 회복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코오롱정투위는 한 달 전부터 매주 수요일 아침 계란을 삶아 '정리해고는 나빠요'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여 과천중앙고등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왜 고등학교 앞에서 주느냐고요? 이 아이들이 커서 사회생활을 할 때는 정리해고가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죠."

전태일노동상 수상... "'9년간 투쟁한 게 잊히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코오롱자본이 불매운동을 막기 위해 전국 102개 유명산에 대해 사실상의 출입금지인 업무방해 및 신용훼손 금지 가처분신청을 낸것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료사진)
코오롱자본이 불매운동을 막기 위해 전국 102개 유명산에 대해 사실상의 출입금지인 업무방해 및 신용훼손 금지 가처분신청을 낸것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료사진) 노동과세계 변백선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투쟁 9년, 그에게는 어떤 세월일까.

"힘든 기억보다는 좋았던 게 많았어요. 행복하다고 하면 저를 미친놈이라고 하겠죠? 코오롱에서 13년간 직장생활 한 걸 돌이켜보면 하루 8시간 일하고 때우면 그걸로 끝인 인생이었어요. 다른 사람을 돌아보거나 내 사고의 영역을 넓히려는 생각을 못 했죠.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어요."

그는 공장에서 쫓겨나 투쟁하면서 좋은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다고, 직장에만 다녔다면 보고 듣고 느끼는 데 한계가 많았을 거라고, 경제적인 문제 한 가지만 빼면 해고 후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코오롱 노동자로 살 때는 토요일 밤 11시에 출근해서 교대근무를 시작해 일요일 아침에 퇴근해 집에 가면 정말 힘들었어요. 저는 야간근무가 그렇게 힘들더라구요. 그때 우리 아이들이 7살 정도였는데 놀아달라고 해도 그러지를 못했어요."

해고 후 애써 스킨십을 시도했고 처음에는 어색하던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뱄다.

"밤 늦게 들어가서 자는 아이들 귀에 대고 '사랑하는 아빠의 보물, 아빠의 보물 1호, 사랑해~' 하면 잠결에도 반응을 하고 자기도 사랑한다고 해요. 제가 해고되지 않았으면 이런 걸 느꼈을까 싶죠. 주변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다 내 재산이에요."

고1 딸에게서 "나중에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최일배 의장. 가족 이야기를 하며 해맑게 웃는 그를 바라보니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게 복직가능성이 있느냐는 거에요. 코오롱 이웅열 회장이 삼성을 부러워해요. 삼성이 일류기업이 된 것은 노조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코오롱에 민주노조는 절대 안 된다고 했고 지금 그렇게 만들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해고자가 1명이라도 복직하면 현장은 급변할 것이고 저들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처음에 우리는 복직하기 위해서 싸웠어요. 억울하고 분하고 정리해고가 너무나 부당했으니까요. 지금 우리는 단순히 우리 복직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아니에요. 정리해고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우리는 악법을 철폐하기 위해 싸웁니다. 그게 궁극적 목적이에요."

최일배 의장은 자신들의 역할과 힘에는 한계가 있다고, 욕심을 내서 멀리 내다보거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한다.

"개울을 건너는 데 있어야 할 징검다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놓으려고는 하지 않아요. 길을 만드는 데 작은 돌 하나 놓는 역할, 우리가 완공은 못해도 그런 것을 하려고 해요. 언제까지 될지는 몰라도 우리 힘이 닿는 데까지 할 겁니다."

민주노총 간부이기도 한 그에게 민주노총에 바라는 것이 뭔지 물었다.

"초심, 처음 가졌던 그 마음을 생각하면 될 겁니다. 해도 안 되더라 하지 말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어요. 전 가끔 자신에게 넌 정말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봤느냐는 질문을 해요. 제가 나태해질 때면 예전에 현장에서 미친 듯이 활동할 시절을 생각하죠. 현장 조합원들은 간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움직여요."

그는 싸움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결과를 먼저 깊이 고민해서 오히려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민주노총 간부를 오래 한 이들은 투쟁사업장이 이렇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 거라고 말하곤 해요. 그게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과정에도 충실하면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민주노총을 욕하면서도 투쟁사업장들을 하나로 묶어 구심점이 돼달라고 요구하고 제안하죠. 민주노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조합원들 마음에 있는 거에요."

또 민주노총이 결정하고 지침을 내리면 그 지침이 현장까지 물 흐르듯 흘러 현장과 중앙이 잘 소통하고 연결되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전태일노동상을 받아든 그의 심정도 궁금했다.

"가장 힘든 게 잊혀지는 거잖아요. 노동상을 수상한 순간 '아! 9년간 투쟁한 게 잊히지 않고 묻히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우리가 해온 9년간의 투쟁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의미와 평가로 저는 이 상을 받았어요."

전태일노동상은 그에게 자긍심과 긍지를 심어줬다. 또 더 힘내 싸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코오롱도 이 상의 의미와 비중을 잘 알고 있어요. 저들은 사람도 몇 명 안 남았고 제풀에 지쳐 떨어질 거라고 했어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잊혀지는 게 아니고 갈수록 더 부각되고 알려진다는 걸 알았을 겁니다."
#코오롱 #정리해고 #최일배 #전태일노동상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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