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쓰러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를 엄마처럼 여겼던 우리 엄마의 이야기

등록 2013.11.26 11:52수정 2013.11.2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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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꿈에 할머니께서 찾아오셨고, 항상 부어있는 엄마의 손이 생각났다. 이 글은 엄마와 함께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쓴 것이다. - 기자 말


엄마는 일을 다녀오면 항상 손을 주무른다. 아침이면 엄마의 손은 늘 부어있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의 손은 늘 부어있었다. 세상 어느 손 보다 가장 귀한 손이다.

# 큰 아이가 10살이 되던 해 시어머니가 목욕탕을 갔다가 쓰러지셨다. 급히 찾은 '춘천 한림 성심병원', 어머니의 입은 돌아가 있고, 내 두 손에는 땀이 가득했다. "엄마, 엄마"라 부르던 시어머니가 쓰러지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맏며느리가 아닌 내가, 우여곡절 속에 맏며느리 역할을 맡게 됐다. 간병인을 붙여 어머니를 보살피자니 넉넉지 못한 사정에 겁이 났다. 결국 가족들은 어머니와 아버님을 원래 사시던 가평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우리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반찬을 챙겨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덕소와 가평 오가기를 6개월, 결국 어머니와 아버님을 덕소로 모시기로 했다.

내가 10살이 되던 해인 2000년, 할머니가 목욕탕을 갔다가 쓰러지셨다. 엄마는 급히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춘천으로 향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에 큰 나는 너무 슬펐다. 쓰러졌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냥 슬펐다. 할머니와 다투고 나간 큰아버지 식구들이 미웠다. 매주 가평에 갔다. 매번 여행가는 것 같아 너무 좋았다. 그렇게 6개월 동안 가던 가평을 이제 안 간다고 했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 어머니, 나와 이름이 같아 더욱 정이 갔던 우리 어머니. 우리 두 아이를 손수 길러주시던 어머니가 저렇게 무기력하게 쓰러져 계시다니, 믿기지 않았다. 누워 계시며 치매까지 왔다. 어머니는 점점 기억을 잃어 갔고, 두 아이들은 할머니를 무서워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나도 점점 지쳐갔다. 내 어깨에 이상이 오더니 손까지 저리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두 손이 부어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어찌하여 이렇게 고난을 주십니까? 하나님 십자가가 너무 무겁습니다. 옮겨주세요" 하며 나는 원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이 잠시 정신을 차리셨다. "미안하다. 아가" 이 한마디에 내 맘은 다시 무너졌다. 나는 두 손이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어머니의 마지막까지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할머니의 이름은 똑같다. 무척 신기했다. 가평에서 살 때, 할머니집이 우리 집이라 생각할 정도로 할머니와 살았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계란프라이와 된장찌개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러던 할머니가 누워있다. 엄마도 지쳐갔다. 할머니는 날보고 오빠라고 불렀다. 무서웠다. 엄마는 어깨와 손이 아프다고 했다. 할머니를 간호하며 얻은 것이다. 엄마의 손은 늘 부어있었다. 


# 어머니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내 손도 매일 부었다. 어느덧 어머니를 모신 지 3년째가 되던 해, 어머니가 좋아하는 잣죽을 직접 끓여 드렸다.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가 늘 남기시던 저녁 식사를 맛있게 다 드셨다. 아버님도 좋아하셨다. 그날 밤 나는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꿈속에 어머니가 큰 소를 타시고 마을을 한 바퀴 도시더니, 손을 흔들며 산으로 가셨다. 다음 날 아침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 아가 너희 어머니가 이상하다 이리 와 바라 숨을 안 쉰다." 어머니는 편안한 얼굴로 누워계셨다. 어머니의 차게 식은 두 손을 잡으니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한 없이 울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가셨다. '어머니 이제 푹 쉬세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얼굴은 세상 누구의 얼굴보다 편해 보였다. 동생과 나는 베란다에서 엉엉 울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도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가족이 울었다. 나를 사랑해주던 할머니가 그렇게 가셨다. 엄마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 3일 장을 치르고, 어머니의 유품을 태우기 위해 가평집을 찾았다. 옷장 곳곳에 어머니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어머니의 흔적들을 끌어안고 울었다. 어머님은 관절염이 심했다. 옷에 남아있는 파스냄새가 내 맘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너무 아픈 흔적들을 챙겨, 어머니 마지막 길에 보내드리고 돌아오는 길, 그동안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할머니의 유품을 모두 모아 태우러 가는 길, 엄마는 계속 울었다. 3일 동안 울고도 아직 눈물이 남았나 보다. 엄마는 할머니의 유품을 태우는 것이 할머니가 입고갈 옷을 보내드리는 것이라 했다.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여전히 아침이면 엄마의 두 손은 퉁퉁 부어있다.
덧붙이는 글 어머니의 손이 생각나 글 하나를 써봤다.
#어머니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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