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에선 리골레토(조지 가닛제)가 딸 질다(엘레나 모스크)에 대한 애정이 절절하다. 둘의 듀엣이 아름답다.
문성식
질다 역의 소프라노 다니엘라 브루에라는 대사 중 "천사가 내려온 것 같다"고 하는 말 그대로 정말 사랑스러운 외모와 성량, 기량이었다. 리골레토와 질다의 듀엣도 부녀의 정과 애틋함이 절실히 느껴지는 연기와 호흡이 좋았다.
만토바 공작 역의 테너 리카르도 미라벨리는 바람둥이의 모습을 경쾌하고 시원한 고음으로 잘 표현해 호감을 주었다. 특히 3막에서 그 유명한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 아리아를 부르자 박수가 터져나온다.
주역들의 호연과 열창, 노래가사에 의한 인물들의 감정이 다채로운 리듬과 선율,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성이 변하며 전달된다. 1막 2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리골레토를 향해 죄여오는 저주의 공포를 상행 하는 16분음표 시퀀스로 표현하는데, 반음계로 서서히 올라가다가 갑자기 도약하며 포르티시모로 확 터지는 부분은 정말 불안한 순간과 그 심정을 정말 잘 표현해주고 있었으며, 마음속으로 "정말 위대한 천재 베르디야"를 외치게 해준다.
한국성악가들도 호연을 펼쳤다. 변승욱은 비록 청부살인업이지만 직업에 충실하고 여동생 막달레나를 끔찍이 아끼는 스파라푸칠레 역을 훌륭히 소화하며 저음의 충실한 베이스 목소리를 냈다. 막달레나 역의 메조소프라노 최승현 역시 부드럽고 편안한 톤으로 요염한 동작과 함께 막달레나를 잘 표현했다.
3막 스파라푸칠레의 주막 장면에서 리골레토가 복수를 결심하고 스파라푸칠레-막달레나, 리골레토-질다가 함께 노래부르는 장면은 각 성악주자의 음성과 가사가 잘 들리면서도 전체 4명의 하모니가 훌륭했으며, 다시한번 베르디의 탁월함을 느낄 수 있다.
리골레토는 만토바 공작의 살인청부를 스파라푸칠레에게 부탁하지만, 만토바 공작을 좋아하는 막달레나의 부탁으로 스파라푸칠레는 새벽에 그곳을 지나가나는 첫 번째 사람을 죽이기로 하고, 질다가 죽게 된다. 마지막에 딸의 죽음을 알고 리골레토가 "내 딸이 내 복수에 희생되다니"라며 부르는 노래가 단조가 아니라 장조의 평온하고 밝은 분위기인 것이 역설적이어서 인상적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귀족을 조롱하고(1막) 공작을 죽이려는(3막) 어릿광대 리골레토의 천박함과 잔인함이 연출의 의도만큼 잘 드러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23일 공연에서 리골레토 역의 벤트세슬라프 아나스타소프는 물론 좋은 연기였지만 이 모든 리골레토의 성격을 딸에 대한 부성애로 포괄시키는 고상한 연기를 펼쳤다. 딸 질다를 납치해 간 만토바 공작을 죽이려는 장면에서 리골레토의 뼛속 깊숙이 자리한 귀족계급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는 했지만, 하층민 어릿광대로서의 비열함이나 천한 속성이 뚜렷이 부각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2013년을 베르디 오페라로 성공적으로 마감한 수지 오페라단의 다음 오페라는 2014년 6월 6일부터 8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카르멘'이다. 2009년 창단해 해마다 두 작품씩 꾸준히 레파토리를 쌓아가며 행보 중인 수지 오페라단의 지혜로운 전략과 내실있는 운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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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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