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사회>의 표지.
레인메이커
지난 수년간 바뀐 여러 정권에서 꾸준히 '일자리 창출'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구직을 위해 애써보지만, 좀처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곤란한 상황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자랑이 여기저기서 들려오지만, 치솟는 실업률을 보면 실상은 꽤 다른 것 같다.
높은 토익점수와 온갖 자격증을 스펙으로 요구하는 시대. 기업과 고용주는 해마다 크게 늘어나는 구직자의 수 덕분에 입맛에 맞는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여러가지 까다로운 지원자격을 추가하고 조건을 늘려간다. '이렇게 고스펙을 요구해도 누군가는 맞춰줄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취업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 구직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부품사회>의 저자 피터 카펠리 교수는 와튼스쿨의 세계적인 인사관리 전문가다. 그는 구직과 구인이 모두 어려운 모순된 현실의 문제점을 '고용주의 눈높이'라고 지적한다. 업무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자격요건을 요구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낮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취업시장에 문제가 생기는 주된 이유라는 것이다.
내 주장은 이렇다.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은 고용주 자신이다. 지원자가 차고 넘치는 현실에서 고용주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실무 교육이나 교육 훈련 등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입사해서 곧바로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직원을 원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이미 그 일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니 지원자들로서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린 셈이다. 이런 상황은 회사와 국가 경제에 피해를 줄 뿐이다." (본문 15쪽 중에서)새로이 사원을 채용하면서 '2년 이상의 경력'을 필수조건으로 요구한다거나, 업무상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자격증을 요구하는 것 등이 바로 그 예이다. 그러면서 정작 채용된 직원들에게 실무 교육은 '시간과 돈의 낭비'라며 시행하지 않는 자세가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는 비판하는 것이다.
노동자를 언제든 대체가능한 '부품'처럼 여기는 고용주들저자는 마치 노동자를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부품'처럼 여기는 고용주들의 태도 역시 문제라고 비판한다.
"많은 사람들, 특히 경영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채용 과정이 홈데포에서 가정용 건축자재를 구매하는 일과 같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들은 회사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과 세탁기의 부품을 교체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새 부품이 필요하면 상점에 가서 원하는 부품을 찾은 뒤에 제자리에 끼워넣고 세탁기를 돌리기만 하면 된다." (본문 33~34쪽 중에서)이어서 <부품사회>는 홈데포에서 부품을 구입하는 것과 현실에서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기계 부품과 달리 자격 요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지원자는 없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대학 학위 자체가 반드시 업무에 필요하지 않는 경우에도 필수조건으로 내세우면서 고학력 경쟁에 불을 붙인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얻으려는 지원자들이 늘어나면서 고용주는 점점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이런 학위 경쟁이 이제는 실무 경험을 쌓으려는 경쟁으로 이어지는 세태도 지적한다. 초보 구직자들마저 취직을 위해 업무 경험을 취직을 하기도 전에 쌓아야 하는 아이러니가 이어지고, 이런 딜레마가 '무급 인턴사원 제도'를 낳게 된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인턴사원 대부분이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낮은 임금을 받는 현실이다.
또 다른 문제는 지나치게 낮은 급여가 지급되는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해당 직종의 평균 급여보다도 훨씬 낮게 임금을 책정해도 '지원자는 많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동시에 '쓸만한 인재는 없다'고 불평하는 사측의 태도는 분명 이중적이다. 적절한 임금만 지급하면 회사가 원하는 구직자는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고용시장의 문제, '고용주부터 변화해야'결론적으로 카펠리 교수가 진단한 노동사회의 문제점은 '고용주의 눈높이'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물론 단지 고용주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는 않는다. 인터넷과 연계된 인사시스템이 제대로 '적합한 지원자'를 찾아내지 못하고 몇몇 검색어 만으로 많은 사람을 걸러내어 버리는 등의 문제점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측에서는 노동자의 잦은 이직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업무 교육에 큰 투자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저자의 지적도 일리있다. 하지만 분명 노사 관계에서 '갑'에 해당하는 고용주는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때문에 <부품사회>는 고용주부터 변화해야 악화중인 고용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용주들이 경력 있는 직원만 원하고 훈련 투자에는 인색하기 때문에 이직 현상이 더욱 심각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낮은 급여, 잦은 야근도 대안 없이 '일하는 것을 다행으로 알라'거나 '스포츠처럼 즐겨라' 따위의 말 뿐인 현실. 이런 사회에서 노동자에게만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는 것은, 점점 더 내려가는 막대 아래로 몸을 낮추어 간신히 지나가야 하는 '림보게임'과 같다던 비유가 떠오른다.
<부품사회>를 통해 카펠리 교수는 업무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교육현실을 지적하며, '학교와 회사를 하나로 묶는 협업 시스템'을 제안하기도 한다. 물론 이 대안이 한국의 노동시장에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런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그 주장의 핵심이 '기업과 고용주가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임을 감안해보면 한국의 노동문제의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어보인다. 또한 이는 '고용률 70%'를 목표로 삼은 박근혜 정부 역시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이야기다.
부품사회 - 왜 일자리가 사라지고 실업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을까
피터 카펠리 지음, 김인수 옮김,
레인메이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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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부품'처럼 여기는 고용주들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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