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종교인들의 시국발언, 어떻게 볼 것인가'에 참석해 토론에 앞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희훈
"국정원은 어미를 죽이는 살모사가 될 수 있다. 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였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지금의 국정원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왜 그런 집단을 보듬으려고 할까? 멀리하고 털어버려야 한다."성염(72) 전 주(駐) 교황청 한국대사의 말이다. 이는 종교계의 퇴진 요구를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일침이다. 지금은 국정원을 보듬고 있지만 언젠가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전망이기도 하다.
성 전 대사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2003년 바티칸 교황청의 한국대사로 부임했다. 바티칸에는 80여 개국에서 온 대사들이 전 세계 12억 명에 이르는 신부와 사제, 신도들을 연결하고 있다. 대사는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교황청의 메시지를 모국에 전하는 역할을 한다. 성 전 대사는 4년간 바티칸에서 근무한 뒤 2007년에 한국에 돌아와 경남 함양에 터를 잡았다.
그는 지난 3일 대한불교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주최한 '종교인의 시국발언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천주교 원로로 참석한 바 있다.
5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는 박 대통령을 두고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가 '(단칼에 죽일 수 있게) 국민들이 한 모가지였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며 "대통령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이지 협박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을 종북으로 내모는 박 대통령에게서 로마시대의 악명 높은 황제가 연상된다는 것이다.
"사제단의 퇴진 요구는 교리에 따른 것"국정원을 비롯해 국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이 지난 대선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원 등의) 덕을 본 적 없다"는 말로 외면하고 있다. 이에 종교계 일부가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4일에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공식적으로 퇴진을 주장, 파문이 일었다.
사제단은 입장문을 통해 "종교계의 질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통과 독선,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일관하는 공포정치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이 모든 것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남이 명예로운 일"이라고 밝혔다.
성 전 대사는 사제단의 사회 참여는 천주교의 교리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사회적인 윤리 감각을 갖고 있는 가톨릭 사제들은 엄청난 사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며 "이들에게 과도한 정치 개입이라는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됐던 박창신 사제단 전주교구의 강론에 대해서 성 전 대사는 "요한바오로 2세가 말한 '인간과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경탄'을 잘 실천했다"며 "강론에서 열거한 용산 철거민, 쌍용 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등에서 약자 편에 서서 종교적 언어로 호소했다"고 평가했다. 박 신부를 종북 사제로 몰아간 정부, 여당과 보수단체들을 향해서는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당이기에 종북과 사제는 양립할 수 없는 언어"라며 "현 정부가 그런 언어로 몰아 세우니까 (사제들이) 어떻게 용납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성염 전 주 교황청 한국 대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종교 부정하는 공산당과 사제는 양립할 수 없는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