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련 학교비정규직 대구지부는 6일 하루 파업을 하고 대구시교육청 앞에 모여 총파업 결의대회를 가졌다.
조정훈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교사의 수준은 고도의 교과전문성을 기본으로 안정적인 직무 환경과 자기효능감을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이후 대한민국의 교원정책은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길을 걸었다.
교원능력개발평가와 개인·학교성과급제 등처럼 현장과의 교감이 없는 각종 평가 기제가 교사의 목을 죄면서 교사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다. 교원법정정원이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교사들의 업무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졌다. 비정규교원들이 급증하면서 학교가 정규직 반 비정규직 반 세상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가 맡는 학생 수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12년 기준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 26.3명, 중학교가 34.0명이다. OECD 평균보다 각각 5.1명, 10.7명이나 많다. 중학교의 학급 과밀 수준은 OECD 국가 중 1위였다. 초등학교는 과밀 순위가 네 번째였다. 교사 1인당 평균 학생 수도 초등학교 19.6명, 중학교 18.8명, 고등학교 15.8명이다. OECD 평균인 15.4명, 13.3명, 13.9명보다 각각 4.2명, 5.5명, 1.9명이 많다.
교원법정정원 비율도 교육의 질을 가늠하고 결정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지난 세 개의 정부를 거치면서 오히려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중등교사의 교원법정정원 확보 비율은 국민의 정부 시절에만 하더라도 84퍼센트에 이르렀다. 하지만 참여정부로 넘어오면서 그 비율은 82퍼센트로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에 오면 사상 최초로 교원법정정원 확보율이 70퍼센트대로 떨어진다. 현재 교원법정정원 확보 비율은 78퍼센트에 그쳐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해 9월 26일에 교원의 법정정원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교원 법정 기준인 '학급당 일정한 교원 수'를 삭제하는 대신 예산과 학생 수에 따라 교원 수를 정하겠다는 게 주된 취지다. 교과전담·전문상담·사서 등의 교사 배치 기준도 아예 삭제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었다. 하지만 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의한 초·중등 교원 배치기준에 따라 계산하더라도 아직 4만 명이나 되는 교사가 부족하다.
물론 교육당국이 이런 상황을 전혀 도외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OECD 수준으로 개선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도 2017년까지 약 4만여 명의 교원을 증원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9월, 교육부로부터 교원 증원 협조 부탁을 받은 안전행정부는 2014학년도 교원정원 1만6000여 명 증원 요구를 거부했다. 학생 수 감소 등을 이유로 교원 증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다.
교원법정정원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정부가 꺼내 놓는 약방 감초 같은 반대 논거가 학생 수 감소와 예산 문제다.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이른바 학령 인구(초·중·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리는 연령대인 만 6세~21세까지의 인구)가 자연 감소하고 있으니 굳이 교원법정정원을 채우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법정정원을 채울 수 있다는 논리일 게다. 민감한 예산 문제까지 덮을 수 있으니 학령 인구 감소 카드는 멋진 '꽃놀이패'다.
실제로 정부로서는 학령 인구 감소 문제를 전혀 도외시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교원정책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어야 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교원정원 문제와 관련하여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리는 상황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정작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학령 인구 감소와 같은 외적 상황에서 핑곗거리를 찾는 듯해서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공교육비는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등 각 교육 단계에서 쓰인 총 비용을 가리킨다. 공교육비는 대개 정부부담과 민간부담으로 나뉘어 계산된다. 정부는 지난 6월 25일에 '2013년 OECD 교육지표'를 발표했다. 여기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의 민간부담 비율은 2.8퍼센트로 13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OECD 평균 0.9퍼센트의 세 배 가량이나 된다. 반면에 공교육비의 정부부담 비율은 4.8퍼센트로 OECD 평균인 5.4퍼센트에 미치지 못한다. 공교육에 드는 비용의 많은 부분을 민간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짙은 냉소와 무기력이 넘치는 교직 사회는 지금 거대한 '무덤'이 돼가고 있다. 소통과 협력은 온 데 간 데 없고 갈수록 상호 불신만 깊어진다. 그 어떤 일에도 입을 열지 않는 교사들의 모습은 마치 시한폭탄 같다. 그 어떤 개혁안이나 정책도 현재의 교사·교직 시스템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최근작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 펴냄)에서 교사들을 "교무실에 떠 있는 천 개의 섬"으로 비유한 바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 분란을 일으킨다며 불온시되고, 가만히 있으면 네가 그러고도 교사냐며 힐난을 받는 게 지금의 교사다. 교사는 침묵에 빠지고, 교무실은 '천 개의 섬'이 떠 있는 황량한 바다가 된다. 학교가 갈수록 '무덤'이 돼가는 이유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말을 믿는가. 그렇다면 교사들이 자존감을 갖도록 만들라. 교사를 대상화하고, 그들을 수동적인 객체로 만드는 교육정책의 기조를 바꾸라. 교사를 교육의 당당한 주체로 대접하라. 교사의 자발적인 혁신이 일어나도록 그들을 신뢰하라. 교사가 신분의 차별과 지위의 불안정에 떨지 않고 교육적 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법이 규정한 교사의 일은 아주 간명하다.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들을 교육한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 4항)어떤 교사가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까. 교육당국의 진지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공유하기
'알바 교직' 양산하는 교원정책, 이게 말이 되나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