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메르켈 닮으라 했는데...
국정원이 쓸데없이 이상한 짓을 해서"

[기획- 독일을가다⑥]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내년 독일행

등록 2013.12.09 16:46수정 2013.12.13 17:38
105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가 독일을 찾았습니다. 왜 독일이냐구요? 우선 우리와 독일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2차 대전 후 분단국가였고, '라인강'과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던 것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나라 크기도 비슷하고, 천연자원이 별로 없이 인적 자원에 의존하고 수출국가라는 점까지.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한국과 독일은 전혀 달리 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사갈등은 여전하고, 계층간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면서 국민들의 사회경제적 민주화 요구가 거셉니다. 독일은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지속적인 성장과 복지국가를 유지해가고 있습니다. 독일모델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때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이 어떻게 '유럽의 강자'으로 부활했을까, 궁금했습니다. 10여일동안 독일 곳곳을 다녔습니다. 거대 자동차회사 노동자부터 기업인, 교수, 일반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편집자말]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남소연

결국 그가 떠난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서다. 그리고 내년 3월 한국을 떠나 잠시 독일로 간다.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의 소방수로,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유명했다. 그의 박근혜 캠프 합류 소식은 야당에겐 큰 부담이었다. '김종인'이라는 이름만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 이슈를 야당으로부터 뺏어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결국 그의 예상대로 선거는 승리로 이어졌다. 지난 대선 기간, 기자가 만났을 때 그의 예상 득표율은 실제 그대로 반영됐다. 그의 이름은 현 정부 들어 인수위와 개각 때마다 빠지지 않고 이름이 거론됐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철저히 외면 받았다. 물론 야당과 시민사회 등에선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했다. 김 전 위원장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언론들은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국정원 불법대선개입 의혹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 등도 줄줄이 후퇴하고 있다. 언론이 그의 입을 주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언론에 나서기를 극구 사양했다. 경제민주화 등의 외부 강연에 가끔 나서 기자들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독일' 때문이었다. 독일은 글로벌 경제 위기에서도 성장과 복지를 튼실히 유지해 왔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모델을 주목했다. <오마이뉴스>의 독일 기획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독일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만큼 독일 정치와 경제를 제대로 보고, 배워서 국내 정책에 적용해 본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은 것도 독일의 영향이다.

지난 11월 초 그의 서울 종로구 부암동 사무실을 찾았다. 그의 연구실은 그대로였다. 책상 위에는 각종 경제 관련 리포트와 책들이 놓여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은 여전해 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반색하며 맞이하는 모습은 아니다. 옅은 미소를 띄며 악수를 건네는 것은 몇 년 전이나 똑같다. 그는 "(독일에서) 잘 배우고 왔어?"라며 인삿말을 건넸다. 독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만남의 조건을 다시 상기시키듯이…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았다.

"국정원이 쓸데없이 이상한 짓을... 상황이 골치 아프게 가고 있어"

- 1년 전에 뵈었을 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지셨다. 건강은.
"(별 반응 없이) 그래? 뭐, 그렇게 보이는가 보네. (건강은) 괜찮아."


- 선거 때 일을 많이 하셔서, (선거) 이후에 역할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나는… 내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말야, (선거) 캠프라는 것이 자리 사냥꾼들만이 모이는 데야. 거기가…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또 뭐 한자리 하려고 하고."

- 지난 대선 인터뷰 때 말씀하신 후보 득표율 격차가 딱 맞았다.(관련기사)
"(웃으면서) 내가 틀린 경우가 거의 없잖아. 판세를 보면 딱 나왔는데 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유성호

- 그런데 요즘 국정원 불법대선개입 의혹 등으로 세상이 어수선한데요.
"(특유의 냉소적인 어투로) 국정원이 말야, 괜히 쓸데없이 이상한 짓을 해가지고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는 데 지장 없는데… 정말 XX 놈들이지 뭐."

김 전 위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표정은 어이없다는 것이었다. 이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그래서 "왜 그렇게까지 나섰을까요?"라고 물었다. 그의 손에는 담배 한 개비가 올라갔다. "(선거 패배에 대해) 불안해서 그랬을까요"라고 다시 물었다. 그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괜히 말이야. 그쪽(국정원)에서는 불안했는지 어떤지 몰라도, 그런 짓을 왜 해? 내가 이미 지난 6년 전부터 말했어요. 다음 대선(2012년)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싸움'이라고 말이에요. 가만히 둬도 (박근혜 후보가) 당선이 되는 거였어.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해가지고…"

그는 이번 사건의 파장을 심각하게 보는 듯했다. 그는 "지금 돌아가는 것이 아주 골치 아프게 생겼다"고 했다. 불법선거개입 의혹 사건이 향후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실제 최근 종교계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퇴진요구까지 나왔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독일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을 들면서 현 정부를 에둘러 비판했다. 

- 내년에 독일을 가신다고 들었는데.
"지금이라도 갈 수는 있는데, 겨울엔 추워서… 3월에 가려고 해요.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연구가 될 것 같아."

그의 연구는 독일과 일본의 경제 성장과정을 실증적으로 비교, 분석해 보는 것이다. 이미 기초 자료조사 등도 끝난 상태였다. 독일 훔볼트 대학에 머물면서 그는 자신의 연구를 뒷받침할 자료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일본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경제민주화를 하자는 것"

"일본과 독일이 세계 2차대전 이후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한 국가 아니야? 두 국가 모두 제조업을 바탕으로 해서 성장했지. 우리나라도 일본을 본따서 지금까지 성장한 것 아니에요? 그런데 일본처럼 계속 재벌이나 기업 논리대로 경제정책을 운용하게 되면 일본과 비슷하게 갈 수밖에 없는거야. 그래서 내가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경제민주화를 하자고 하는 거야."

- 이명박 정부 때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까지 했는데요.
"(고개를 흔들며) 그것이 참…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그런 것을 내세우고. 세계에서 민주주의 하는 나라 중에 정부가 '기업 프렌들리'를 앞장세운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거야. 그래서 투자가 늘어났나? 안 늘어났잖아."

그는 독일의 부활과 일본의 정체를 '경제민주화'에서 찾고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은 "독일은 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히 따르면서도 기업들이 그들의 힘으로 경제정책에 영향에 미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 중심의 경제가 아닌 중소기업 정책과 정치사회적 통합을 위한 타협의 정치에 방점을 뒀다.

- 저희가 이번에 독일에서 배웠던 것도 마찬가지였는데요.
"특히 독일은 90년대 동독체제를 변화 시키면서 통합까지 일궈냈어. 역사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지. 우리도 언젠가는 북한과 통일을 해야 돼. 시장경제체제로 (북한을) 변화 시켜야잖아. 그러기 위해선 우리사회를 통합 시켜야 돼. 우리가 독일을 연구할 이유가 있는 거지."

그는 지금처럼 우리 사회가 계층 간 양극화가 심해진다면 사회통합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봤다. 이어 "1970년대 중반부터 이런 경제구조를 계속 끌고가면 나중에 큰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왔다"고도 했다. 개발 독재와 재벌 중심의 경제로 단기간의 성장을 이룰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와 사회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경고를 꾸준히 해왔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이 지난 1990년 전후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앞장선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1987년 헌법 개정할 때 경제분과 담당위원장을 했어. 그 때 전경련이 결사적으로 로비하더구만. 당시 (전경련 회장을) 정주영씨가 할 때인데, 내가 혹시라도 헌법에다 (독일식 노사공동결정권법) 넣을까봐 그 난리를 친 거야. 내가 나중에 그 내용은 '헌법에 들어갈 수 없는 사안'이라고 하니까, 그 때서야 그 사람들이 잠잠해지기 시작했어."

그의 회고였다. 독일은 1951년에 노사가 기업의 중요한 결정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아예 법으로 규정해놨다. 김 전 위원장은 "아직 우리나라에 이를 도입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대기업이 여전하고, 우리 노조 역시 아직 그만큼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대선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쳐다보고 있는 모습.
지난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대선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쳐다보고 있는 모습.권우성

"박 대통령에게 '메르켈을 배우라'고 했는데... 잘 안되는 것 같다"

- 아마 요즘 노사공동결정권을 주장하고 나서면 이른바 '좌빨(좌파 빨갱이)'이라는 소리 듣기에 딱 좋을 듯하기도.(웃음)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거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좀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독일은 그렇게 한 거예요. 60년대 미국 휴렛팩커드가 독일에 투자를 많이 했어. 그래서 내가 물어봤어. '독일에선 기업이 따라야 할 규정이 많은데 왜 투자하냐'고."

- 뭐라고 하던가요.
"거기 대표가 그래. '독일서 생산하면 노사분규 없으니 납기일도 제대로 지키고 이윤도 제대로 나온다'는 거야. 독일의 사회 경제질서를 인정하고 효율을 가장 발휘할 수 있도록 관리만 할 것 같으면 (독일식 제도는) 문제가 안 되는 거지. 우리나라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해칠 거라고 거의 (규제를) 안 한 것 아니야? 역대 대통령들이 다 그랬고…."

- 그 사이 우리 재벌들이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해졌죠.
"(곧장)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가 효율이 없어져요. 그렇다고 투자가 늘어난 것도 아니고… 최근 몇 년새 우리가 경제민주화 얘기를 하니깐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자인 프리드먼이라는 사람도 '한국이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고 하잖아."

- '경제에 활력을 넣을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이 희망이 안 보이잖아. 일자리도 없는 데다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 수 있는 틀을 만들자는 것이 내 이야기야. 그게 경제민주화였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말한 것도 그거야. 좀 더 다른 경제의 틀을 짜고, 여기에 효율을 높이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거지."

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독일의 사회적 타협과 정부의 역할을 주목해왔다. 특히 보수 성향인 독일 집권 여당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을 언급하면서, "정치인은 굴욕을 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독 출신의 메르켈 총리가 서독에 기반을 둔 기독교민주당을 이끌고, 거대 야당인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과의 연정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곤 "(메르켈은) 이제 위대한 여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 일부에선 박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역정이 닮았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내가 오래전부터 (박 대통령에게) 메르켈을 소개하고, 벤치 마킹하라고 이야기를 해왔어. 그런데 지금 보면 벤치 마킹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 대통령이 되기까지는 벤치 마킹이 잘 됐는데, 그 이후에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인지.
"(잠시 있다가) 글쎄. 박 대통령도 1년 정도는 시행착오를 거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지만… 잘 해야겠지."

그는 여운을 남겼다. 정권을 잡고 약간의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는 이미 충분히 답이 나와 있다고 했다. 문제는 지도자의 의지라고도 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최근에 끝난 독일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흐름을 잘 살펴보라고 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이번에 (독일) 총선에 자유민주당이 의회에서 한 석도 못 얻었어. 한마디로 국민들이 퇴출시킨 거야. 그 사람들은 밤낮 없이 규제 완화하고 세금 내리자고 했거든. 국민들이 더이상 용납하지 않은 거지. 요즘 뭐, 인터넷이 발전해서 SNS 등 사회가 수평적으로 가고 있어요. 사회경제적으로 조화를 찾지 않으면 안되는 거예요."


#김종인 #박근혜 #경제민주화 #독일
댓글10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4. 4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5. 5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