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유성호
- 그런데 요즘 국정원 불법대선개입 의혹 등으로 세상이 어수선한데요."(특유의 냉소적인 어투로) 국정원이 말야, 괜히 쓸데없이 이상한 짓을 해가지고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는 데 지장 없는데… 정말 XX 놈들이지 뭐."
김 전 위원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표정은 어이없다는 것이었다. 이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그래서 "왜 그렇게까지 나섰을까요?"라고 물었다. 그의 손에는 담배 한 개비가 올라갔다. "(선거 패배에 대해) 불안해서 그랬을까요"라고 다시 물었다. 그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괜히 말이야. 그쪽(국정원)에서는 불안했는지 어떤지 몰라도, 그런 짓을 왜 해? 내가 이미 지난 6년 전부터 말했어요. 다음 대선(2012년)은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싸움'이라고 말이에요. 가만히 둬도 (박근혜 후보가) 당선이 되는 거였어.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해가지고…"그는 이번 사건의 파장을 심각하게 보는 듯했다. 그는 "지금 돌아가는 것이 아주 골치 아프게 생겼다"고 했다. 불법선거개입 의혹 사건이 향후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실제 최근 종교계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퇴진요구까지 나왔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독일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을 들면서 현 정부를 에둘러 비판했다.
- 내년에 독일을 가신다고 들었는데."지금이라도 갈 수는 있는데, 겨울엔 추워서… 3월에 가려고 해요.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연구가 될 것 같아."
그의 연구는 독일과 일본의 경제 성장과정을 실증적으로 비교, 분석해 보는 것이다. 이미 기초 자료조사 등도 끝난 상태였다. 독일 훔볼트 대학에 머물면서 그는 자신의 연구를 뒷받침할 자료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일본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경제민주화를 하자는 것""일본과 독일이 세계 2차대전 이후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한 국가 아니야? 두 국가 모두 제조업을 바탕으로 해서 성장했지. 우리나라도 일본을 본따서 지금까지 성장한 것 아니에요? 그런데 일본처럼 계속 재벌이나 기업 논리대로 경제정책을 운용하게 되면 일본과 비슷하게 갈 수밖에 없는거야. 그래서 내가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경제민주화를 하자고 하는 거야."- 이명박 정부 때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까지 했는데요."(고개를 흔들며) 그것이 참…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그런 것을 내세우고. 세계에서 민주주의 하는 나라 중에 정부가 '기업 프렌들리'를 앞장세운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거야. 그래서 투자가 늘어났나? 안 늘어났잖아."
그는 독일의 부활과 일본의 정체를 '경제민주화'에서 찾고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은 "독일은 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히 따르면서도 기업들이 그들의 힘으로 경제정책에 영향에 미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 중심의 경제가 아닌 중소기업 정책과 정치사회적 통합을 위한 타협의 정치에 방점을 뒀다.
- 저희가 이번에 독일에서 배웠던 것도 마찬가지였는데요."특히 독일은 90년대 동독체제를 변화 시키면서 통합까지 일궈냈어. 역사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지. 우리도 언젠가는 북한과 통일을 해야 돼. 시장경제체제로 (북한을) 변화 시켜야잖아. 그러기 위해선 우리사회를 통합 시켜야 돼. 우리가 독일을 연구할 이유가 있는 거지."
그는 지금처럼 우리 사회가 계층 간 양극화가 심해진다면 사회통합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봤다. 이어 "1970년대 중반부터 이런 경제구조를 계속 끌고가면 나중에 큰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왔다"고도 했다. 개발 독재와 재벌 중심의 경제로 단기간의 성장을 이룰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와 사회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경고를 꾸준히 해왔다는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이 지난 1990년 전후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앞장선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1987년 헌법 개정할 때 경제분과 담당위원장을 했어. 그 때 전경련이 결사적으로 로비하더구만. 당시 (전경련 회장을) 정주영씨가 할 때인데, 내가 혹시라도 헌법에다 (독일식 노사공동결정권법) 넣을까봐 그 난리를 친 거야. 내가 나중에 그 내용은 '헌법에 들어갈 수 없는 사안'이라고 하니까, 그 때서야 그 사람들이 잠잠해지기 시작했어."그의 회고였다. 독일은 1951년에 노사가 기업의 중요한 결정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아예 법으로 규정해놨다. 김 전 위원장은 "아직 우리나라에 이를 도입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대기업이 여전하고, 우리 노조 역시 아직 그만큼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