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6년... "그냥 살지유. 어떻게 한대유"

[인터뷰]태안기름유출사고 피해주민 가재분씨

등록 2013.12.10 15:05수정 2013.12.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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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단한 삶을 나타내듯이 집 대문앞에 생선 몇마리가 양식이다
고단한 삶을 나타내듯이 집 대문앞에 생선 몇마리가 양식이다신문웅

지난 6일 '태안기름유출사고 6년 보고대회'가 충남 태안문예회관에서 열렸다. 대회에 앞서 참가자들은 사고 이후 희생된 네 분의 영위 앞에 추모제사를 올렸다. 하지만 이곳에는 제일 먼저 유명을 달리한 고 이영권 선생의 유족은 보이지 않았다. 8일 아침 일찍, 이영권 선생의 유족 가재분(67세. 소원면 의항리)씨에게 전화를 드렸다. 


"그냥 살지유. 어떻게 한대유."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절망을 넘어 체념한 목소리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머니 어디세요."
"갈음리로 굴 따러 가네. 오후 4시경에나 집에 올텐데."
"왜 보고대회에는 안 오셨어요. 추모제도 드렸는데."
"가면 무엇허여."

전화를 끊고 그동안 신문에 보도되었던 가재분씨의 인터뷰 기사를 천천히 살펴 보았다.

'내 굴밭 빼앗기고 남의 굴 까며 연명하다니...'(사고 1년)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네요...'(사고 2년)
'좀처럼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사고3년)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사고4년)


지난해 사고 5주기 때를 제외하고, 그동안 가재분씨와 사고 1주기부터 4주기까지 뽑은 인터뷰 기사 제목을 살펴보면서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했다. 오후 4시경 소원면 의항리로 출발하면서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 쌀, 참치선물세트, 꿀을 샀다. 가는 내내 지난해 찾아뵙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어머니에게 나는 대뜸 "왜 멀리 근흥 갈음리까지 굴을 따러 가세요"고 물었다. "어디 이 주변에 남아 있는 굴이 있어야지, 그나마 오늘은 누가 차를 태워준다기에 갔다왔네"라고 말씀하신다.


 고 이영권씨의 유족 가재분씨
고 이영권씨의 유족 가재분씨신문웅

2007년 12월 7일 기름사고가 나기 전만 해도 남편 이영권씨와 더불어 정신이 없을 시기이다. 제법 규모있는 굴 양식을 하던 이들 부부에게 겨울은 그야말로 대목이었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가정이었다. 그해 겨울 막내 아들놈 장가만 보내면 별 걱정이 없었다.

바빠서 아는 사람 결혼식에 대신 봉투만 보낼 정도로 굴을 수확하고 굴밭을 정비하느라 매일 정신없을 부부에게 청천병력 같은 태안기름유출사고는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검게 물든 굴 양식장을 보면서 검은 눈물로 지새던 남편은 사고를 일으킨 가해기업도 정부도 책임을 회피하고 보상도 안 나온다는 말에 극단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후 어머니에게 돌아온 굴 양식장 보상비는 1000여 만 원이 전부였다.

내 굴밭에서 굴을 따다가 전에는 말 그대로 거들떠보지도 않던 석화를 주었고, 이제는 동네 바닷가에 남은 굴이 없어 차를 타고 남의 동네까지 가야하는 처지로 변한 상황이 태안기름유출사고 이후 우리 주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루 종일 굴을 따면 1Kg에 7000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하루에 2~3Kg 정도 따니까 하루에 손에 쥐는 돈이 채 2만 원이 안된다. 그나마 김장철이 지나 이제 굴을 찾는 사람들이 없어져 그나마 벌이가 없어진 현실이다. 날이 추워지면 이 굴까는 작업마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한달에 20여 만 원이 소득의 전부인 셈이다.

 가재분씨의 유일한 도구인 조세(굴까는 도구)
가재분씨의 유일한 도구인 조세(굴까는 도구)신문웅

"기름사고만 안 났으면 번듯하게 장가를 보냈을 막내놈을 지난해 어렵게 장가를 보냈는데 아직 자리를 제대로 못 잡아 그게 제일 걱정이유."
"천상 바다에서 무엇을 해야 십원 한 장이라도 얻는데 바위에 기름을 먹었는지 굴이 조세를 대면 그냥 부셔져 버려 굴까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유."
"우리같은 사람들 살게 해주려면 공공근로라도 많이 생겨야 하는데 그것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가 막막해유."

연신 어머니는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그래도 한 사람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기자 양반이라도 찾아주어 푸념이라도 늘어놓으니 조금은 기분이 풀린다고 하신다.

한 시간 넘게 아랫목에 앉아서 얘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깨끗해진 의항리 해변의 노을을 보았다. 어머니의 가슴에 검게 물든 검은 멍을 우리들이 함께 조금씩이라도 풀어주어야 할 의무를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의 눈물이 흘렀다.
덧붙이는 글 바른지역언론연대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태안기름유출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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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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