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삶을 나타내듯이 집 대문앞에 생선 몇마리가 양식이다
신문웅
지난 6일 '태안기름유출사고 6년 보고대회'가 충남 태안문예회관에서 열렸다. 대회에 앞서 참가자들은 사고 이후 희생된 네 분의 영위 앞에 추모제사를 올렸다. 하지만 이곳에는 제일 먼저 유명을 달리한 고 이영권 선생의 유족은 보이지 않았다. 8일 아침 일찍, 이영권 선생의 유족 가재분(67세. 소원면 의항리)씨에게 전화를 드렸다.
"그냥 살지유. 어떻게 한대유."전화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절망을 넘어 체념한 목소리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머니 어디세요.""갈음리로 굴 따러 가네. 오후 4시경에나 집에 올텐데.""왜 보고대회에는 안 오셨어요. 추모제도 드렸는데.""가면 무엇허여."전화를 끊고 그동안 신문에 보도되었던 가재분씨의 인터뷰 기사를 천천히 살펴 보았다.
'내 굴밭 빼앗기고 남의 굴 까며 연명하다니...'(사고 1년)'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네요...'(사고 2년)'좀처럼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사고3년)'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다'(사고4년) 지난해 사고 5주기 때를 제외하고, 그동안 가재분씨와 사고 1주기부터 4주기까지 뽑은 인터뷰 기사 제목을 살펴보면서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했다. 오후 4시경 소원면 의항리로 출발하면서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 쌀, 참치선물세트, 꿀을 샀다. 가는 내내 지난해 찾아뵙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어머니에게 나는 대뜸 "왜 멀리 근흥 갈음리까지 굴을 따러 가세요"고 물었다. "어디 이 주변에 남아 있는 굴이 있어야지, 그나마 오늘은 누가 차를 태워준다기에 갔다왔네"라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