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 학우! 학우께서 이 글을 볼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 없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현우 학우의 물음에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학우께서는 물었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관련기사 :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찌 다들 이리 안녕하신건지"). 어찌 알면서 물으십니까. 안녕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안녕할 수가 없습니다. 안녕하지 않습니다. 안녕 못합니다.
현우 학우도 잘 알다시피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일일이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수많은 징후들이 민주주의의 퇴보를, 억압과 압제의 부활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청년을, 대학생을 극한의 경쟁으로 몰아넣는 사회,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주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일수록 목소리가 필요하지만, 이런 사회일수록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선동이라는 냉소, 무지의 소산이라는 경멸, 소수의 목소리에 불과하다는 편견, 대표성이라는 족쇄 등 수많은 기제들이 우리를 자기검열에 빠트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잦아들게 합니다.
정당도, 언론도, 시민사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때에 학생사회 역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회는 침묵하고, 자치단위들의 목소리는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며, 누군가의 단말마는 허공에서 비산됩니다.
하지만 현우 학우! 그것이 누구의 책임입니까? 학우들의 정치적·사회적인 무관심이 비단 학우들만의 탓입니까? 소통과 공감이 부재한 세상 속에서 이렇게 길들여진 우리 학우들만을 어떻게 탓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시대를 이렇게 만들고 우리에게 이 '레이스'에 참여하도록 강요한 기득권층도 문제고, 이웃 학우들을 끌어안지 못한 채 구태를 반복하며 내분에 휩싸이고, 무의미한 투쟁 방법에 갇혀있던 학우들도 문제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저기 죽어가는 사람, 저기 낮은 곳에서 피흘리는 사람,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느냐고 외쳐봤자 또다시 별 의미 없이 흩어질 뿐입니다.
현우 학우! 우리가 안녕할 리가 없잖습니까. 보십시오! 현우 학우의 외침을 들은 저 많은 학우들, 푹푹 나리는 눈에도 정경대 후문을 가득 메우며 그대의 질문에 응답하는 학우들이 있습니다. 대학을 떠나겠다던 어느 학우의 절절했던 외침 이후, 그 어떤 학우의 외침이 이토록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던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안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녕해서 침묵하고, 안녕해서 방관하고, 안녕해서 무관심한 것만은 결코 아닙니다.
현우 학우. 위기는 기회라고 했습니다. 교정까지 들어와 5·18 사진전을 훼손한 일간베스트 회원 덕분에, 오히려 더욱 뜨겁게 80년 광주를 외칠 수 있었습니다. 새천년 이후 2013년처럼 고대 학생 사회가 이처럼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자고 외친 적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국정원 덕분에 공정한 선거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강정 덕분에 한반도 안보와 동북아 패권주의를, 밀양 덕분에 지역민이 배제된 중앙정부의 독단적 결정에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대가 용기내어 내 건 저 말 한마디에 이토록 많은 학우들이 철도의 민영화에 대해, 거리에 나와 직위해제된 저 수천의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독재에서 민주로, 압제에서 저항으로, 폭력에 평화로 맞섭시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우 학우. 저도 안녕하지 않습니다. 항상 불편합니다. 이 사회는 왜 이리도 많은 비합리와 부조리·부정의로 가득한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문제들 앞에서 저는 작고 초라합니다. 저는 일상 속의 선배·동기·후배 학우들과의 인간관계에서 서로 상처받고 상처주는 것이 아픈 평범한 사람이고, 수많은 단점들을 가지고 있는 모자란 이이며, 세상 모든 현상·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 무지한 학생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극단적이라고 비난을 듣고, 누군가에게는 개량주의라며 공격받습니다. 그래서 참살이길을 헤매며 혼자 술에 취해서는 고작 주변의 몇몇이 볼 수 있을 정도의 부끄러운 몇 마디를 끄집어낼 뿐입니다. 저의 목소리가 작은 것, 제가 더 깊이 참여하지 못한 것, 제가 더 관심 있게 바라보지 못한 것에 새삼스레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현우 학우, 그래서 감사합니다. 지금 같은 때에, 학우 같은 사람이 저와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는 벗이라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동기라서, 함께 이 시대에 맞서 하루하루의 삶을 영위해나가야 할 동지라서 말입니다.
현우 학우, 우리 함께 또 걸어나갑시다. 현실주의자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를 비관적으로 직시하고, 이상주의자의 눈으로 미래를 낙관적으로 희망합시다. 두 발은 이 땅에 굳건히 발 붙인 채, 두 눈은 저 하늘 저편 너머를 바라보며 걸어갑시다. 독재에 민주로, 압제에 저항으로, 폭력에 평화로 맞섭시다.
주변 학우들이 우리의 목소리들에 경멸·냉소·무관심으로 일관할 때, 우리가 그들에게 똑같이 경멸과 냉소와 선민의식으로 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학우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서로의 고민을 나눌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관심에는 더 깊은 관심으로, 불관용에는 더 넓은 관용으로, 방관에는 더 많은 참여로 대응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대의 작은 외침이 이렇게 커졌으니, 여기서 이렇게 헛되이 묻히게 하지 않겠습니다. 더 다양한, 더 많은, 더 큰 목소리를 모아 더 고민하고, 더 성찰하고, 더 행동해 이 사회를 다함께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봅시다. 그것이 우리에게, 대학생에게 이 시대가 준 과제일지 모르겠습니다. 과제는 제 때에 제출해야지요.
- 선배들이 물려준 "침묵을 가르는 해방의 함성"이라는 구호에 부끄럽고 싶지 않아 매일 몸부림치며, 실수하는 고려대 미디어08 곽우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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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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