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 단장면 동화전마을에 살면서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고 나선 주민 권아무개(51)씨가 13일 오후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96번 철탑 현장 옆에 있는 황토방 농성장에서 수면제와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는데, 권씨는 2명의 유서를 써서 갖고 있었다. 사진은 유서 가운데 한 장이다.
윤성효
다른 유서는 공사장 주변 접근을 막는 경찰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 놓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 땅에 내 마음대로 산에 못 가는 일이 이 세상에 없다. 경찰과 한전 놈하고 이야기 주고받고 하는 것. 우리는 인가(간) 취급도 못 받받고. 왜 우리 땅을.""경찰이 무전으로 '땡칠이 엄마 올라간다'고 말해"권아무개씨와 남편은 동화전마을에서 밤·대추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부산에 살던 부부는 몇 해 전 이 마을에 집을 마련해 놓았고, 올해 초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이다.
권씨 부부는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에 적극 나섰다. 지난 11월 중순경 한국전력공사가 96번 철탑 공사에 들어가자 동화전마을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는데, 이들 부부도 함께 했던 것이다.
남편은 이때 다쳐 보름 정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도 했다. 권씨는 음독자살 시도 뒤 나흘만인 지난 6일 숨을 거둔 고 유한숙(74세) 할아버지의 빈소·분향소를 찾기도 했고, 지난 11일 저녁 밀양 영남루 계단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남편은 "집사람은 최근 들어 '죽는다'를 소리를 자주 했고, '내가 죽으면 송전탑이 서지 않겠지'라는 말을 했다"며 "최근 철탑이 자꾸 올라가고 하니까 주민들은 불안해 하는데, 집사람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집사람은 술을 마실 줄 모르는데, 수면제 등을 먹을 당시에는 술을 마셨던 덧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96번 철탑 쪽에 있는 황토방 농성장의 상황이 궁금해서 어제(12일) 올라가려는 것을 못 올가 가게 했고, 그러다가 13일 오전 혼자서 올라갔다"고 밝혔다.
남편은 권씨가 황토방 농성장으로 올라가기 전에 산 입구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다고 밝혔다. 그는 "집사람이 산으로 올라가려고 하니까 경찰은 마을 주민인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라 했고, 집사람은 농사짓는 사람이 무슨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다니느냐며 한 동안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사람은 경찰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해 왔다"며 "집사람이 애완견을 데리고 다니는데, 경찰들 끼리 무전으로 주고 받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개를 '땡칠이'라며 '땡칠이 엄마 올라간다'는 말을 했던 것이고, 채증한다며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었다. 경찰에 당한 게 많이 억울하고 분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에 못 올라가게 하는 경찰을 보니 악마 같다는 느낌"권씨는 황토방 농성장에서 수면제와 약을 먹은 뒤 남편한테 전화로 알려주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곧바로 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산 입구로 갔는데, 경찰에 막혔던 것이다.
권씨 남편은 "집사람한테 전화를 받고 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갔더니, 경찰이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했다"며 "사람이 산에서 약을 먹었다고 했는데, 못 올라가게 하는 경찰을 보았을 때 악마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분노했다.
당시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이 주민과 함께 산에 올라갔는데, 이 사무국장은 "처음에는 술을 마셨다고 해서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고, 황토방에 들어갔더니 약봉지가 늘려 있어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밀양경찰서 소속 경찰관들도 있었다. 주민들은 경찰에 헬기를 통해 권씨를 병원으로 이송할 것을 제시했는데, 경찰은 착륙이 불가능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