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정세균 위원장이 진술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희훈
"노무현 대통령은 고영구 국정원장에게 국내사찰을 하지 말라고 했다. (제도개혁을 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면 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후회되고 잘못된 판단인 것 같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무수석비서관이었던 유인태 민주당 의원은 회한이 섞인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 기능 폐지 주장을 받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지난 1974년 중앙정보부(국정원의 전신)의 조작사건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적 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유 의원의 말을 받아, 여야 모두의 반성을 촉구했다. 그는 "여야 모두 집권할 때의 생각과 야당 때의 생각이 180도 달라지는 것이 지금 국정원 개혁 방안을 놓고 벌이는 공방"이라면서 "유인태 의원이 말했듯이, 새누리당이 야당 시절에 국정원 개혁 방안을 내놓았는데, 지금 민주당 개혁방안과 대동소이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 의원은 곧 속내를 드러났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옹호한 발언을 거론하며, 국정원의 심리전단과 대공수사권 유지를 강조했다. 16일 국정원개혁특위 공청회에서 여야는 전문가들을 불러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여야는 대공수사권과 심리전단 폐지를 둘러싸고 설전을 벌였다.
유인태 의원의 회한 "참여정부 때 했어야..."새누리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과 전문가의 대공수사권 폐지 주장에 대해 국정원의 대공수사 능력을 옹호했다. 이에 유인태 의원은 "간첩사건을 조작하는 데에도 노하우가 축적돼 있다"면서 "요새 (간첩사건) 무죄가 많이 난다, 재심에서 몇십 년 만에 무죄판결이 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더군다나 저는 중정에서 한 달 넘게 온갖 고문을 받았고, 중정이 판사에게 '첫줄 사형, 둘째 줄 무기징역, 셋째 줄 20년 형' 쪽지를 주던 시절을 겪었다"면서 "당시 8명은 사형을 선고 받고 다음날 집행됐지만 나머지는 열 달 만에 나왔다, 이러한 슬픈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민청학련 사건 재심을 통해 38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그러면서 참여정부의 국정원 개혁 실패에 대해 언급했다. 유 의원은 "2000년대 초 국정원의 불법 도청 사건으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국정원 폐지와 해외정보처 신설을 주장했다, 당시 정형근·이강두 한나라당 의원이 만든 국정원 개혁법안과 비교해, 이번 여야 4자 회담 합의 사항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야당 추천 전문가로 나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이광철 변호사에게 "새누리당이 야당일 때 국정원을 개혁하자고 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도 개혁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선의를 가지고 사찰을 못하게 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과의 독대를 하지 않았고, 국정원이 댓글을 통해 정책을 홍보하겠다는 제안도 거절했다는 증언이 있다"면서 "정보기관이 권력기관화 되는 것을 막으려했던 집권자의 선의가 발현된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유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더 전향적인 자세를 가지고 제도 개혁에 나섰다면 정보기관이 훨씬 더 선진적인 정보기관이 되고, 국민의 신뢰를 얻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처럼 우리도 정권이 바뀌어도 국정원장을 10년씩 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원장이 바뀌면 우수수 쫓아내니까 국정원 직원들이 최고의 정보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라 정권에 잘 보일까만 생각한다, 어느 세월에 고급정보기관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여당 추천 전문가인 한희원 동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답했다.
여야, 대공수사권·심리전단 폐지 두고 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