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나무? 돈나무!... 진주 가좌산에서 배우다

경남 진주시 가좌산, 주제가 있는 길을 거닐며

등록 2013.12.20 14:43수정 2013.12.2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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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진주 가좌산에는 구간별로 주제가 있다. 청풍길, 대나무 숲길, 어울림 숲길, 물소리 쉼터, 맨발로 황톳길, 고사리길. 사진은 청풍길.
경남 진주 가좌산에는 구간별로 주제가 있다. 청풍길, 대나무 숲길, 어울림 숲길, 물소리 쉼터, 맨발로 황톳길, 고사리길. 사진은 청풍길.김종신

"골라(걸어) 가이소."

입구에서부터 왼쪽으로 가야 할지,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내게 70대 노부부가 어느 쪽으로든 좋다고 말한다. 내가 망설이는 곳은 경남 진주시 가좌산 걷기 좋은 길이라는 선간판이 서 있는 가좌산 등산로 입구다. 왼편으로 가면 '청풍길'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곳이지만 오른쪽으로 길을 잡았다.


지난 18일, 조금 전에 아내를 내려주고 나는 곧장 여기로 왔다.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가좌시험림남부산림연구소 수목원이 있는 옆길로 올랐다. 차 하나와 사람이 넉넉히 지나가도 될 정도의 넓은 임도가 나온다. 양옆으로 각종 나무 이름들이 서 있다. 살아있는 나무도감이다.

합다리나무, 참중나무, 자구나무, 종비나무, 삼나무, 화백, 편백, 잣나무,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 일본전나무, 구상나무, 비자나무, 신나무, 사람주나무….

나무 이름 하나하나를 부르면서 올라가는 길은 재미나다. 소나무라는 한 조상에서 나온 소나뭇과 나무들만 살펴보기도 하고 재미난 나무 이름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혼자 걷는 길이 심심하지 않다.

의사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가래 삭이는 데 효험이 좋은 '무환자나무'가 저기 있다. 나도 좋아하고 우리 집 막내도 좋아하는 '돈'. '돈나무'도 보인다. '돈나무'를 원래 제주도 사람들이 '똥나무'(똥낭)이라고 부른다. 꽃 지고 나면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묻어 겨울에도 파리를 비롯한 곤충이 많이 찾아서 '똥낭'이라고 했단다. 이 '똥나무'를 이 관상수로 개발한 일본사람이 '똥'을 '돈'으로 잘못 알고 발음하여 '돈'나무가 됐단다. 돈에서 똥냄새가 나는 이유인지 모른다. 또한 '똥나무'란 거북해 순화하여 '돈나무'가 됐다고 한다.

 ‘사랑의 열매’처럼 붉고 탐스러운 열매가 맺힌 낙상홍
‘사랑의 열매’처럼 붉고 탐스러운 열매가 맺힌 낙상홍김종신

'사랑의 열매'처럼 붉고 탐스러운 열매가 맺힌 낙상홍이 눈에 확 들어온다. 모두가 이파리를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겨울. 이 추운 겨울에 푸른 잎과 빠알간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만큼 추위에 강한 나무라 즐겨 보기 위해 관상으로 많이 심는 모양이다.


낙상홍 옆에는 붉은 열매를 가진 '이나무'가 또한 있다. '이나무' 덕분에 추운 마음 달랜다. 입구에서 망설인 지 불과 10여 분 나무 이름 하나하나 살피며 올랐는데 벌써 가좌산 능선이다. 길은 좀 전보다 좁아졌다. 그럼에도 사람 다니기 넉넉하다. 물론 오솔길처럼 사람 한 명 겨우 지나다닐 길도 있다.

나무로 산책로가 기다랗게 연결돼 있다. 입구에서 왼편으로 왔다면 이 길로 왔겠지. 한 무림의 사람들이 저만치 걸어온다. 팔을 직각으로 힘차게 펴는 사람도 있고 고개를 계속 좌우로 흔들면서 오기도 하고. 모두 산책로를 자기 방식으로 걷는다. 황톳길을 맨발로 걸어보라는 황톳길이 나타났다. 날 추운 겨울 아니라면 신발을 벗고 걷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황토가 사람들의 무게에 다져있다.


가좌산에는 구간별로 주제가 있다. 청풍길, 대나무 숲길, 어울림 숲길, 물소리 쉼터, 맨발로 황톳길, 고사리길. 어디 주제 길을 선택해 걸어도 애초부터 사람은 여기 처음인 양 숲이 시원하다. 불과 10여 분만 올라와도 왕복 10차선 큰 길이 저 밑에 있었나 싶게 숲이 그윽하다.

한겨울 오전의 차가운 공기인데도 '춥다'기 보다는 '시원하다'는 느낌이다.

"괜찮아, 괜찮아~"
"녀석이 내년이면 고등학생인데…."

저만치에서 앞서 걷던 아줌마 두 명이 길옆 긴 의자에 앉아 자녀들 기말고사 성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조곤조곤 나누는 이야기마저도 숲은 사위 조용해 마치 라디오 중계방송을 듣듯 다 들린다.

능선을 타면서 갈림길을 자주 만난다. 경상대학교로 가는 길, 연암공업대로 가는 길, 가호동으로 가는 길 등. 우리 살아가는 길도 저렇게 많은 선택의 연속이었는데. 30여 걸었나 전망 좋은 곳이 나타난다. 진주시의 상징 새인 백로가 거주하는 숲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지금은 백로가 떠나고 없다. 다시 따뜻한 봄이면 여기 날아와 둥지를 꾸미고 새끼를 키우겠지.

 18일, 새벽에 내린 소슬 비에 땅은 젖지 않았다. 땅 위에 가페트처럼 폭신하게 덮고 있는 나뭇잎들이 물기를 머금고 있을 뿐.
18일, 새벽에 내린 소슬 비에 땅은 젖지 않았다. 땅 위에 가페트처럼 폭신하게 덮고 있는 나뭇잎들이 물기를 머금고 있을 뿐. 김종신

18일 새벽에 내린 소슬 비에 땅은 젖지 않았다. 땅 위에 가페트처럼 폭신하게 덮고 있는 나뭇잎들이 물기를 머금고 있을 뿐. 저만치에서 돌아가는 사람이 보인다. 반환점이란다. 왔던 길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더 가파른 오솔길로 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냥 오른쪽으로만 걸었다.

가파른 곳이라 그런지 계단이 보인다. 요즘 흔하게 보이는 산책로를 뒤덮는 계단을 가좌산에서 처음 보았다.

 경남 진주의 관문, 석류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진주 동부지역과 남강.
경남 진주의 관문, 석류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진주 동부지역과 남강.김종신

1시간여 걸었다. 석류공원이다. 진주시가 진양군과 도농통합을 이루어 시가 확장되었지만, 아직도 석류공원을 지나야 진주 시내에 들어가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진주의 관문 역할을 한 곳이고 진주 시가지 동부 지역을 한눈에 내려 볼 수 있다. 남강이 흐르고 상평공단 내 종이공장과 비단 공장 굴뚝에서 하얀 연기 푸른 하늘 향해 뻐끔뻐끔 올라간다. 편도 2차선 너머에 남부산림연구소가 보인다. 편백 숲이 좋단다.

1시간여 기분 좋게 길을 걸었다. 총연장 3.3km의 가좌산은 순환형 코스다. 높이 116.8m의 가좌산은 나지막하다. 등산했다는 느낌조차 없이 편안하게 길을 걸었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까지 쉽게 거닐 수 있다. 가좌산 걸으면서 연말에 찌든 일상에서 벗어났다. 늘 충전해달라고 보채는 휴대전화 배터리처럼 지친 내게 삶의 활기 가득 채운 하루다.
덧붙이는 글 해찬솔일기 http://blog.daum.net/haechansol71/
경상남도 감성뉴스 인터넷신문 <경남이야기> http://news.gsnd.net/
#진주 가좌산 #주제가 있는 길 #신책로 #진주 가호동 #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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