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왕후 민씨와 이방원(김영철 분).
KBS
제1차 왕자의 난이 이방원을 실권자로 만들어주었다면, 제2차 왕자의 난은 그를 진짜 왕으로 만들어주었다. 이방원은 제1차 때는 정권에 대한 도전자의 입장에 있었던 데 비해, 제2차 때는 둘째형 이방과를 주상으로 모신 실권자로서 이방간(넷째형)의 도전을 받는 입장에 있었다.
1차 때 이방원에게 병장기를 제공했던 민씨는 2차 때는 정치적 투지를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어찌 보면 1차 때보다는 2차 때의 역할이 더 컸다고도 볼 수 있다.
바로 위의 형인 이방간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이방원은 1차 때와는 달리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복형제와 칼을 맞대야 했기 때문이다. 1차 때 아버지 이성계를 몰아내기는 했지만, 이때는 아버지가 아니라 정도전을 직접 상대했다. 그래서 이방원은 그다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2차 때는 동복형과 직접 싸워야 했기 때문에 양심상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 이방원의 결단을 촉구하고 양심을 무디게 만든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민씨였다. 정종 2년 1월 28일자 즉 1400년 2월 22일자 <정종실록>에 따르면, 민씨는 이방원에게 갑옷을 입혀주고 대의를 설명하면서 출정을 독려했다. 민씨의 모습은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을 독려하는 감독 그 자체였다.
민씨의 격려를 받은 이방원은 밖으로 나가 이방간을 격파했다. 이로써 이방원은 유력한 정적을 모두 제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방원에 대한 도전자가 모두 사라지자, 정종 이방과는 이방원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렇게 해서 이방원이 제3대 주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방원 정권이 탄생했기 때문에, 원경왕후 민씨는 단순히 퍼스트레이디가 아니라 정권의 대주주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주상이 임기제였고 여성도 주상에 출마할 수 있었다면, 민씨도 분명히 차기나 차차기를 노렸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남편이 퇴임한 뒤에 예조판서(국무장관) 직을 수행하다가 기회를 봐서 주상에 출마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씨가 정치적 파워를 갖는 것을 가장 싫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방원이었다. 이방원은 여성을 정치적 조력자로 활용하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여성과 더불어 권력을 나누고 싶어하진 않았다. 그래서 왕위에 오른 직후부터 그는 민씨를 약화시키기 위한 또 다른 정치투쟁에 착수했다. 평소 그는 아내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항상 아내의 야심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상이 된 이방원은 권씨(권의빈, 의빈 권씨)라는 후궁을 선발했다. 권씨가 지혜롭다는 것이 최대 이유였다. 지혜를 가졌다는 것으로 보아, 권씨도 신덕왕후 강씨나 원경왕후 민씨처럼 이방원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할 만한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 민씨가 권씨의 후궁 책봉을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극렬히 반대한 것을 보면, 권씨도 민씨 못지않은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 결국 이방원은 권씨를 궁에 들였고, 민씨는 이방원의 참모진에서 배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