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반대' 삼평리에 울려퍼진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경북 청도 삼평리에서 성탄예배... "도시 때문에 농촌이 망해"

등록 2013.12.26 09:39수정 2013.12.2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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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25일 오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대구와 경산에서 온 주민들 150여 명이 모여 성탄절 평화예배 시간을 가졌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25일 오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대구와 경산에서 온 주민들 150여 명이 모여 성탄절 평화예배 시간을 가졌다.조정훈

"성탄은 함께 사는데 구원이 있다는 진리를 경축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더 이상 남의 일이라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데 구원이 있다는 것을 하느님이 확인시켜 주셨다는 것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마을 주민들이 갈라지고 산이 파헤쳐진 작은 마을에도 예수는 평화를 전했고,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주민들은 기쁜 찬송을 부르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평화를 기원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와 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는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송전탑건설 현장이 올려다 보이는 '삼평리 평화공원'에서 마을 주민들과 대구와 경산 등지에서 응원하러 온 주민등 150여 명이 모여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렸다.

'삼평리에 평화를, 온 우주에 평화를'의 주제로 한 성탄예배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 찬양을 시작으로 성서 낭독과 고경수 목사의 기도, 이차연 할머니의 삼평리 이야기, 박용욱 신부의 강론, 할머니들에게 드리는 편지, 평화의 찬양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정평위 고경수 목사는 삼평리 땅에 송전탑 대신 하느님의 참평화가 오기를 기도하고 이 땅의 억눌리고 고통받는 생명들에게 하느님이 주신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원했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25일 오후 열린 성탄평화예배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할머니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25일 오후 열린 성탄평화예배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할머니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조정훈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이차연 할머니가 25일 오후 열린 평화예배 시간에 마을을 찾아준 주민들에게 감사의 큰 절을 하고 있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이차연 할머니가 25일 오후 열린 평화예배 시간에 마을을 찾아준 주민들에게 감사의 큰 절을 하고 있다.조정훈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평위 박용욱 신부는 강론을 통해 "도시때문에 농촌이 망하는 사정은 성경이 쓰여진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며 "제구실을 해야 할 사람들이 구실을 안 하고 도시가 농촌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척하고 내가 편하자고 남의 고통을 모른척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며 "내가 편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루아침에 정든 고향을 떠나든지 말든지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남들이 하루아침에 평생 일구어온 땅을 잃던지 말든지 남의 일을 제 멋대로 생각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죄라고 일컫는다"라고 말했다.


박 신부는 "권력자들은  남의 일이라고 그냥 못 보겠다고 힘을 보태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을 '외부세력'이라고 하고 우리가 남이기를 바란다"며 "하지만 예수님은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데 구원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다"고 말했다.

이차연 할머니는 "살기 좋은 삼평리에서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았는데 송전탑이 들어서면서 마을을 갈라놓았다"며 "우리는 약하지만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해 싸울 것"이라고 말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차연 할머니는 또 "용역들이 우리 할머니들을 끌어내 실신하기까지 했다"며 "저들은 큰소리치고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업무방해로 벌금까지 냈다"고 분통해했다. 이 할머니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마을을 찾아주셔서 큰 힘을 얻어 감사하다"며 넙죽 엎드려 큰 절을 했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25일 오후 열린 성탄 평화예배가 끝난 후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선물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25일 오후 열린 성탄 평화예배가 끝난 후 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선물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조정훈

 25일 오후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열린 성탄절 평화예배에서 시와 찬미 교회에서 온 청년들이 성탄송을 부르고 있다.
25일 오후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열린 성탄절 평화예배에서 시와 찬미 교회에서 온 청년들이 성탄송을 부르고 있다.조정훈

송진실 학생은 할머니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한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흉물같은 송전탑이 들어와서 얼마나 아프고 억울하십니까"라며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왜곡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소수의 희생을 통해 전기를 얻으려고 청도와 밀양에 아픈 상처를 모른 채하는 그들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평생동안 지켜온 터전에 대해 그저 보상금 몇 푼주고 송전탑 건설하려는 한전과 정부가 불통"이라고 말하고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싸우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건강을 기원했다.

성탄예배를 마친 후에는 마을주민들이 준비한 음식과 떡을 나누고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면서 "평화를 기원합니다"라며 인사하기도 하고 송전탑 대신 평화를 기원하기도 했다.

한편 청도군에는 41기의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인 가운데 각북면 삼평리에 들어설 7기의 송전탑 가운데 6기는 이미 들어서 있고 1기는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이곳 주민들은 송전탑을 지중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송전탑 반대 #삼평리 #성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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