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된 "노예"들이 잡혀오는 모습영문도 모른 채 백인들에게 "사냥"이 된 주민들, 아니 "노예"들은 이렇게 해안가까지 수백~수천 km를 끌려왔다. 그리고 이곳 지하감옥에 갇혔다. (사진: 케이프코스트 박물관, 허가받은 사진촬영입니다.)
차승만
케이프코스트는 19세기 후반까지 식민지 수도로, 백인들이 금광과 노예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누리던 곳이었다. 백인들은 이곳 해안가인 케이프코스트에서 멀리 떨어진 가나 북부, 심지어는 말리에서부터 현지 주민들인 흑인들을 '사냥'하여 이 성의 지하 감옥으로 몰아넣었다. 노예 상선이 들어올 때까지 백인들은 '사냥한 노예'들을 이 지하감옥에 가두어 '보관'하다, 상선이 들어오면 건강한 노예를 골라 작은 카누에 태워 상선까지 보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계단 대신 작은 비탈로 만들어져 있다. 한발 두발 내려갈수록 차가운 냉기와 눅눅한 습기가 두 팔을 타고 흘러 오싹하게 뒷골을 파고들었다. 생선 썩은 것 같은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한 무리의 여행객들을 몰고 온 여행가이드는 마침 지하 감옥의 이 정체 모를 냄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지하감옥 안에 갇힌 사람들은 이미 너무 먼 길을 걸어오며 병이 들고 지쳐있었어요. 노예상인들은 이 숨막힐 듯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 사냥한 노예들을 무조건 몰아넣었죠. 그들은 그냥 가나 여기 저기서 흩어져 살던 우리 부모, 우리 조상들이었어요. 감옥에서 그들 중 일부가 병들고 아파서 하나 둘 죽어갔어요. 그렇지만 노예상인들은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어요. 그 시체들도 꺼내주질 않았던거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모두 지하 감옥에 그냥 내버려둔거죠."
노예상인들은 죽은 시체를 처리하지 않아 지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노예선이 올 때까지 시체들과 같이 지내야 했다. 이렇게 지하 감옥 한 켠에는 시체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무려 몇 백 년 동안! 그렇게 감옥에는 시체더미가 점점 많아 지며 바닥에서 무릎높이가 되는 위치까지 쌓여 갔다.
감옥을 탈출하는 천재적인 탈옥수들의 이야기는 단지 영화 속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일까?. 지하 감옥 벽 사방을 따라 사람들의 손톱자국이 가득하다. 절규를 하며 벽을 긁어대던 사람들, 그들의 비명이 썩어가는 시체더미와 함께 이 작은 지하 공간을 가득 채웠을 것이라 생각하니 역겨움과 공포가 밀려온다.
지하감옥의 바닥은 사람들이 대소변을 받고 흘러내린 흔적이 남아있다. 사람들이 죽고 시체가 무더기로 쌓여 썩어가면서 만들었을 자국이 벽을 따라 선명하게 물들어있다.
지하 감옥에선 햇볕을 일체 볼 수 없었다. 지금은 관람객들이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천장 입구 일부를 뚫었다. 지하 감옥에 들어온 햇빛이 수백 년 간 쌓여온 지하 감옥 벽의 선홍색 피자국과 손톱자국을 비추며 이곳에 갇힌 채 죽어간 흑인들의 노여움을 자극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