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코스트 성곽의 대포천만 명이 넘는 "노예 사냥"이 가능했던 건 백인들에게 술과, 총을 받는 대가로 이웃 부족민들을 팔아넘긴 일부 부족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승만
족장들은 백인들과 거래를 했다. 총과 술을 받는 대신에 자신들의 이웃 부족민들을 사냥해 백인들에게 그 대가로 제공한 것이다. 술맛을 본 사람들은 점점 중독이 되어 갔고, 술은 더 깊숙이 내륙으로 퍼져갔다. 이 손쉬운 거래의 단맛을 본 일부 족장들은, 중독되는 강도만큼이나 더 많은 수의 노예들을 사냥해갔다. 그들에게 총이 생기면서, 무기라고는 창과 칼밖에 차지 않은 다른 부족을 점령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이렇게 백인들은 자신들의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으면서 수백만 명이 넘는 노예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식민 지배자들과 야합해 이웃 부족을 노획하고 백인에게 팔아 넘긴 부족이 어딘지, 그리고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사람마다 이야기가 달라 확실치 않다. 특히나 정확한 기록자료가 많지 않아 그 진위 여부를 알기가 어렵다. 한 안내 서적에는 아샨티 부족이라고 나오는데, 아샨티 부족은 현재 가나 내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으로 여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왕이 있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단지 개인적인 경험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가나의 친구들에게 식민지 지배, 노예 무역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 놀랍게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가 아주 많다. 3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식민지배를 하며 자원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조상도 수탈해간 서유럽, 특히 영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간혹 묻곤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매우 놀라웠다.
"글쎄... 뭐,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데?""음, 식민지 지배는 분명 나쁜 거지. 그렇지만 영국이 우리에게 서구 문물도 전파해줬고, 바깥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준 것도 사실이니까. 철도 같은 것도 그 때 생긴 거고."식민지배를 겪어본 어느 민족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리고 그나마 지식층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이렇다면?
처음이 가나 친구들의 이런 반응이 혼란스러워, '분노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하기도 했다.
"분노도 어느 정도 대항해볼 힘이 있을 때 하는 거야. 이들은 유럽에 대해 대항하기에는 너무 격차가 벌어져 있어서, 아예 체념하는 것일지도 몰라. 왜냐? 그러는 게 훨씬 건강에 이롭거든."가나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한국 친구의 이야기다. 역사를 잃지 않는 것은 한편으로는 '분노한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왜일까? 케이프코스트 성 관광 가이드의 '분노 섞인 안내'는 가나 입국 후에 처음 보는 것이라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이 '어색한 분노'가 가이드로서의 연출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를 향한 지나친 모독일까?
누군가는 또 "16세기부터 있었던 과거 역사에 대해 지금 분노해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테러리스트라도 조직해야 하는 겁니까?"라며 반문할지 모른다. 글쎄, 꼭 테러리스트를 조직하거나 아니면 짐바브웨처럼 백인들을 모두 몰아내야만 하는 것만이 분노의 표현일까? 얼마든지 '건강한 분노의 표출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가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박차고 넘어갈 의지, 그것은 이런 분노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오늘도 이 분노를 달래기 위해 영국은 더 많은 금광을 캐가는 대신, 가나에 가장 많은 원조사업자금을 지원하는 나라 중 하나로 자국민의 양심을 달래고 있고, 가나국민들에겐 '고마운'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아무리 역사와 정치, 그리고 현실이 서로 다른 영역이라 해도 이건 참 아무리 봐도 쉽게 납득이 되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