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드러낸 철도노조 박태만 부위원장수배중인 박태만 철도노조 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5일 오후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계사에 불편을 줘서 죄송하다는 입장과 함께, 종교계가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권우성
경찰이 조계사에 진입하지 못한 것은 법적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다. 경찰이 진입하지 않은 것은 다른 정치적, 사회적 논리에 따른 것이다. 조계종단을 건드리면 정치적, 사회적 후유증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서라도 조계사에 진입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법과 원칙이라고 하면 모든 경우에 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법률가는 특히 그렇다. 사회에 법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와 인간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법의 속성 중의 하나이다.
국가의 지배는 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근대 국가는 인간의 행동과 생각까지 지배하려고 한다. 이를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한다. 이것이 가장 잘 표현되는 곳이 바로 학교, 군대, 그리고 감옥이다. 이를 두고 '법은 진공(眞空)을 싫어한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자연과학 분야의 유명한 말인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의 패러디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법률이 적용되지 않아야 하는 분야도 많이 있다그런데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 않아야 하는 부분은 의외로 많이 있다. 이번 조계종 사례처럼 종교시설에 대피한 사회적 약자는 보호되어야 한다. 이 정도의 여유도 없다면 우리 사회는 너무 각박할 것이다. 가정은 또 어떤가? 가정에 법률이 개입한다고 해서 가정을 유지하는 것보다 바람직한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가족간의 사랑과 믿음을 법률이 대신할 수는 없다.
학교는 더욱 그러하다. 법대로 하다가는 학생들이 너무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청소년들의 가능성, 사제간의 관계는 법률로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도 그렇다. 이처럼 인간에게 소중한 공동체에 법률이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권리, 의무라는 법률관계로 해소되지 않는 사랑과 믿음, 의리와 같은 중요한 덕목이 공동체에는 있고 이것이 공동체를 유지 시킨다.
법률이 개입할 수 없는 가장 큰 부분은 개인의 정체성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개인의 정체성은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개인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분야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이다. 이러한 분야는 이미 개인의 가장 중요한 인권으로 확인되었다.
또 다른 갈등을 낳는 폭력적 법치주의는 경계해야정홍원 국무총리는 12월 18일 철도노조의 파업과 관련하여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대국민담화에서 정총리는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정부는 법과 원칙에 의한 국가경영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말은 체포영장을 집행하고 철도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징계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형적인 한국형의 폭력적 법치주의이다. 여기의 법과 원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을 낳는 법과 원칙이다. 철도노동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체포영장 집행과 징계는 또 다른 노사간 갈등을 낳을 것이고 코레일에게도 풀기 힘든 숙제를 남길 것이다.
모든 문제를 철두철미하게 법대로 해결할 수는 없다. 법률이 양보를 하고 존중을 해야 하는 분야도 있다. 아무쪼록 법률 이외의 부분을 존중하는 의미에서든 아니면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낳지 않는다는 관점에서든 이번 철도노동자들에 대한 수사와 징계는 없었던 것이 되든지 아니면 최소화되어야 한다. 수백 명을 징계하고도 좋은 직장, 국민의 기업이라고 광고하는 것은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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