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우리 집 망할 것 같아요"라는 아이. 그 이유를 들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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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 애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러다 우리 집 망할 것 같아요."아이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왜 그리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아버지가 벌써 며칠 째 일을 못 하고 집에 계신다"며 "이러다가는 돈이 없어서 망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래도 작은 그 아이의 몸이 더 작아보였다.
늦가을부터 봄까지는 산에 낙엽이 쌓여있어서 산불이 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산불이 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한시적으로 산불감시원을 채용한다. 경섭이의 아버지도 농번기인 겨울에는 감시원으로 일하면서 가외의 돈을 버는 모양이었다. 아이의 말로는 일을 해야 돈이 나오는데 눈이 와서 벌써 며칠 째 일을 나가지 못 했다고 한다.
목을 푹 꺾은 채 근심어린 목소리로 집이 망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는 아이. 이 아이를 보니 괜스레 마음이 짠했다. 안 그래도 체구가 작고 약한 그 아이가 벌써 삶의 무게를 안고 사는가 싶어 안 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기운을 북돋워 주기 위해 "일을 안 해도 돈은 나올 거야, 눈이 오는 것은 천재지변이니까 일을 하러 못 가도 돈은 나올 거야"라고 말했더니 도리질을 치면서 일을 해야만 돈이 나온다고 했다. 자기 아버지는 정식 공무원이 아니라서 월급이 아니라 일당을 받는다고 힘없이 말했다.
농사도 제법 많이 짓는 집이니 아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살림이 쪼달릴 것 같지는 않은데도 아이 눈에는 집에 있는 아버지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래서 "농사를 지어서도 돈을 벌지 않느냐"고 했더니 "올해는 고추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돈을 많이 벌지 못 했다고 엄마가 그러셨다"며 아이답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집이 망할 것 같다며 걱정하는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너는 학생이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바로 돈을 버는 길"이라고 일러줬지만 내 말을 그렇게 귀담아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돈이 없다고 걱정을 했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듯이 느껴졌다.
경제관념 심어주기 위해서였는데 효과는...아이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는 듯했다. 용돈을 일주일에 1만 원씩 받는데 차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얼마 안 되어서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마음대로 다 사먹지 못 한다며 하소연을 했다. 더군다나 아버지에게 돈을 쓴 내역을 보고를 해야 한다니 아이가 답답해하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아이는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아이의 말만 듣고 그 아이의 아버지를 비난할 수는 없다. 자녀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 하는 아버지는 아무리 사회적인 성취를 이뤘다고 하더라도 반쪽짜리 성공밖에 거두지 못한 것이라지 않는가. 비록 경섭이의 아버지가 권위적이고 자녀를 억압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 아버지 나름대로의 사랑이고 가르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표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를 뿐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다 같을 것이다. 경섭이의 아버지는 아들이 나중에 커서 돈을 헤프게 쓰는 사람이 될까봐 염려해 그리 하는지도 모른다. 일찍부터 돈에 대한 개념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용돈 관리를 하는데, 경섭이는 그런 아버지에게 서운함을 느꼈으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면 서운함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경섭이에게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 것"이라고 타일러줬다.
전에 우리 애들이 어릴 때, 나도 그렇게 엄격하게 지킨 게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뽑기'를 못 하게 한 것이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동전을 넣으면 장난감이나 초콜릿이 나오는 뽑기 통을 놔두고 아이들을 유혹했다. 동전 하나를 넣고 잘하면 그 몇십 배를 얻을 수 있으니, 아이들은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하굣길에 아이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기계 앞에 모여서 뽑기를 했다. 대부분 목적을 이루지 못 했지만 더러 횡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늘 '혹시'를 바라면서 뽑기 통에 동전을 밀어넣었다.
나는 그 요행이 좋지 않게 생각됐다. 규모만 작을 뿐아지 어른들의 도박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 애들에게 못 하게 말렸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들이 나 몰래 뽑기를 여러 번 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종아리를 걷게 하고 아프도록 때렸던 적이 있다.
어릴 때 버릇이 평생 간다식구들이 모여서 옛날 일을 떠올릴 때면 아들은 그때 일을 더러 이야기하곤 한다. 다른 애들은 뽑기를 많이 해도 엄마들한테 혼나지 않았는데, 자기는 두어 번밖에 안 했는데도 혼이 났다면서, 그때 엄마가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나는 아들을 위해 그렇게 했는데 아이에게는 억울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 이런 것을 소통의 부재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엄마 덕분에 두 번 다시 뽑기는 하지 않았다고 하니 내가 아이를 혼낸 게 영 잘못한 일은 아닌가 보다. 만약 그때 아들이 한탕주의에 맛을 들여 그 후로도 계속 그런 유혹에 흔들렸다면 그것은 매로 끝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들이 요행을 바라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은 것은 그때 그렇게 혼이 났던 덕분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 버릇이 평생을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때로는 강요도 하고 억압을 하는 것일 터이다. 경섭이의 아버지도 아마 그런 마음에서 아들의 용돈 관리를 했을 것이다. 혹여 아들이 돈을 헤프게 쓰는 버릇이라도 들까봐 한 행동들이 경섭이게는 간섭과 억압으로 다가왔으니, 아버지의 사랑이 전달이 되지 않았을 뿐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는 여타의 부모들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내 말을 듣던 경섭이도 뭔가 느끼는 게 있는지 잠잠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경섭이는 용돈을 많이 주지 않는 아버지가 싫다고 했지만 그 마음 안에는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아버지의 또 다른 사랑법이라는 내 말을 듣고 나름대로 이해가 되는지 경섭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런 아이를 보니 내 마음도 환해졌다.
우리 집까지 5분밖에 걸리지 않을 거리를 경섭이를 태워주느라 10분도 더 넘게 걸려서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경섭이의 밝아진 얼굴을 보니 기분은 좋다. 아버지가 돈을 못 벌어서 집이 망할 것 같다고 걱정했지만 용돈을 적게 주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생각해서 하는 것임을 어렴풋이나마 알았으니 경섭이도 이제는 아버지가 좀 편해질 것이다.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알지 못 하니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표현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그러니 내 기준에 맞춰서 성급하게 재단하지 말고, 상대의 마음을 읽어주는 지혜도 필요하리라. 그런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매번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서운함도 느끼게 한다. 경섭이네의 경우를 보면서 나 또한 표현에 서툴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평생 배워야 한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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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망할 것 같아요"라는 13살 아이,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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