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상생 외치던 이마트 어디로?
 겉은 노조 인정, 속은 무노조 경영"

['헌법 위의 이마트' 1년 - ①]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 인터뷰

등록 2014.01.16 10:13수정 2014.01.1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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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오마이뉴스>는 약 한 달에 걸쳐 '헌법 위의 이마트' 연속 기획을 보도했다. 유통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의 직원 불법사찰·노조활동 방해 실태 등이 드러나면서 임직원 5명 검찰 기소, 노사 단체교섭 시작 등의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마트는 헌법 테두리 안으로 돌아왔을까. <오마이뉴스>는 '헌법 위의 이마트' 보도 1년을 맞아 현재 이마트의 노동 실태를 재점검해봤다. [편집자말]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이마트 창동점 앞에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이마트 창동점 앞에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양태훈

"그럼 조끼를 벗고 하든가!"

서울 도봉구 이마트 창동점 1층 매장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회사 측 관계자들이 노란 조끼를 입은 3명의 남성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중이었다. 그들이 입은 조끼에는 '이마트 노동조합'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 13일 오후 3시,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은 김주홍 부위원장·김성훈 교육선전부장과 함께 노조 홍보활동을 하기 위해 이마트 창동점을 방문했다. 점포 직원들에게 "안녕하세요, 이마트 노동조합입니다"라고 인사하며 노조를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1층 입구에서부터 가로막혔다. 회사 측 관계자 대여섯 명이 몰려와 "영업 중이지 않나, 고객 있는 데서 하지 말라"며 나가라고 소리쳤다. 전 위원장이 "직원들에게 인사만 하고 가겠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회사 측 관계자들은 '고객 앞에서 노조 홍보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방침을 끝까지 고수했다.

결국 노조 간부들은 건물 맨 꼭대기에 위치한 직원 휴게실로 이동했다. 전 위원장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꼭 근로조건을 개선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직원들은 그와 눈조차 맞추려 하지 않았다. 전 위원장 뒤편으로, 어느 새 따라 들어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점포 부점장의 감시를 의식한 것이다.

온라인 사내게시판에 글도 못 쓰는 이마트 노조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이마트 창동점 앞에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이마트 창동점 앞에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양태훈

1년 전인 2013년 1월 15일, <오마이뉴스>가 '헌법 위의 이마트'라는 연속 보도(관련기사 보기)를 통해 이마트의 직원 불법사찰·노조활동 방해 실태를 고발하면서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났었다. 최병렬 전 신세계 이마트 대표 등 임직원 5명이 재판에 넘겨졌고, 1만2000여 명의 이마트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마트는 노조활동을 보장하고 노조와 교섭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의 기본협약서와 합의서를 체결했고, 전 위원장 등 해고·강등된 세 명도 원직·복직시켰다.


그러나 전 위원장은 "그게 전부"라고 잘라 말했다. 이날 노조 홍보활동이 끝난 뒤 이마트 창동점 근처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전 위원장은 "지난해에 이마트 문제가 보도되면서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다시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마트 보도 이후로 노조 가입자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간혹 탈퇴하겠다는 사람도 나온다"며 "그들 중에는 '내가 노조에 가입한 걸 회사가 알아채고 물어봤다, 불안해서 노조활동을 할 수 없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노조 홍보활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도 하소연했다. 그는 이날 창동점에서 벌어진 일 역시 이같은 현실이 반영된 사례라고 강조했다.

"2012년 10월에 노조가 만들어진 이후로 계속 점포를 방문해 홍보활동을 해왔는데,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런 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예요. 노조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니까 고객 앞에서 못하게 하는 거죠. 그렇다고 저희가 직원 휴게실에 찾아가 홍보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홍보물이라도 돌리려고 하면, 뒤에서 지원팀장 같은 사람들이 팔짱을 끼고 지켜보더라고요."

또한 전 위원장은 "노조는 점포 내 직원 게시판에 A3 규격으로 딱 두 칸만 홍보 공간으로사용할 수 있고,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는 아예 게시물을 올리지 못한다"며 직원들에게 노조를 알릴 수단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단체교섭 역시 9개월째 교착상태다. 언론들은 이마트 노사 단체교섭을 두고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해 온 이마트가 드디어 노조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부터 교섭을 시작한 노사는 38개 조항을 둘러싸고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전 위원장은 '노조 활동시 회사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노조가 교섭 중단을 선언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9일 노사 실무협의 때 회사가 가져온 안을 보면, '회사시설물·장소 이용, 유인물 배포, 회사 업무활동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조합활동은 회사 승낙을 얻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문구로 노조활동에 개입하는 건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유인물 배포조차 승인받고 하라고 하면 도대체 노조는 뭘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건 정말 받아들일 수 없는 거죠. 최대한 교섭 틀 안에서 풀어보려고 했지만 회사 쪽 입장에 변화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교섭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불법사찰' 논란 이후에도... "동향보고 문자 접했다"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이마트 창동점 앞에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노원구 이마트 창동점 앞에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양태훈

그렇다면 가장 논란이 된 직원 불법사찰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을까. 전 위원장은 "그 두려움에서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답했다. 지난해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이마트 내부문건을 보면, 회사는 전 위원장을 문제 인물로 지목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해왔다. 그는 "예전에 저를 감시하던 본사 노무관리 직원이 제가 일하고 있는 동인천점으로 왔다"며 "저를 계속 관리하려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이어 전 위원장은 "최근에는 나에 대한 동향보고 문자를 직접 접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옆에 앉아 있던 김성훈 교선부장은 기자에게 한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여줬다. "주홍 월화 휴무, J 백모상"이라 적힌 메시지였다. 전 위원장은 "여기서 '주홍'은 노조 부위원장, 'J'는 바로 저를 가리킨다"며 "직접 알아보니, 권역 노무관리팀 직원이 최근에 제가 백모상 당한 사실을 어딘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문자를 잘못 보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원 불법사찰 혐의로 검찰에 기소·기소유예된 간부들이 아직까지 현직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봤다. 인사 담당인 윤아무개 상무를 비롯해 부장급 1명과 과장급 2명 등 불구속 기소를 당한 간부들은 현재까지도 이마트에서 근무 중이다. 직급과 가담 정도, 노사 합의가 이뤄진 점 등을 참작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회사 측 직원들도 여전히 현직에 있다.

전 위원장은 "잘못한 사람에 대해 제대로 징계조차 안 하고 있는데 어떻게 문제가 해결되겠느냐"며 "직원을 사찰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저질러도 회사가 보호해준다고 인식하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말 이마트가 반성을 한다면 기소되거나 기소유예된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한 다음 노조 활동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최근 홈플러스 노사가 잠정 합의안을 도출해낸 사례에 주목했다. 홈플러스는 '30분 단위 시간 계약제를 철회하라'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합의를 도출했다.

"일전에 회사 실무교섭단 쪽 한 분에게 '도대체 노조와 교섭을 왜 하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요, 그 분은 '법 때문에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에 모든 뜻이 포함돼 있다고 봅니다. 지금 회사는 형식적으로만 노조를 인정할 뿐인 거죠. 만약 정말 노사 상생을 원한다면, 노조와의 교섭 타결을 위해 뭔가 진전된 자세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마트는 여전히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노조 자체도 힘을 길러야 한다고 자성했다. 전 위원장은 "홈플러스는 직원 2만 명 중 1500명이 조합원일 정도로 노조 규모가 어느 정도 되기 때문에 회사와 협상할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이마트 노조도 지금처럼 조합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유지해서 회사와 대화할 수 있는 힘을 기르려고 한다. 직원들이 노조에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마트 "교섭 과정에서 난항 있을 수밖에 없어"
이마트는 노조와의 단체교섭 중단 사태에 대해 "노사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교섭 과정에서 난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홍보팀 관계자는 1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회사든 노조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함께 조율하면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서로간 신의를 밑바탕으로 교섭을 다시 진행하면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다는 게 회사의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회사가 '노조활동시 승낙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과 관련해서는 "근무시간이나 영업시간에 하는 노조활동에 대해서는 회사와 사전 조율이 돼야 한다는 게 노동부의 판단"이라며 "모든 노조활동에 대해 승인이 필요하다고 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직원 휴식공간에서는 회사 승인 없이 노조활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점포에서 직원을 대상으로 한 노조의 홍보활동에 대해서는 "사업장과의 조율 없이 영업 중인 사업장 안에서 홍보활동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양태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19기 인턴기자입니다.
#이마트 #전수찬 #불법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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