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눈사람에 대한 낭만, 동화적 감상이 사라진다

[서평] 엄마의 불륜이 불러온 광기 <스노우맨>

등록 2014.01.18 21:29수정 2014.01.1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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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풀지 못할 사건이 있을까?"

2000년대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수사드라마, CSI나 NCIS, 라이투미, 본즈, 크리미널 마인드, 콜드 케이스 등을 보며 던질 법한 질문이다. 특히 소시오패스에 의한 연쇄살인범을 주로 쫒는 '크리미널 마인드'와 수십 년간 미해결 사건으로 박스 속에 갇혀 있던 사건들을 끄집어내어, 사건 당시 피해자 주변인들의 증언과 정황을 근거로 풀어가는 장기 미해결 사건을 다루는 '콜드 케이스' 등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이처럼 미국 수사드라마에 나오는 FBI나 과학수사관들을 보면, 세상에 완전 범죄란 없고, 사건을 풀어가는 수사관들은 마치 모든 진실을 파헤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들처럼 비춰진다.

드라마 속 주인공 수사관들의 특징은 대체로 외골수이며, 그로 인해 가정사나 연애에는 실패하며, 직장동료들마저 손을 내젖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마디로 안티히어로인 셈. 이러한 미국 수사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들이 풀어가는 수사기법이나 캐릭터는 상당 부분 정형화되어 있어서, 볼수록 익숙해지며 쉽게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고, 단편 에피소드 중심으로 구성되어 설령 출연진의 캐릭터를 모른다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광기의 시작-엄마의 불륜

위와 같은 단편 에피소드 중심의 미국 수사드라마에 익숙한 사람에게 <스노우맨>은 분량이나, 초반 이야기 전개가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런 지루함 속에도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스노우맨`이라는 소설이 갖고 있는 이야기 전개 방식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매력이 독자를 점점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스노우맨>은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이자, 인기 뮤지션, 저널리스트이자 경제학자인 '요 네스뵈'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지금까지 전 세계 40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천만 부 가까이 팔렸고, 유럽 각국 서점에서 '다시없을 최고의 소설', '올해의 소설'로 거의 매년 선정되고 있는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그리고 베스트셀러는 지금도 현재형이다.


스노우맨 스노우맨 표지
스노우맨스노우맨 표지고기복

소설 속 이야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죽임으로 그 모든 사실을 감추려 했던 변성기가 막 지난 '마티아스'라는 소년으로부터 시작한다.

젖꼭지가 없고, 피부가 점차 굳어가는 유전적 질병을 앓고 있는 마티아스는 첫 눈이 내리던 날, 어머니의 불륜을 목격한다. 마티아스는 어머니의 불륜을 자신을 친아들인 줄로만 알고 있는 아버지가 절대 그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되고, 알게 될 경우에는 자신이 죽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리고, 운전 중인 엄마를 죽이고 자신마저 죽으려 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엄마만 죽고 자신은 살아남는다. 노르웨이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 살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훗날 의사가 된 마티아스가 자신의 유전적 질병, 경화증이 극에 달해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살인을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 세상은 단순 교통사고로 치부하고 만다.

안티 히어로-형사의 의심은 직업병

<스노우맨>은 유전적 질병으로 죽음을 앞둔 소년 살인범 마티아스가 연쇄살인범을 잡은 적이 있는 해리 홀레 반장을 끌어 들여 살인을 이어가는 22일간의 이야기를 첫 눈 오는 날, 눈사람을 등장시키며 시작한다.

첫 눈이 내리던 날 발생한 살인 사건에서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직감한 노르웨이 최고 형사, 홀레 반장은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유명 연쇄살인범을 잡고, 노르웨이에서 유일하게 미국 FBI에서 연쇄살인을 공부한 형사지만 조직에 융화되지 못하는 꼴통 형사, 홀레 반장. 그는 "스칸디나비아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의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더라군" 하는 독백을 통해 마치 연쇄살인이라는 광기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암시를 준다.

광기어린 홀레의 독백을 읽을 때쯤이면, 해리 '홀레' 반장의 이름이 '흘레'로 읽히기까지 하며, 그가 언급한 스칸디나비아에서의 공공연한 통계가 어쩌면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안티 히어로를 연상시킬 수 있는 홀레 반장과 유명한 형사 앞에, 연쇄살인 사건, 스노우맨 수사팀이 꾸려지자마자 의도적으로 다가온 여형사 카트리나. 그녀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과 그로 인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홀레와 카트리나라는 두 형사의 연쇄살인범에 대한 집착은 광기를 담고 있어 괴기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진짜 괴기스러운 것은 해리 반장의 독백에서 찾을 수 있다.

"광기와 악이 전혀 다른 두 개체인지 혹은 더는 파괴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을 때 그걸 광기라고 불러야 하는지 같은 질문의 해답들. 우리는 무고한 민간인이 사는 도시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은 이해하지만, 런던의 슬럼가에 질병과 도덕적 타락을 퍼트린다는 이유로 매춘부들을 토막 내야만 했던 살인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전자는 현실이라 부르고, 후자는 광기라 부른다."

아무리 전범국이라 해도, 수십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살인을 현실이라 하며 이해하는 반면, 매춘부 토막 살인자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독백은 악을 이기기 위해 점차 악해져 가고 있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잘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도 홀레 반장은 전형적인 안티히어로의 모습을 갖고 있다.

사실 그런 홀레 반장의 내면을 진작 꿰뚫은 동료는 그의 상사인, 하겐 경정이었다. 한 사건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는 홀레 반장은 펜타곤 장성들처럼 전쟁을 빌미로 기회를 찾는 기회주의적 존재다. 아울러 입으로는 평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강렬한 사회적 욕구를 숨기지 않는 마초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 마초적 존재에게서는 언제나 "우리는 시청률이 높은 프로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높은 시청률을 만드는 거다"는 어느 방송 작가의 자신만만하고 높은 콧대가 느껴진다.

"내가 군사 전략이 세계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설명할 때 그 야심만만한 생도들이 무슨 꿈을 꿀 것 같나? 평화를 바라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삶? 그래서 손자들에게 그냥 숨 쉬며 살았다고, 그래서 자신들이 뭘 해낼 수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고 말하기를 바랄 것 같나? 입으로는 평화를 원한다고 할지 몰라도 그들 마음속에는 꿈이 있네. 해리, 기회가 찾아오는 꿈, 남자들에게는 필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강렬한 사회적 욕구가 있어, 지구촌 어디에서 폭탄이 터지자마자 펜타곤의 장성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야. 자네는 이 사건이 특별하기를 바라고 있어, 그 바람이 너무도 간절하기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볼 수 있는 거야."

또한 하겐 경정과 더불어 홀레 반장의 내면을 잘 파악하고 사건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마티아스와 동료 카트리나 역시 안티히어로, 홀레 반장의 내면을 꿰뚫어 본 사람들이다. 홀레는 형사 반장인 자신이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을 직업병이라고 말을 한다.

"뭔가가 진실 비슷하게 확정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거기에 반박하는 일이 내 직업이오. 그게 곧 자유주의지."

그런 면에서 스스로 직업병임을 시인하고, 모든 것에 의심을 품는 그가 출처를 밝히지 않는 통계를 들며 '스칸디나비아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의 5퍼센트에서 20퍼센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다'라는 불신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의심에 의심을 하며 범인을 추적하는 홀레 반장의 가장 큰 장점, 사건을 풀어가는 원천은 그의 우둔한 '근성'이다.

"FBI에서 범인을 잡는 데 10년 이상 걸린 사건들을 분석한 적이 있다. 대개 사건을 해결한 것은 아주 사소한 단서였다. 그러나 사실 사건 해결의 열쇠는 포기를 몰랐던 그들의 집념이었다. 15라운드를 다 뛰고도, 상대가 아직 쓰러지지 않았으면 다시 싸우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근성이었다."

연쇄 살인범에게 내려진 의학적 소견-정신병자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들 하지만, 인간이 모두 다르니 그 말은 무의미해. 흑사병이 돌 때 배에서 기침하는 선원은 즉각 바다로 던져졌지. 당연한 일이야. 정의란 건 철학에서든 재판에서든 무딘 칼과 같으니까. 우리가 가진 건 운 좋은 혹은 운이 나쁜 의학적 소견뿐이라네."

마지막 살인과 함께 자살을 시도했던 마티우스를 붙잡았지만, '정신병자'라는 의학적 소견을 이유로 종신형에 처해진 것을 보며, 내뱉은 홀레 반장의 말에서 우리는 정의란 건 철학에서든 재판에서든 무딘 칼과 같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쓰러지지 않았으면 다시 싸우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줄 아는 근성으로 연쇄살인범 마티우스를 잡은 홀레 반장에게 돌아온 것은 승리감이나 어떤 성취감이 아니라, 허무 그 자체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초적 인간은 그런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간호사 양반, 살고자 하는 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과 죽고자 하는 자에게서 죽음을 빼앗는 것 중에 뭐가 더 나쁠 것 같소?"

<스노우맨>에서 살인사건은 첫눈이 내리는 날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건 현장에는 영락없이 눈사람이 등장한다. 그러니 '첫눈', '눈사람'이라는 단어 앞에 아직도 낭만을 꿈꾸고, 동화 속 이야기를 동경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지 마시라. 다만 안티 히어로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수사물을 즐기고, 삶과 죽음, 죄와 형벌, 죄에 대한 단죄가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권한다.

마지막으로 책표지 뒷면에 있던 카피를 패러디해 써 본다.

'첫눈이 내리거든 죄 지은 자들이여, 긴장하라. 스노우맨이 쳐다보고 있다.'

스노우맨 (라이트 에디션)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비채, 2017


#스노우맨 #요 뇌스뵈 #베스트셀러 #첫눈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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