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웃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2012년 1월 26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변춘희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본부 공동대표, 청소년 인권활동가 '수수', 한상희 정책자문위원장이 활짝 웃고 있다.
권우성
저는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입니다. 2011년 서울시학생인권조례 발의를 할 때, 저도 서명한 10만 명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아이 반 친구들 부모에게 전화해서 서명하라고 권유도 했습니다. 교문에서 머리가 깎이고 치마가 뜯기는 19세기의 인권유린과 불법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행해지는 교육을 더 이상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사람이면 당연히 누릴 권리를 제한받는 억울한 일이 없겠구나, 문제가 생겼을 때, 적어도 우리 아이들 편을 들어줄 법적 근거가 생겼구나 하고 기뻐했습니다.
처음 공포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보고 저는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이건 고백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이라는 몸과 전혀 맞지 않는 옷을 벗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이 교사를 존경하기보다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교권, 인간적 모멸, 강압과 지시에 기반을 둔 학칙, 어떤 배움도, 한 치의 성장도 되지 않는 학습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육'의 나신을 우리는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저는 학교, 교육, 학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법이 살아있구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다둘째, 법에 대한 새로운 배움이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의 구구절절하고 세세한 조항들을 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이 노출되어 있는 인권침해에 모두 이름을 명명백백하게 붙임으로써, 반인권의 행태들은 양지로 드러나는 것이 가능해지더군요. 학교의 봉건과 반인권을 용인했던 가장 강력한 무기야말로 '이름을 주지 않기', '뭉뚱그리기', '물 타기', '본질 흐리기'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낡은 무기들을 폐기한 것이야말로 학생인권조례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조례가 발의되고, 공포되었을 때, 아이들과 지인들이 모여 자축 파티도 했지요. 하지만 곧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의 절차적 문제를 들어 법원에 제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교육현실의 맨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에 맞춰 학칙을 개정하고, 학생인권조례를 교육해야 할 학교와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를 간단히 허수아비로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교육부가 제소한 학생인권조례 무효 소송에서,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오히려 학생인권위원회의 법적 타당성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저희 학부모들은 다시 한 번 희망의 불씨를 뒤적였습니다. 그렇구나, 법이 살아있구나, 눈시울이 다 뜨거웠었지요. 대한민국의 학부모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학생인권조례를 학교 현장에서 실천해나가는 일만 남았구나, 학부모로서 응원과 다짐을 했더랬지요.
하지만 다시 한 번 학부모들은 좌절합니다. 과거를 반성하며 학생인권조례를 선두에서 실천해나갈 줄 알았던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12월 30일 내놓은 개정안을 보고나서입니다. 서울시민 10만명이 뜻을 모으고, 서울시의회에서 수많은 토론을 통해 공포된 조례를 이렇게 무시하고 뒤집는 것을 보고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민의가 힘 앞에 어떻게 휴지 조각이 되며, 민주적 절차란 얼마나 허위인지 서울시교육청이 친절하게 가르치고 있네요.
인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개정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