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비둘기 아저씨' "AI로 애꿎은 철새 매도 말길"

수술 받고 돌아온 곽용씨 "숨이 붙어있는 한 계속 꽃과 새 돌볼 것"

등록 2014.01.20 15:47수정 2014.01.20 17:0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987년 태풍 셀마 홍수 때 태화강으로 떠내려온 작은 나무가 쓰레기더미에 있었다. 이 작은나무를 태화강변에 심었더니 이제 커다란 느릅나무가 됐다. 곽용씨가 27년 전을 회상하며 느릅나무 옆에 서 있다
지난 1987년 태풍 셀마 홍수 때 태화강으로 떠내려온 작은 나무가 쓰레기더미에 있었다. 이 작은나무를 태화강변에 심었더니 이제 커다란 느릅나무가 됐다. 곽용씨가 27년 전을 회상하며 느릅나무 옆에 서 있다 박석철


"애꿎은 비둘기와 갈매기, 철새가 매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울산 태화강이 죽음의 강에서 생태하천으로 변모하던 지난 수십 년 간, 태화강변에서 꽃을 기르고 비둘기와 갈매기에게 모이를 주고 있는 '비둘기 아저씨' 곽용(73)씨는 요즘 걱정이 태산 같다고 했다.

지난 19일 전북 고창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 조짐을 보이면서 겨울 철새 도래지인 울산도 바짝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AI 확산 소식이 전해진 19일 오후, 태화강 꽃단지에서 만난 곽씨는 막 비둘기와 갈매기에게 모이를 주고난 뒤였다.

곽씨는 지난 2005년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관련기사 <"꽃과 새와 사람은 하나죠!">) 이후 여러 언론매체에 연이어 소개되며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고, 몇 해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비둘기 아저씨의 호루라기 소리에만 움직이는 비둘기떼의 모습이 소개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비둘기 아저씨는 지난해 몇 달간 태화강변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시민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비둘기 아저씨, 병마 딛고 꽃과 새 돌보기 매진


수십 년 간 꽃을 가꾸고 비둘기 모이를 주는 일에 체력이 소진돼 병마가 찾아왔던 것. 그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위 수술을 받았고 최근 병세가 호전돼 다시 태화강에서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30년 전부터 태화강에서 꾸준히 해온 꽃씨 뿌리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전북 고창의 AI 소식이 전해진 19일 방역지원본부 울산출장소와 울산시보건환경연구원은 떼까마귀 등 태화강 겨울 철새의 분변 검사를 한 결과 AI 음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앞으로 떼까마귀 분변 검사를 수시로 벌여 AI 감염 여부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안도의 한숨을 쉰 곽씨지만 긴장을 풀지 않는 모습이었다. 몇 해 전 울산에서도 AI 가 확진되자 아저씨가 기르는 이곳 비둘기가 일부 호사가들로부터 매도 당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비둘기 아저씨' 곽씨가 교육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시작한 꽃 가꾸기와 비둘기 돌보는 일을 칠 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꽃과 나무, 그리고 사람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었다.

 비둘기 아저씨 곽용씨가 모이를 주자 어디선가 비둘기들이 몰려 들어 모이를 먹고 있다
비둘기 아저씨 곽용씨가 모이를 주자 어디선가 비둘기들이 몰려 들어 모이를 먹고 있다박석철

지난 2002년 교육공무원으로 정년퇴임한 곽용씨가 울산의 태화강에서 '비둘기 아저씨'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4년. 지금으로부터 만 30년 전이다. 1970년대 고향인 합천과 거창의 교육청에서 근무하면서 교육청사를 꽃으로 가꾸던 그는 1979년 울산으로 부임하면서 이삿짐 속에 꽃씨를 소중하게 넣어왔다.

그는 부임한 울산여고, 학성여고 등에서 교정에 꽃씨를 심고 가꾸는 일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1984년, 당시 '전국토의 공원화' 바람이 울산에서도 불었다. 그리고 그는 이곳 태화강변과 강 건너쪽 태화강 젊음의 거리에서 꽃을 가꾸는 일을 시작했다.

곽용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매달 5만 원씩 붓던 적금 295만 원을 타서 꽃씨 구입하는 비용으로 썼다"고 말했다.

그렇게 1984년 4월부터 태화강에서 꽃 돌보기를 10여 년. 그는 정확하게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다. 1994년 6월 6일 현충일날 태화강변에 비둘기 두 마리가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는 신기해하며 먹이를 준비해 던져주니 다음날 10여 마리, 그 다음날 수십 마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시 3년 뒤에는 갈매기도 이곳에 먹이를 얻으러 왔다. 올해는 비둘기가 이곳에 온 지 20년, 갈매기가 온 지 17년째 되는 해다.

그는 사비를 들여 모이를 준비하고 때로는 발품을 팔아 이웃에 있는 태화시장에서 생선 찌꺼기를 얻어와 비둘기와 갈매기 모이를 주며 돌보기 시작했다. 현재 그의 호루라기에 따라 움직이는 비둘기와 갈매기는 모두 수천 마리에 이른다.

그는 "태화강에 비둘기가 온 후 갈매기가 날아든 것을 보면 새들이 서로 대화를 하며 '이곳에 가면 먹이가 있다'고 전해 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14년 1월 19일 오후 4시. 비둘기 아저씨 곽용씨가 강 건너 젊음의 거리를 가르키고 있다. 강 건너에도 그는 꽃길을 가꿨다. 이날 아침과 낮에 모이를 먹기 위해 모였던 비둘기와 갈매기들이 날씨가 추워지자 인근 태화다리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4년 1월 19일 오후 4시. 비둘기 아저씨 곽용씨가 강 건너 젊음의 거리를 가르키고 있다. 강 건너에도 그는 꽃길을 가꿨다. 이날 아침과 낮에 모이를 먹기 위해 모였던 비둘기와 갈매기들이 날씨가 추워지자 인근 태화다리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박석철

수술 후유증 있지만... "내가 안 오면 새들이 굶을까봐"

현재 비둘기가 모여드는 울산 중구쪽 태화강변 맞은편 남구쪽에는 젊음의 거리라 불리는 꽃길이 있다. 그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젊음의 거리에도 양각채, 사루비아, 코스모스 등을 심어 현재 꽃길이 조성돼 있다

곽용씨는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했고 청년시절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부터 지금껏 꽃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꽃을 가꾸다 우연히 찾아온 비둘기, 갈매기도 함께 돌보게 된 것이다.

그는 30년 간 태화강을 국화, 맨드라미, 분꽃 등 갖가지 색깔이 조화를 이룬 꽃밭으로 가꿔왔고 이 주변을 꽃단지로 만들었다. 오전 6시면 어김없이 태화강으로 출근해 꽃과 나무를 돌보고 새의 모이를 줬지만 지난해 수술을 받은 이후 출근 시간이 조금 늦어졌다고 한다.

그는 수술 후유증이 남았음에도 "내가 오지 않으면 비둘기와 갈매기가 굶을 것 아닐까 하는 걱정에 태화강으로 향하는 발길을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비둘기 아저씨 곽용씨는 "꽃이 사람과 비둘기의 인연을 맺어줬다"며 "꽃과 새와 나무를 위해 생활해 온 지 30년, 이제 70세를 훌쩍 넘겨버렸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아주 소중한 경험을 한 일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겨울을 딛고 봄이 오면 다시 갖가지 꽃씨를 뿌려 태화강이 꽃으로 뒤덮일 것"이라며 "내 숨이 붙어있는 한 꽃과 나무와 새를 돌보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둘기도 소중한 생명이자 자연의 일부"라며 "AI 와 같은 불상사가 발생한다고 해서 갑자기 새들을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비둘기 아저씨 곽용씨가 지난 30년 간 태화강 주변에 가꾸었던 꽃이 자란 모습을 담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비둘기 아저씨 곽용씨가 지난 30년 간 태화강 주변에 가꾸었던 꽃이 자란 모습을 담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박석철

한편 울산 태화강은 이곳 비둘기와 갈매기 외에 각종 철새들이 많이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해 전국 195개 철새도래지를 대상으로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 조사를 한 결과 태화강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겨울 철새가 서식하는 하는 곳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에 도래하는 겨울철새는 모두 209종 113만3394마리로 이 중 가창오리가 많이 도래하는 전남 해남 금호호가 31만3610마리로 1위를, 태화강이 5만2140마리로 두 번째로 많이 도래했다. 낙동강하구(4만302마리), 전북 망경강 하류(3만7001마리) 가 뒤를 이었다.

특히 비둘기 아저씨가 모이를 주는 곳에서 4km 가령 떨어진 태화강 삼호 대숲에는 전국의 66%인 4만6800마리의 떼까마귀가 모여 전국 최다 서식지로 확인됐다.

울산시가 최근 '태화강 겨울철새 모니터링'을 한 결과 2011년 50종 4만8455마리, 2012년 54종 4만8769마리, 2013년 48종 6만1937마리 등 최근 3년간 개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떼까마귀, 흰물떼새, 흰뺨검둥오리, 알락오리 등이 크게 증가했다고 울산시는 밝혔다.
#태화강 비둘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