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평화상단협동조합>의 한라봉 자극적이지 않은 단맛이다. 아내 모르게 주문했는데 2세트 더 시켜서 설에 가져가자고 한다.
강현호
지현에게.
결혼식에는 참석 못 하고 선물로 대신하게 되었지만 이제라도 축하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팍팍하다 해도 결혼식 답방은 도리일 터인데 감기로 앓아 눕는 통에 그러질 못 해서 내내 미안했다. 내 축하가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무례가 너에게 상심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긴 고민 끝에 '강정 평화상단 협동조합'에서 판매하는 한라봉을 선물하는 것으로 축하를 대신하기로 했어.
백화점에 즐비한 신혼생활용품들을 놔두고 난데없이 한라봉이라서 조금 당황했으려나? 제주도 강정마을 알지?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많이 잊혔지만 한때는 꽤나 큰 이슈였지. 조용한 마을을 해군기지로 바꾸려는 정부와 군사기지보다는 자연과 생계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다툼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곳이야. 그 다툼의 한 가운데에서 생겨난 협동조합에서 수산물과 귤 등을 팔아왔는데, 2014년 설 선물로 한라봉을 내놨더라고.
강정마을 한라봉으로 인해 네 생각이 났던 건, 강정마을의 다툼이 아내와 나의 싸움을 떠올리게 해서야. 결혼 선배로서 결혼의 씁쓸한 미래를 살짝 알려주는 것도 의미있겠다 싶어서 말이야. 설탕의 단맛이 강해진다고 해서 자꾸 열을 가하면 써질 수가 있거든. 신혼의 달콤함에 균형을 잡아주고 싶은 선배의 작은 배려(?)랄까?
결혼하고 수십 년을 함께하면 달관을 하게 돼서 사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게 되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제 결혼 4년 차에 9개월짜리 아이가 있는 우리집에서는 아직 먼 미래다. 오히려 잠결에 꺼낸 말 한마디, 변기 사용 방식, 밥 먹으면서 TV 보는 문제 등등 다툼의 불씨는 너무도 많다. 처음에는 이 불씨들을 없애보려고 애를 썼어. 그런데 안 되더라고. 아내나 나나 각자 30년 넘게 살면서 얻은 습관들이라 "앞으로 고칠 게"라고 말은 자주 하지만 결코 고치거나 버리지 못했어.
나쁜 습관은 매 시간 반복되는 것도 있고 주 단위, 월 단위로 튀어 나오기도 하고, 어떤 건 연 단위로 튀어나와. 예를 들면 명절 선물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정관념 같은 거 말이야. 그러니 다툼이 끊이질 않아. 싸우고 사과하고 (진정성이 있는 사과인지 아닌지) 판정 받고 (진성성이 받아들여지면) 화해하고 개선을 맹세하는 일이 반복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싸움이 줄어드는 건, 어쩌면 상대방의 나쁜 습관 중 빈도가 잦은 순서대로 적응해서인지도 모르겠어. 계속 복닥거리며 살아야 하는데 자꾸 들추고 지적하면 서로 힘드니까 어느 한쪽이 아량을 베푸는 거지. '내 허물은 없겠어?'하는 심정으로 상대방의 나쁜 습관을 용인해 주는 거랄까?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몇 년 사이에는 적응이 안 되는 습관들이 있더라. 내 경우 아내의 한숨 소리가 싫었어. 사람이 살다보면 한숨 쉬기도 하고 그러는 건데 유독 아내의 한숨은 나의 온 신경을 벅벅 긁는다. 반면 아내는 내 '사과의 화법'을 싫어하지.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고 잘잘못의 비율을 따져가며 지적하는 사과에는 영혼이 없다나. 그래서 그 진정성을 인정하질 않아. 나로서는 그렇게 사과하는 게 엄연히 발생한 '팩트'를 명확하게 밝히는 솔직함의 표현인데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