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국(帝國)인가 민국(民國)인가?

소설 <이우>를 읽고

등록 2014.01.22 09:07수정 2014.01.2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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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떨어진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람에 의해 수분을 잃은 낙엽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저 아픔을 뉘가 알까. 나 또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기에 있다. 여기가 어딘지 나는 알 수 없다. 알고 있음에도 차마 인정할 수가 없다. 나는 바람 앞에 낙엽이 된 채 또다시 어디론가 낙상할 것이다. 이제는 그 낙상의 아픔마저도 잊은 지 오래다."

조국을 잃고 경성과 도쿄를 오가던 운현궁의 4대 종주이자 의친왕의 차남 이우의 소설 <이우, 김경민, 중앙위즈, 2014년 1월> 속 독백이다. 이미 일제 치하의 무단통치 시절, 조선에서 태어났으나 10살의 나이에 볼모 생활을 위해 일본에서 생활을 해야 했던 비운의 황손이다. 일제 강점 즈음에 태어나 광복의 날에 장례식이 거행됐으니 말이다.


a  소설<이우>는 지난 7일 초판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로 한 해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저자 김경민의 인물탐구에 박수를 보낸다.

소설<이우>는 지난 7일 초판된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로 한 해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저자 김경민의 인물탐구에 박수를 보낸다. ⓒ 중앙위즈


소설은 일제치하의 역사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완용 등을 포함한 을사오적이 등장하고 1926년 6.10 만세운동의 현장을 거쳐 이봉창 열사와 윤봉길 열사의 의거를 목격한다.

일본의 광기는 대동아공영권을 위해 우리나라와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리고 저 멀리 호주까지 동아시아 전체를 총포로 유린하는 전쟁에는 학도병과 종군위안부라는 명목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동원되는 장면도 함께 소설 속에서 부활한다.

'인간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는 사실 긍정의 답이 가능하다. 이미 인디언들이 수천 년 동안 뿌리내리고 살고 있던 그들의 대륙 아메리카를 이탈리아 출신의 콜럼버스는 에스파냐의 지원 아래 신대륙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철저하게 유린해 버렸으니 말이다. 아프리카의 흑인은 일명, 노예선에 갇힌 채 반 이상이 죽어가면서 신대륙으로 실려와야 한 것도 인간의 잔인성을 증명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도 마찬가지.

원인은 국가이기주의, 민족 우월주의 또는 엘리트의식으로 대변되는 선민사상이다. 이 저주받아 마땅한 집단이기주의는 우와 열을 나누어 극심한 구별과 차별을 자행할 수 있다. 이는 집단의 구조가 취약할수록 외부로 확산되기 쉽다. 이렇게 확산된 광기는 전쟁의 참혹함을 감수하고 악의 순환을 증폭시킨다. 일본은 그렇게 불 속으로 돌진하는 불나방이 되어 망국의 일방통행로에 들어서고 말았다.

우리의 위정자들은 어떠했는가를 보는 일은 부끄럽다 못해 참혹하다. 무려 44년의 통치기간을 자랑하는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첫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일본 천황 메이지(明治)와 1852년 동갑내기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적극적으로 근대화를 일관성 있게 지향하면서 대동아공영을 위한 시동을 걸었던 반면, 조선의 고종과 위정자들은 세계적인 흐름을 무시하고 오히려 신분제를 공고히 한다.


그렇게 조선을 망국으로 내몬 지도자들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 청과 일본을 끌어들이면서 국가의 대다수 구성원인 백성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그들 대부분을 사살해버리면서 역사의 냉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 그 결과는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과 곡예 외교를 하며 잔 수를 부리던 고종과 민비의 말로가 잘 말해주고 있다.

도저히 힘을 낼 수 없는 시대, 그래서 우리의 일부 시인, 소설가 들은 우리나라가 종국에는 일본이 될 것으로 알고 일본의 치세를 찬양하고 전쟁 참전을 촉구하는 선전물을 시와 소설의 형태로 발산해 버린다. 귀화해 일본의 밀정이 되어 되는 데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설 속의 비루한 인사들에게 침을 뱉을 수 있는 당시 조선의 정치인들은 거의 없었을 거다.


소설은 이우와 연화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끌고 간다. 미노루와 요시노리라는 매력적인 일본인들도 등장한다. 일제치하지만 그 안엔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다. 이상화의 시구처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일상은 무심하게도 흘러간다. 말라비틀어져 떨어지는 낙엽처럼 살다가 하릴없이 아무데고 떨어져 뒹구는 낙엽처럼 살 수도 있는 인생이었을 것이다. 이우의 형을 보건데 황제의 후손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다 갔을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런데 이우는 다르다. 이우는 더 넓고 크게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고 한 남자로서의 자존심 그리고 운현궁의 종주로서의 품위도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인물이다.

일국의 한 황제 후손의 비극적인 삶을 좇는 여정은 사실 많이 피로했다. 왜냐하면 소설 속이나 현실에서나 신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이 국민 대부분의 삶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교과서는 종군위안부의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기술을 필두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서슴없이 서술하고 있고 국가의 정책과 비전은 자꾸 구성원의 상위 1%를 향하고만 있는 듯 해서 이기도 하다.

일본의 육사 장교이기도 했던 이우는 부관이자 감시요원 요시나리에게 말한다. "요시나리, 나는 말이다. 만약 조선이 해방된다면 제국(帝國)이 아니라 민국(民國)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소설 <이우>를 통해, 사랑도 우정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어떤 행복도 그 정신적 물리적 기반이 되는 안정된 사회와 국가가 없다면 공허하며 그 기본적인 감정조차도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이우 - 일제에 맞서 민국民國을 꿈꾼 조선의 왕자

김경민 지음,
중앙위즈, 2014


#이우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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