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사육용 여물로 쓰기 위해 말아놓은 볏짚
주용기
이번 정부 발표와 현지 연구자들에게 확인한 바로는 이번에 걷어낸 죽은 새는 가창오리, 큰고니, 큰기러기, 청둥오리 등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종이 죽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우려했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각종 개발들로 야생조류들의 서식지가 줄고 먹이가 급격히 감소해 한곳에 밀집하는 경향이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체간 병원균을 옮기는 시간이 더 짧아지고, 독감 변종도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
가을 추수가 끝난 들녘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커다란 둥근 덩어리를 실제로 혹은 사진으로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소 사육용 여물로 쓰기 위해 거의 볏짚을 말아놓은 것이다. 소를 키우는 농민들 입장에서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로 인해 농경지에 떨어져 있는 낙곡(벼이삭)이 부족해지면서 겨울 철새들은 곤란해졌다. 이는 두 가지 위험을 낳는다. 하나는 굶어죽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먹이를 찾기 위해 가금류 가축농장 근처 농경지까지 접근하는 것이다.
군집성이 강한 종들은 언제든지 집단 폐사의 우려를 갖고 있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조류들이 분산해서 서식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낙곡이 많고 넓은 농경지를 끼고 있는 커다란 저수지를 여러 군데 확보해 줘야 한다. 그리고 야생조류들이 집단적으로 서식하는 일정거리 안에는 가금류 사육장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공장식 집단 사육방식을 ▲개체간 충분한 공간 확보유지 ▲사육면적 허가제 ▲사육 개체수 조절 등 동물복지까지 고려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밀식방식으로 집단사육을 하다보면 병에 저항하는 능력과 자가 치유 능력이 떨어지고 개체간 독감변종이 더 급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식 사육 가금류에서 치명적인 조류독이 발생해서 야생조류에게 옮길 수 있고, 야생조류에게 조류독감이 발생해 가금류에게 전파됐을 때 병의 저항력이 약한 가금류가 집단 폐사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가금류가 스스로 병원균에 저항력을 키울 수 있도록 사육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 당국이 면밀하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야생조류들이 죽었을 때는 어떤 원인에 의해 죽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방제복을 착용한 일부 전문가만 현장에 접근해야 한다. 이외의 사람들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치명적이고 전파성이 강한 고병원성 조류독감에 걸려 죽었을 경우 다른 지역으로 전파의 우려도 있고, 폐사한 인근 가금류 축사장에서 조류독감 'H5N8'이 이곳 자연서식지로 전파돼 야생조류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8일 방송인터뷰를 하러 현장에 갔을 때 '출입금지' 간판만 있었을 뿐 통제하는 사람은 없었다(이후 21일 방문했을 땐 통제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소독약품을 뿌리는 분무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더욱이 방송기자의 말에 의하면, 취재 현장에 행정공무원, 경찰, 방송취재기자, 조류보호단체 관계자 등이 방진복도 입지 않은 채 몰려 있었단다.
조류들의 집단 서식지에 사람이 몰리고 취재기자들이 취재 경쟁을 벌이다 보면, 나머지 조류들이 편히 쉬지 못한다. 거기다 한 방송사가 헬기까지 띄워 접근하는 바람에 새들이 많은 위협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된다. 혹 병에 걸린 조류라면 저항력이 더 약해져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고, 위협을 느껴 서식지라도 옮길 시에는 전국적으로 병이 전파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