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흥사 대웅전 옆에 장독대가 있는 까닭은?

[디카詩로 여는 세상 21] <운흥사 장독대의 말>

등록 2014.01.24 19:12수정 2014.01.2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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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흥사 장독대
운흥사 장독대이상옥

절마당 한 가운데 떡 버티고
하시는 말
"사람아, 사람아, 한 술 드시고 하시게나" 

- 이상옥의 디카시 <운흥사 장독대의 말>


고성의 겨울 운흥사는 날씨가 찬 만큼 더욱 정갈하다. 운흥사는 676년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호남진출을 막기 위한 승병의 본거지로 사명대사가 지휘하던 승병 6,000여명이 왜적과 싸우기 위해 훈련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 호남진출 막기 위한 승병 본거지, 호국사찰 운흥사

고성 운흥사에는 보물 '영산회괘불탱 및 궤'가 유명하다. 영산회괘불탱은 1730년 영조 16년 이연선사. 지천선사. 가선방관 등 17명이 그린 불교그림으로 그 규모가 커서 놀라움을 주는데 보통사람 키의 10배가 넘을 정도라고 한다. 괘불궤는 괘불탱이 조성된지 1년 뒤에 만들어졌다고 하며, 뒷면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그리고 영조대왕의 말씀이 새겨져 있어 그 가치를 더한다.

 운흥사 가는 길은 고저넉한 가운데, 돌계단에 떨어진 낙엽을 밝으며 생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운흥사 가는 길은 고저넉한 가운데, 돌계단에 떨어진 낙엽을 밝으며 생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이상옥

운흥사에서는 해마다 전통 불교제례인 '영산재(靈山齋)'를 거행한다. 이 영산재는 임진왜란 때 국난극복을 위해 왜적과 싸우다 숨진 호국선열 추모 및 국태민안 기원을 위해 조선조 숙종 때부터 매년 음력 3월 3일 행해지는 불교의식으로 거행되었던 것으로, 당시 고성현감이 주관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중단 되었던 것을 이곳 운흥사에서 다시 주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물 '영산회 괘불탱'이 일년 중 이때만 공개되기 때문에 이 괘불탱을 보기 위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운흥사에는 영산회괘불탱 외에도 많은 문화재가 있지만,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은 운흥사 장독대이다. 장독대는 원형으로 대웅전과 요사채 사이에 매우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돌과 황토로 빚어 낮게 쌓고 기와로 이어져 세월 견디며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보통 장독대는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운흥사 장독대는 그렇지 않다. 대웅전 옆에 떡 버티고 있는 모양이 예사롭지가 않은 것이다. 대웅전은 주지하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셔놓는 곳으로, 사찰의 중심에 소재하고 있는 가장 큰 법당이다. 석가모니는 일개 인간이지만 일찍이 인간의 근원적 고통을 절감하고 출가수행하여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아 최고 경지에 도달한 분이 아닌가.

 와룡산 자락에 보금자리를 튼 운흥사는 세사를 잊게 한다.
와룡산 자락에 보금자리를 튼 운흥사는 세사를 잊게 한다. 이상옥

그분 모신 대웅전 곁에 하필이면 장독대란 말인가? 자칫, 종교적 수행을 얘기하다보면, 마음, 정신, 영의 세계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몸 또한 정신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해 대웅전 옆에 떡 하니 장독대를 조성해둔 것이 아닐까, 한다.


몸 또한 정신만큼 소중하다고 일깨우는 운흥사 장독대

한때 우리는 몸의 욕구를 너무 지나치게 폄하하기도 했다. 종교적 관점에서 몸의 욕구를 죄악시하여 금욕주의로 치달을 때도 없지 않았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운흥사 장독대가, 절마당 한 가운데 떡 버티고서는  "사람아, 사람아, 한 술 드시고 하시게나" 하고 말하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운흥사 #장독대 #디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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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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