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법정에 제출한 압수물목록표 일부분. 압수물 제목을 'E.t.c'(기타등등)으로 표기, 실제 압수된 물건이 뭔지 알 수 없다.
안홍기
검찰이 지난 2003년 주씨를 불법복제혐의로 기소하면서 법정에 제출한 압수물 목록표에 품명을 'E.t.c'로 기재한 비디오물 894점 때문이다. 이 'E.t.c 894점'은 비디오물 제목이 'E.t.c'인 게 아니라 '이것저것 기타 등등'이라는 의미로 쓰여진 품명이다. 재판부는 "명확히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주문에 설시할 수 없으므로 인도청구는 부적법하다"고 판단했고 결국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물건'이 됐다.
그런데 더 이상한 점은 E.t.c 894점 중 음반비디오물법 위반 재판에서 불법이 인정된 비디오물이 188점 포함되어 있다. 결국 특정되지 않은 압수물이 유죄의 증거로는 사용됐지만,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머지는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검찰이 주씨에게 돌려줬다는 비디오물 개수도 서로 엇갈리고 있다. 2심 재판부는 '현재 보유 중이지 않은 걸로 봐서 이미 돌려준 것으로 추정한다'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 2005년 11월 주씨가 2749점 중 1200점을 이미 돌려받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주씨는 596점만 돌려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먼저 돌려준 비디오물의 목록도 작성하지 않아 이를 입증할 증거도 없다.
엉망인 검찰의 압수물 관리이런 모든 상황은 검찰의 압수물 관리가 엉망인 데에서 기인한다. 지난 2003년 4월 한국영상협회 직원들과 검찰 수사관이 불법복제 단속으로 비디오 대여점과 주씨의 집에서 비디오물과 컴퓨터 등을 압수한 뒤 작성해 보고한 압수조서에는 압수물이 총 2593점(비디오물만 2586점)으로 돼 있다. 그런데 음반비디오물법 위반 재판 1심에서 검찰이 제출한 압수물 목록표엔 2749점으로 늘어났다. 추가 압수가 없었는 데도 말이다.
압수조서에 기재된 압수물의 관리도 엉망이었다. 2003년 4월 22일자로 작성된 검찰의 압수조서 내용은 테이프 1050개, DVD 172개, VCD 1350개, LD 15개 등 비디오물만 2586점이다. 2005년 11월 7일 서울중앙지법 증거물과가 작성한 인수인계 확인서에는 테이프 986개, DVD 199개, VCD 1316개, LD 15개 등 2516개를 형사6부로부터 인수·인계했다고 돼 있어 70점이 줄었을 뿐 아니라 매체별로도 수량 차이가 크다.
이런 상황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증거물과는 2005년 11월 21일 작성한 조사보고서에서 "2003년 5월 20일 형사6부로부터 압수물건총목록, 압수조서, 압수목록, 소유권포기여부확인서를 받고 서류상으로만 압수계에서 접수를 하고 실제 압수물은 형사6부에서 관리한다하여 이후 공판시까지 계속 형사6부에서 관리해왔다"고 보고했다. 압수물은 영치 사무담당직원에 인계돼 보관하고 수사상 필요할 땐 증거물과에 압수물 대출신청을 해 수사에 활용하도록 돼 있는 검찰 압수물 사무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주씨가 인도청구한 비디오물은 압수물 목록표상에 있는 물건들만은 아니다. 주씨는 음반비디오물법 위반 재판에 검사가 제출한 피의자신문조서 등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물에 기재되거나 사진으로 찍힌 비디오물 9점도 돌려달라고 청구했다. '떡 한번 치면 안 잡아먹지', '모텔리어', '턱시도', '스토커', '모닝섹스', '연변연가', 'LORD RING'('LORD OF RINGS'의 오기), '바-이', '빨강머리 지나' 등이다.
이에 대해 국가의 소송수행자는 2점을 제외한 7점은 압수물 목록표에 없어 돌려줄 수 없다고 재판부에 답변했다. 유죄의 증거로 제시된 비디오물들에 대해 '애초에 압수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