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속의 농사 마을 앞 물량장에서 곡식을 손질하는 주민
이재언
서이만씨에게 고향 혈도는 꼭 지켜야 할 '보물섬'과 같은 곳이다. 편리한 세상을 따라 하나둘 씩 이 섬을 떠났지만, 그는 아직도 섬을 지키고 있다. "자손이 안 지키면 누가 섬을 지킬 것인가!" 서이만씨는 두 팔을 걷고 혈도의 발전과 혈도 살리기에 일생을 바쳤다.
그는 자비를 들여서 손수 물량장을 만들고, 저녁에만 제한적으로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쓴다. 태양열 전지판이 설치된 지 8년이 됐지만, 그나마도 날씨가 흐리면 무용지물이다. 결국 혈도 사람들은 도심지에서는 흔한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촛불에 의지해 생활한다.
물을 한 번 쓸 때도 여러 단계를 거처서 사용한다. 혈도 주민들은 물을 '물 쓰듯' 써본 적 없다. 채소를 씻은 물은 허드렛물로 사용하고, 비가 오면 물을 받아 설거지와 빨래·목욕 등을 한다. 이들은 이런 귀한 물을 물통에 비축해두기 바쁘다.
서이만씨는 평생 섬을 떠나 본 적 없다. 그는 "그저 바다가 내준 고기, 톳, 미역을 양식해 칠남매를 키웠는데 이제 우리가 떠나면 누가 이 섬을 지키고 집안의 뿌리를 이을 수 있을까"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 박복희(73)씨는 지긋지긋한 섬 생활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어한다. "우리만 고생했으면 그만이지, 누가 이런 섬에서 살려고 하겠는가"라는 이야기. 지금까지 50년 동안 시아버지를 모시고 시집살이에 힘들게 일만 했단다. 박복희씨는 지금이라도 당장 자식 곁으로 가고 싶지만, 남편 때문에 도시에 나가지 못한단다. 반대로 서이만씨는 하루라도 빨리 아들이 이 섬에 들어와 대를 이어주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