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모자 허공의 삶

자신을 내려 놓고 살이가는 허공

등록 2014.02.10 15:06수정 2014.02.1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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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수선한 중고품 방 한 구석에 밥상을 놓고 글을 쓰는 허공 놀라울 만큼 삶에 열중하는 허공의 생활 일면

어수선한 중고품 방 한 구석에 밥상을 놓고 글을 쓰는 허공 놀라울 만큼 삶에 열중하는 허공의 생활 일면 ⓒ 이월성


집에서 증기 압력솥으로 밥을 하다가 수증기가 뱅글뱅글 돌아가며 김이 빠져 나오는 압력솥 증기 여닫기 손잡이가  압력 증기의 힘에 어디론가 튀여 달아났다. 사용하던 증기 압력 솥은 새 것을 사서 사용한지 5년이 되었는데 골고루 잘 닦아서 사용하였지만 너무 오래도록 사용하여 낡아서 증기 여닫이 손잡이가 증기의 압력에 의해 어디론지 튀어 나간 것 같다.


집사람과 내가 증기 압력솥 증기조절 손잡이 뚜껑을 찾느라 부엌을 샅샅이 뒤졌는데, 찾지 못했다. 집사람은 이 손잡이가 없어졌다고 아쉬워했지만 나는 이 증기 압력솥 증기조절 손잡이가 증기의 무서운 힘으로 튕겨나갈 때, 집사람 얼굴에 맞지 않은 것 만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여보 천만 다행이 었어요?" 말하고 증기 압력솥을 눈을 흘겨 노려보았다.

증기 압력솥 수증기를 조절하는 레바 손잡이를 구하려 사거리에서 중고가전제품을 팔고 있는 빨간 모자를 찾아갔다.

빨간모자는 주안 사거리에서 전기 주방용품과 난 냉방기구, 선풍기 같은 중고품을 재사용하도록 수리하여 파는 가전제품 고물상을 하고 있다. 겨울에는 보도 불럭에 까지 늘어놓은 석유스토브와 온풍기 가스 온열기로 보도가 비좁을 정도로 가전제품 중고품들을 늘어놓고 팔았다.

a 중고 전자제품을 고쳐 파는 가계앞에서 나를 내려놓는 철학을 읊는 허공 유명학원 수학 강사직을 그만두고 재황용 전자제품 상을 하는 허공

중고 전자제품을 고쳐 파는 가계앞에서 나를 내려놓는 철학을 읊는 허공 유명학원 수학 강사직을 그만두고 재황용 전자제품 상을 하는 허공 ⓒ 이월성


빨간모자는 언제나 빨간색 모자를 옆으로 삐딱하게 쓰고 가계 앞을 지나는 511번 인하대 학생을 실은 마을버스가 지나가면 거수경례를 한다. 가계 앞을 지나는 기계공고 학생들에게도 "잘 가" 라고 인사를 먼저 한다. 한편으로는 겸손히 거수경례하는 모습이 학생들에게 '자네들이 이 나라를 지킬 인재들이네' 라고 하는 경건한 인사로도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얼 띤 정신 나간 사람의 안타깝고 측은한 모습으로도 보였다.

빨간모자는 5년 전에 유명학원에서 수학을 강의 했었는데 그 때의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지금도 식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빨간 모자는 가계 앞을 오가는 사람마다 인사를 먼저 했다. 키는 1m50가량의 작은 키에 나이 72살이 된 주름진 얼굴이 웃을 때에는 앞 이 위아래가 뻐드렁이로 입술 밖으로 나와 옆으로 쓴 빨간모자와 잘 어우러졌다..


옷은 학원 강사 시절의 단정했던 차림새와는 다르게 지금 입은 옷은 주머니가 여덟 개가 달린 쫄 바지에 허름한 잠바를 걸치고 있다.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여서 월미도 해변 공연장에서 대중가요를 신나게 부르고, 학구열은 아직도 식지 않아서 중국한의사 면허증을 갖고 있다. 저녁에는 신학대학을 다니는 못 말리는 72살의 할아버지 학생이기도 하다.

내가 빨간모자에게 찾아가서 "증기압력 솥 증기 조절 레바를 구하러 왔다" 라고 말했다. 빨간 모자는 신의 손 같은 손놀림으로 나사, 볼트, 앵커가 들어 있는 연장통을 엎어 놓고, 뒤적이더니 증기압력 솥 증기조절 레바 한 개를 꺼내 준다. 내가 "고맙다." 라고 말하고 5천원을 쥐어 주었다. 이 레바가 없으면 우리 집 증기압력 솥은 고철상으로 가는 처지였다. 내가 돌아서려는데 빨간모자가 자신이 저술한 신학대학 졸업 논문이라고 책 한권을 들고 나왔다.


<자신을 내려놓는 정신수련> 타이틀이 붙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받아들고 3류 소설이려니 생각했다. 책을 받아들고 집에 와서 책상위에 던져 놓고 "증기압력 솥 증기조절 레바만 빨간모자에게로 가서 구해 왔다." 라고 말하면서 자랑스럽게 집사람에게 안겨 주었다. 한가로운 시간이 되어 책상을 정리하느라고 허공이 지은 <자신을 내려놓는 정신수련>책을 들고 머리말 글을 대강 훑어보았다. 한 두 줄 읽다가 집어던질 심산이었다. 신은 존재하는가? 와 앞으로 10년 후에는 어떤 책이 나올까? 를 서두로 잡고 서술해 나갔다. 신학개론이 복사되어 지루하게 전개 되리라 생각했는데 기독교, 불교, 회교, 유교, 와 도교를 아우르는 선각자들이 자신을 내려놓았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깨우침은 1시간에도 올 수 있고 한 달, 일 년 아니 임종 때에 가서 깨우치기도 한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빨간모자가 511번 마을버스 안에 타고 있는 인하대 학생들에게 거수경례를 했던 도두라진 행위가 자신을 내려놓는 남다른 철학적 의식이었던 것임을 알게 된다. 이 행사에 연미복이나 정장 차림은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런 치장일 뿐 이었다. 쇠 녹과 모빌 기름때가 묻은 잠바와 쫄바지 차림이면 빨간모자 다운 격식을 갖춘 차림이 되었다. 빨간모자는 가게 구석에 침실 겸 주방인 쪽방 한 구석에 컴퓨터를 놓고 글을 써가는 일을 했다. 이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낸 모습이 자랑스럽다.
#빨간모자 #72살 학샐 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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