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처박힌 <한국> 회장, 무능력했다"

[사주의 몰락①] 횡령·배임으로 징역 3년 선고받은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

등록 2014.02.11 17:24수정 2014.02.1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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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로 향하는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 지난해 8월 6일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오르고 있다.
구치소로 향하는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지난해 8월 6일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오르고 있다.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징역 3년을 선고합니다."

11일 오후 3시 1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519호 법정. 유상재 재판장은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67)이 횡령과 배임으로 <한국일보>와 <서울경제>에 338억 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중형을 선고했다. 이날 하늘색 수의를 입은 장재구 회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장 회장은 선고 후 재판부와 방청석을 향해 연달아 고개를 숙인 후 법정을 빠져나갔다. 방청석에 앉은 그의 두 아들은 안타까운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앞서 유 재판장은 1시간 동안 장재구 회장을 비롯한 피고인 4명의 유죄 사실이 적힌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장 회장을 향해 "언론사 대주주로서 일반 기업보다 높은 법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지만 위법행위를 저질렀다, 묵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장 회장이 족벌언론 사주에서 범죄자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언론 사주가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은 2002년 9월 1심에서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징역 3년과 벌금 56억 원의 판결을 받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이후 12년 만이다. 방 사장은 2006년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4년 판결 뒤 2008년 사면·복권되면서 위기를 넘겼지만, 장 회장의 부활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장 회장 쪽이 <한국일보>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지만, 휴짓조각이 된 지 오래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지난해 9월 <한국일보>의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면서 <한국일보>를 망가뜨린 '주범'으로 장 회장의 배임과 부실 경영을 지목했다. 삼화제분컨소시엄의 <한국일보> 인수 작업이 확정되고 법원이 이를 최종 승인하면 장 회장이 보유한 <한국> 주식은 대부분 소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장 회장의 아버지인 장기영 전 경제부총리가 1954년 <한국일보>를 창간한 지 60년 만에 장씨 일가는 <한국일보>에서 쫓겨난다. 이 신문의 한 기자는 "한 기업의 대주주로서 경제 질서를 지키고 언론사주로서 더욱 모범을 보여야 했지만 회사를 사금고화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했다"면서 "회사를 망가뜨리고 쫓겨나기까지 한 아들을 보면 지하에서 장기영 선생이 피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말했다.

빚 갚기 위해 회사의 마지막 자산을 팔아치우다


창업주 장기영 전 경제부총리가 1977년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장남 장강재 전 회장이 <한국>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1993년 이른 나이로 눈을 감자 나머지 형제들이 회사를 나눠가졌다. 넷째 아들 장재국 전 회장이 <한국일보>의 경영권을 얻었고 둘째 아들 장재구 회장은 자회사인 <서울경제>를 이끌었다.

장재국 전 회장은 조중동과의 무리한 지면 경쟁에 나섰고 부채가 쌓여갔다.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는 <한국일보>에 타격을 주었다.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고 1999년 부채가 5590억  원에 달하면서 채권단의 관리를 받았다.


장 회장에게 기회가 온 것은 2002년이다. 장재국 전 회장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불법 도박을 하는 등 부정부패 사실이 드러나고 <한국일보>의 경영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장 회장이 동생을 쫓아냈다. 장 회장은 500억 원의 증자와 구조조정을 약속하면서 채권단의 지원을 받았다. 회사는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부활을 꿈꿨다.

하지만 장 회장은 회사의 경영정상화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증자를 차일피일 미뤘다. 회사의 사정은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채권단은 2006년 장 회장에게 200억 원의 추가 증자와 서울 중학동 사옥의 매각을 요구했다. 회사는 중학동 사옥을 한일건설에 매각하면서 빚을 대부분 정리했다. 이때 회사는 다시 지어질 건물의 최상부 4개 층 6612㎡를 싼 값에 입주할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을 얻었다. 196억 원 상당의 권리로 회사의 마지막 자산이었다.

이는 장 회장의 몰락을 이끈 발단이 된다. 장 회장이 자신의 개인 빚을 갚기 위해 2011년 이 권리를 포기했다. 2009년 이후 자본잠식 상태였던 회사는 기자 등 구성원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었다. 장 회장은 구성원들에게 돈을 갚고 퇴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2013년 4월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이하 노조)는 장 회장이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다며 고발했다.

언론 자유까지 탄압... "한국일보가 쓰레기 뭉치 됐다"

"<한국일보> 파탄주범 장재구 회장 물러나라" 지난해 6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빌딩 로비에서 한국일보 기자들이 장 회장의 퇴진과 편집국 폐쇄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파탄주범 장재구 회장 물러나라"지난해 6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빌딩 로비에서 한국일보 기자들이 장 회장의 퇴진과 편집국 폐쇄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유성호

노조의 고발 이틀 뒤 장 회장은 평소 쓴소리를 하던 이영성 편집국장 등 편집국 간부 5명을 좌천시키는 보복성 인사를 단행하고 자신의 측근들을 주요 부서장에 임명했다. 노조는 "검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방패막이 인사"라며 회사의 인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사의 대립은 격해졌고 결국 5월 15일 사달이 났다.

이날치 신문의 1면 단독기사가 기자들 몰래 바뀐 것이다. 또한 같은 사진이 두 번이나 실렸다. 회사 쪽 관계자들이 저지른 일이었다. 한 기자는 "조중동 등 다른 족벌 언론에 비해 <한국일보>는 경영진의 편집국 개입이 적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일이 벌어져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신문의 파행 발행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한 달 뒤 회사는 용역을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했다.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회사는 기자들에게 '충성맹세' 요구서를 내밀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대다수 기자들은 신문제작에서 배제됐다. <한국일보>는 대부분 통신사 기사로 채워졌다. 사설도 표절했다. 이른바 '짝퉁신문'이 발행된 것이다.

이는 내외부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사설 집필을 거부한 논설위원들은 신문을 "쓰레기 종이뭉치"라고 비판했다. 독자, 시민사회, 정치권 등은 장 회장이 언론자유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힘의 균형추는 급격하게 노조 쪽으로 기울었다. 서울중앙지법은 기자들의 편집국 폐쇄 해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기자들은 받지 못한 임금과 퇴직금 96억 원가량을 모은 뒤 채권자 자격으로 같은 법원 파산부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2012년 말 <한국일보>의 부채는 692억 원으로 자산(483억 원)을 크게 웃돌았다. 법원은 기업회생을 위한 재산보전 처분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장 회장이 특수관계자들에게 400억 원가량을 빌려주고도 돌려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등 부실 경영을 했다고 지적하면서 경영진을 관리인에서 배제했다. 이로써 장재구 회장의 경영권의 효력은 정지됐다. 

장 회장은 8월 6일 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장 회장이 <한국> 자회사인 <서울경제>의 돈을 빼돌린 사실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장 회장이 언론자유를 탄압하고 경영권을 잃고 구속 수감된 족벌언론 사주 1호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조선>, <중앙> 사주는 똑똑했지만, <한국> 사주는 무능력했다"

장재구 회장은 구속된 상태에서도 <한국>의 경영권을 되찾는 데에 혈안이 돼있다. 정상원 노조위원장은 "장 회장이 '경영권을 갖지 못하면 폐간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이 죽자'라는 생각"이라면서 "지난 1월 검찰 구형 때 최후 변론에서도 <한국일보> 구성원에 대한 진정성 어린 사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장 회장은 최후 변론에서 "사리사욕을 위해 돈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장 회장은 회생개시 결정에 따른 경영권 박탈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항고했지만, 지난달 24일 기각 결정을 받았다. 또한 노조에 따르면, 장 회장은 지난해 연말부터 각종 주간지와 언론사에 삼화제분과 관련한 일방적인 비방 자료를 돌리는 등 <한국일보> 매각 작업 재 뿌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장 회장의 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 회장 쪽이 100% 갖고 있는 <한국> 주식은 채무자회생·파산법에 따라 기업회생 절차가 끝난 뒤 1/3 이하로 쪼그라든다. 회사가 어려워진 데에 장 회장의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향후 삼화제분이 <한국일보>을 인수하면 대주주가 바뀐다. 회사 회생전략팀 관계자는 "장재구 회장의 배임, 횡령, 부실경영으로 회사가 어려워진 만큼 오는 3월 2·3차 관계인집회 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장 회장 쪽의 주식이 모두 소각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장씨 일가의 몰락은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기자는 "장재구 회장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정치인이나 기업이 한 곳도 없었다"면서 "<조선일보>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무능력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사주는 잘 나가는데 반해, <한국일보> 사주는 땅에 처박힌 것은 똑똑함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와는 별개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사주는 회사의 발전과 미래를 고민했지만, 장 회장은 자신의 재산 불리기에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장재구 회장, 징역 3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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