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탄주범 장재구 회장 물러나라"지난해 6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빌딩 로비에서 한국일보 기자들이 장 회장의 퇴진과 편집국 폐쇄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노조의 고발 이틀 뒤 장 회장은 평소 쓴소리를 하던 이영성 편집국장 등 편집국 간부 5명을 좌천시키는 보복성 인사를 단행하고 자신의 측근들을 주요 부서장에 임명했다. 노조는 "검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방패막이 인사"라며 회사의 인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사의 대립은 격해졌고 결국 5월 15일 사달이 났다.
이날치 신문의 1면 단독기사가 기자들 몰래 바뀐 것이다. 또한 같은 사진이 두 번이나 실렸다. 회사 쪽 관계자들이 저지른 일이었다. 한 기자는 "조중동 등 다른 족벌 언론에 비해 <한국일보>는 경영진의 편집국 개입이 적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일이 벌어져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신문의 파행 발행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한 달 뒤 회사는 용역을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했다.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회사는 기자들에게 '충성맹세' 요구서를 내밀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대다수 기자들은 신문제작에서 배제됐다. <한국일보>는 대부분 통신사 기사로 채워졌다. 사설도 표절했다. 이른바 '짝퉁신문'이 발행된 것이다.
이는 내외부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사설 집필을 거부한 논설위원들은 신문을 "쓰레기 종이뭉치"라고 비판했다. 독자, 시민사회, 정치권 등은 장 회장이 언론자유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힘의 균형추는 급격하게 노조 쪽으로 기울었다. 서울중앙지법은 기자들의 편집국 폐쇄 해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기자들은 받지 못한 임금과 퇴직금 96억 원가량을 모은 뒤 채권자 자격으로 같은 법원 파산부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2012년 말 <한국일보>의 부채는 692억 원으로 자산(483억 원)을 크게 웃돌았다. 법원은 기업회생을 위한 재산보전 처분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장 회장이 특수관계자들에게 400억 원가량을 빌려주고도 돌려받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등 부실 경영을 했다고 지적하면서 경영진을 관리인에서 배제했다. 이로써 장재구 회장의 경영권의 효력은 정지됐다.
장 회장은 8월 6일 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장 회장이 <한국> 자회사인 <서울경제>의 돈을 빼돌린 사실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장 회장이 언론자유를 탄압하고 경영권을 잃고 구속 수감된 족벌언론 사주 1호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조선>, <중앙> 사주는 똑똑했지만, <한국> 사주는 무능력했다"장재구 회장은 구속된 상태에서도 <한국>의 경영권을 되찾는 데에 혈안이 돼있다. 정상원 노조위원장은 "장 회장이 '경영권을 갖지 못하면 폐간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이 죽자'라는 생각"이라면서 "지난 1월 검찰 구형 때 최후 변론에서도 <한국일보> 구성원에 대한 진정성 어린 사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장 회장은 최후 변론에서 "사리사욕을 위해 돈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장 회장은 회생개시 결정에 따른 경영권 박탈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항고했지만, 지난달 24일 기각 결정을 받았다. 또한 노조에 따르면, 장 회장은 지난해 연말부터 각종 주간지와 언론사에 삼화제분과 관련한 일방적인 비방 자료를 돌리는 등 <한국일보> 매각 작업 재 뿌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장 회장의 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 회장 쪽이 100% 갖고 있는 <한국> 주식은 채무자회생·파산법에 따라 기업회생 절차가 끝난 뒤 1/3 이하로 쪼그라든다. 회사가 어려워진 데에 장 회장의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향후 삼화제분이 <한국일보>을 인수하면 대주주가 바뀐다. 회사 회생전략팀 관계자는 "장재구 회장의 배임, 횡령, 부실경영으로 회사가 어려워진 만큼 오는 3월 2·3차 관계인집회 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장 회장 쪽의 주식이 모두 소각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장씨 일가의 몰락은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기자는 "장재구 회장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정치인이나 기업이 한 곳도 없었다"면서 "<조선일보>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무능력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사주는 잘 나가는데 반해, <한국일보> 사주는 땅에 처박힌 것은 똑똑함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와는 별개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사주는 회사의 발전과 미래를 고민했지만, 장 회장은 자신의 재산 불리기에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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