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죄라니... 나도 정적 제거의 대상인가

[강기희 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 21] 고문 (1)

등록 2014.02.20 17:11수정 2014.02.2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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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말

자유를 달라
자유를달라이난영

먹바위에게 저주를 퍼붓던 독립운동가의 아내


밤과 낮을 분간할 수 없는 감옥은 밖에 어둠이 내리고 있는지 달이 훤하게 떠 있는지 그 달을 보며 몰래 울고 있는 새는 없는지 반딧불이는 꽁지를 실룩거리며 발광을 하고 있는지 해는 뜨고 있는지 해가 떴다면 부는 바람에 꽃잎은 흩날리고 있는지 흩날리는 그 꽃잎을 잎으로 받아먹는 기린은 없는지 감옥 안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흙으로 만들어진 감옥은 깊고 단단했으며 사방의 모서리각이 뚜렷했다. 천장은 높았으나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공간이 매우 좁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바람조차 느껴지지 않는 감옥에서 느릅나무 후손은 몇 밤을 보냈는지 알 수도 없는 시간을 갇혀 지냈다.

몸을 옥죄고 있는 호송줄은 여전했으며, 숲얼단 감옥에서 숲경찰 감옥으로 넘겨진 이후 느릅나무 후손에겐 물 한 모금 주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누가 다녀간 것도 아니고 그저 작은 창으로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느낌만 들었을 뿐이다.

바람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던 감옥에 웅성거림이 들려온 건 흙냄새가 더욱 짙어지던 무렵이었다. 그것은 들소 떼가 지나가면서 만든 먼지 냄새인 듯도 싶고, 늑대나 들개가 뒷발질로 흙은 파낼 때 나는 흙냄새인 듯도 싶었다. 그도 아니면 두더지가 땅을 파 들어가며 내는 냄새인 듯도 싶고, 날벼락을 맞은 고목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이는 흙먼지 냄새 같기도 했다.  

느릅나무 후손은 흙냄새가 짙어지는 까닭을 생각하면서 발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웅성거림은 한참동안 이어졌으나 웅웅 울리는 소리라 무슨 말이 오가는지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러는 중에 느릅나무 후손이 있는 감옥의 문이 예고도 없이 덜컹 열렸다. 깜짝 놀란 느릅나무 후손은 비스듬하게 누웠던 자세를 바로 하며 저도 모르게 "물 좀 주소"라고 했다.


"물? 이 자식이 어디에서 물을 찾아!"

덩치가 큰 숲경찰이 느릅나무 후손을 향해 눈을 흡떴다. 숲경찰의 욕설에 당황한 느릅나무 후손은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느릅나무 후손이 멈칫거리자 숲경찰은 뭔가 할 일이 있었다는 듯 방을 한 번 휭 둘러보더니 감옥을 나섰다. 느릅나무 후손은 숲경찰의 무심한 표정을 쫓으며 어이가 없다는 듯 풀썩 웃었다. 감옥을 나선 숲경찰이 문을 닫으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에이, 무슨 놈의 비가 이렇게 와."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감옥 문 닫히는 소리가 덜컹 났다. 그 울림이 크기도 하여 느릅나무 후손은 몸을 움찔했다. 소리가 옅어지자 사위는 이내 조용해졌다. 느릅나무 후손은 흙냄새가 짙어진 이유가 비 때문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감긴 눈 사이로 비에 젖은 숲거리가 떠올랐다. 그곳엔 죽은 아비를 집으로 모시는 어린 아들이 있었고, 뒤로는 숲민들의 울음소리가 빗소리보다 크게 따라왔다. 비에 젖은 강변과 느릅나무 숲을 지난 어린 아들은 아비를 열사들의 무덤에 묻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숲민들은 오열했으며 그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다.  

"먹바위, 네 이놈! 친원파 먹바위 네 이놈!"

그날 독립운동가 아내는 남편을 죽인 자의 이름을 부르짖다 끝내 쓰러졌다. 그때 아들은 어리고 어려서 어머니의 저주가 누굴 향하는지 알지 못했다. 사십 년 전의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흙냄새에 빗물 냄새가 묻어 나왔다. 비바람이 부는지 실내를 떠도는 공기의 느낌도 한결 신선하게 느껴졌다. 느릅나무 후손은 공간을 떠도는 먼지를 바라보며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짐작해 보았다.

반란죄를 씌운다면 그에 합당한 죄를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살육을 멈추라는 성명서를 발표한 일 말고는 한 일이 없다. 그 일이 반란죄를 만드는 단초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뭐란 말인가. 먹바위에게 저항했던 아버지와 숱한 인사들을 죽일 때처럼 나도 정적의 제거가 목적이란 말인가. 느릅나무 후손은 먹바위 딸이 자신에게 가할 일을 생각하다 머리를 흔들었다.

'저들이 뭔가 큰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틀림 없군…….'

느릅나무 후손은 살아서 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들이 자신을 제거하기로 작정했다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고함소리도 함께 따라왔다. 누군가가 때리는 소리와 누군가가 맞는 소리는 벽을 타고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느릅나무 후손이 귀를 막아 보지만 소리는 차단되지 않았다.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크고 길게 이어질 때였다. 발소리와 함께 웅성거림이 벽을 타고 들려왔다. 작게 들리던 그 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느릅나무 후손이 있는 방 앞에서 멈추었다. 이어 문이 덜컹 열리며 숲경찰이 우르르 들어왔다. 하나 둘 셋…….

덩치 큰 반달곰이 하나에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멧돼지와 큰 이빨을 드러낸 멧돼지가 둘이었다. 내리는 비를 맞고 왔는지 그들의 몸에선 비릿한 비 냄새가 묻어나왔다. 다들 덩치는 산만 했고 험악한 인상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을 눈으로 쫓던 느릅나무 후손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작은 감옥을 그득하게 채운 숲경찰들은 각자의 위치를 잡더니 느릅나무 후손에게 소리쳤다.

"일어나 새캬!"

느닷없는 고함과 욕설에 느릅나무 후손이 무르춤했다.

"어쭈, 이 새끼 봐라. 여기가 집인 줄 알아!"

산만한 멧돼지가 느릅나무 후손의 옆구리를 쿵 소리가 나도록 걷어찼다. 느릅나무 후손이 헉, 하고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고꾸라졌다. 느릅나무 후손이 신음을 흘리자 반달곰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저 새끼 여기 놀러 온 모양이야."
"그래요? 그렇담 더 놀게 해줘야지요."

멧돼지 둘이 몸을 풀 듯 어깨를 돌리며 느릅나무 후손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은 숨을 몰아쉬고 있는 느릅나무 후손을 들어 올리더니 사정없이 가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폭력은 복부와 얼굴 옆구리 등에 이르기까지 가릴 것 없이 이어졌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멧돼지의 몽둥이에 어깨가 무너졌고, 큰 이빨을 드러낸 멧돼지의 발길질로 느릅나무 후손의 얼굴이 돌아갔다. 

느릅나무 후손은 맞으면서 첫 대면부터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는 게 이들의 습관인지 아니면 상대의 기를 꺾어 놓겠다는 심산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지위가 높다 해도 감옥에 끌려온 이상 우리가 상전이라는 심보인지 또는 밀려오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행동인지도 느릅나무 후손은 알 수 없었다.

암컷을 놓고 벌이는 고문실의 내기

숲경찰은 그냥 때리는 일도 심심했던지 누구의 주먹과 발길질이 더 센지를 놓고 암컷 멧돼지 한 마리를 걸었다. 암컷은 이번 반란 사건과 관련 있는 멧돼지로 다른 방에 수감되어 있다고 했다.

반달곰이 심판을 보고 큰 이빨을 드러낸 멧돼지와 얼굴에 흉터가 있는 멧돼지가 선수로 나섰다. 내기가 걸리자 숲경찰의 주먹과 발길질엔 힘이 더욱 실렸다. 그들은 암컷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있는 힘껏 느릅나무 후손을 가격했다. 필살의 한방을 위해 힘을 모았고 급소를 찾아 그곳을 집중 공격했다.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 올 때마다 느릅나무 후손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쓰러졌다. 느릅나무 후손이 쓰러지고 넘어지는 반응에 따라 내기는 결정되었는데, 암컷을 차지한 이는 큰 이빨을 드러낸 멧돼지로 결판이 났다. 느릅나무 후손이 큰 이빨을 드러낸 멧돼지의 발길질에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느릅나무 후손이 혼절하자 숲경찰의 내기도 가공할 폭력도 끝났다.

"아, 이 새끼 맷집이 제법 있는데요."

암컷을 차지한 큰 이빨을 드러낸 멧돼지가 흐르는 땀을 훔치며 말했다.

"xx 새끼가 넘어지려면 내 주먹에 넘어 지던가 하지. 쯧!"

얼굴에 흉터가 있는 멧돼지는 억울하다는 듯 쓰러져있는 느릅나무 후손을 걷어찼다.

"허허, 자네 엉뚱한데 힘쓰니 그런 겨. 좀 아껴."

큰 이빨을 드러낸 멧돼지가 기분이 좋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끼긴 뭘 아껴. 내가 다 이긴 건데 이 새끼 때문에 진 거지."

얼굴에 흉터가 있는 멧돼지가 분이 안 풀린 듯 느릅나무 후손을 또 한 번 걷어찼다. 숲경찰의 발길질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반달곰이 한마디 했다.

"저 새끼 저러다 코 골겠다. 깨워라."

반달곰의 말에 멧돼지가 느릅나무 후손의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정신이 들자 느릅나무 후손은 몸을 타고 흐르는 물부터 빨아 먹었다.

"일어나, 새캬!"

숲경찰이 다시금 느릅나무 후손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느릅나무 후손이 아픔을 참으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보지. 우린 묻고 대답은 그쪽에서 한다. 질문은 받지 않는다. 알겠나?"

반달곰이 들고 온 서류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그러는 사이 큰 이빨을 드러낸 멧돼지가 암컷에게 다녀오겠다며 감옥을 나섰다. 잠시 후 어느 방인지 감옥 문 열리는 소리가 덜컹하고 났다. 느릅나무 후손이 그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반달곰이 짧게 물었다. 느릅나무 후손이 머뭇거리자 멧돼지로부터 몽둥이가 날아왔다. 통증이 몰려오자 느릅나무 후손이 신음처럼 내뱉었다.

"느릅나무… 후손……."  

"사는 곳은?"

반달곰이 또 물었다. 느릅나무 후손은 벽을 타고 들려오는 고함소리와 때리는 소리와 반항하는 소리를 들으며 답했다.

"S·피스 동쪽, 느릅나무 숲에 있는 열사들의 무덤……."

"하는 일은?"

반달곰이 직업을 물었다. 느릅나무 후손은 벽을 타고 들려오는 고함소리가 큰 이빨을 드러낸 멧돼지가 내지르는 소리일 것이라 짐작하며 답했다.

"피스 평화운동가이자 지난 숲통령 후보."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최근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경찰 #대통령 후보 #국정원 #박정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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