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에서 펼치려던 현수막도쿄원정대는 상황이 좋다는 전제 하에 작은 구호 현수막을 펼치고 사진을 찍으려고 계획했었다. '우리는 아시아의 평화를 원합니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무리하게 현수막을 찾기 위해 몸수색을 펼치면서 대학생들과 충돌을 빚었다. 이 현수막은 오직 '사람이 없는 곳'에서만 허용됐다.
겨레하나
- 애초에 준비한 침묵 퍼포먼스는 어떤 형식이었나요. 김 : "엄청 작은 현수막 들고 그냥 서 있는 거였죠. '우리는 아시아의 평화를 원합니다'라는 내용이에요(김연희씨가 보여준 현수막은 응원할 때 쓰는 세로 15cm, 가로 80cm 정도의 작은 구호 현수막이었다.- 기자 말). 평화를 원하는 건 어떤 집단만의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모두가 원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백악관이나 캐나다, 프랑스에서도 시위하는 걸 봤는데 경찰이 이렇게 1인 시위를 완전히 막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경제 강국이라는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일본의 현실을 제대로 느꼈어요."
-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었어요. 우르르 몰려가서 시위하는 방식보다 재특회 회장하고 끝장 토론 같은 것을 추진하라는 충고도 있었는데요...강 : "우리가 일본사회에 던지려던 메시지는 사실 '반일'이 아니라 일본군국주의 부활로 인한 동아시아의 위협에 대한 것이었어요. 이것은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문제이기도 하고, 동아시아 차원의 문제잖아요. 모든 동아시아 국민이 나서야 하는 것이 아시아 평화 문제라고 생각해요. 방식보다 이런 운동의 내용을 이해해 줬다면, 그런 비판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김 : "맞아요. 언론에서도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는 것만 보도했지 우리가 가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뤄주지 않더라고요. 현재의 문제에 대해 서로가 생각해보자고 했던 건데 방식 문제만 이야기하면서 비판해요. 사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2월 8일 독립선언 재현 퍼포먼스인데, 이것도 거의 보도가 안 되었고요."
"생각 다르다고 공격하는 건 우경화된 사회의 보편적 모습"- 말한 것처럼 2·8 독립선언 재현이 가장 큰 계획이었는데 언론보도가 거의 없었어요. 어떻게 진행했나요?김 : "95년 전에 독립선언을 낭독했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이 지금 재일YMCA 건물이에요. 이 건물 앞에 '2·8독립선언' 기념비가 있어요. 원래는 기념비 옆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는데, YMCA측에서 우익들의 타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서 지하강당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무서워하더라고요. '사진 뜨면 바로 리스트에 오른다'고요. YMCA는 비교적 온건하고 보수적인 시민단체로도 볼 수 있는데도 이 정도죠. 기념비 옆에서는 아리랑을 불렀는데, 어차피 일본 우익은 알아듣지도 못하잖아요?(웃음) 그런데 이마저도 경찰이 막더라고요."
강 : "95년 전 2월 8일에도 지하강당에 모여서 선언문을 읽었다고 들었어요. '아, 우리도 똑같구나, 95년이 지나고 해방이 됐는데도 바뀐 것이 없구나'하는 생각? 울컥했어요. 우리가 확실하게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2·8 정신을 계승하자고 만세삼창을 했는데, 재일 코리안 분들과 한국에서 오신 분들도 함께 해서 뭉클했죠."
-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왔는데, 그만큼 성과는 있었나요? 느낀 점을 듣고 싶어요. 강 : "의도치 않은 두 가지 성과가 있었지요. 첫째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청년들이 느꼈던 분노, 설움을 글로만 배워 왔는데, 막상 일본에 가서 뭘 하려고만 하면 경찰이 제지하니까 그 당시 나라 잃은 설움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역사를 잊고 살아서 이렇게 핍박받나 싶기도 하고.
또 하나는 돌아와서 느낀 건데, 처음에는 침묵 퍼포먼스조차 가로막고 생각이 다르다고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는 모습이 일본 사회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게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경화된 사회가 가지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숙소(신주쿠)근처에서 아시아 평화를 위한 플래시 몹도 다 막더라고요. 현수막 펴고 사진 찍는 것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하고. 아, 우경화된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이 이거구나. 우리는 어떻게 될까?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요."
김 : "전 좀 생뚱맞기는 한데, 2월 7일 야스쿠니 충돌 이후에 버스 기사 아저씨가 계약을 파기 하셨거든요. 우익 단체가 잡아먹을 듯이 나서니까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고. 처음에는 '다 내려라, 계약 파기하자'고 하셨는데, 우리가 '숙소까지만이라도 태워 달라'고 통 사정을 했어요. 다음 날부터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너무 비싼 거예요. 공항철도가 2만 원에서 3만 원? 환승도 안 되고. '아, 민영화의 패악이 이거구나' 싶었어요. 철도 민영화, 절대 안 됩니다!(웃음)"
"3월 1일, 원정대는 서울 도심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