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라디오 A 504를 맑게 개인 가을날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500원인가를 깎아서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그만큼 손쉽게
내 몸과 내 노래는 타락했다
헌 기계는 가게로 가게에 있던 기계는
옆에 새로 난 쌀가게로 타락해 가고
어제는 캐시밀론이 들은 새 이불이
어젯밤에는 새 책이
오늘 오후에는 새 라디오가 승격해 들어왔다
아내는 이런 어려운 일들을 어렵지 않게 해치운다
결단은 이제 여자의 것이다
나를 죽이는 여자의 유희다
아이놈은 라디오를 보더니
왜 새 수련장은 안 사왔느냐고 대들지만
(<금성라디오> 1965. 9. 15)
라디오는 현대 문명의 한 상징물이다. '금성라디오'를 제재로 하는 이 시는 현대인(현대문명)의 세속적 타락과 세속화를 경계하고 있는 작품이다. 수영이 전하려는 교훈적인 메시지는 "그만큼 손쉽게 / 내 몸과 내 노래는 타락했다"(1연 4, 5행)는 구절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나'의 '타락'은 물질을 향한 탐닉과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것들은 끝날 줄을 모른다. "헌 기계"(2연 1행)에서 "가게에 있던 기계"(2연 1행)로의 타락은 '가게'와 '쌀가게'로 이어지면서 거듭된다. "새 이불"(2연 3행)과 "새 책"(2연 4행), "새 라디오"(2연 5행) 등 모든 '새'것들은 그 구체적인 상징물들이다. 고리 속의 욕망은 그렇게 매번 '새'것을 향한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끝없는 욕망을 향한 탐닉이 무척 자연스럽다. 그것은 "어렵지 않게 해치"(3연 1행)워지는 일이 돼버렸다. 과거에도 지금도 "어려운 일들"(3연 1행)인데 말이다. 그 "어려운 일들"을 매끄럽게 해내는 '아내'(3연 1행)와 '여자'(3연 2행)들에게 욕망은 '유희'(3연 3행)와 같다. '아이놈'(3연 4행)이 그들을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는 (새) '라디오'를 보면서 "왜 새 수련장은 안 사왔느냐고 대"(3연 5행)든다.
욕망의 다름 이름... '2000원' '차용증서'
수영은 이 시와 같은 제목의 산문도 썼다. 시가 나온 지 2개월 뒤에 쓰인 글이다. 그것은 라디오로 들을 수 있는 방송용 수필이었다. 수영은 그 글을 "옥색빛 나는 새로 산 금성표 라디오 앞에서" 썼다.
수필은 라디오 옆에 놓인 '명자-2000원'과 '차용증서'라는 두 개의 낙서 쪽지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된다. '2000원'은 가정교사에게 줘야 할 하기방학 특별수당이었다. 그 가정교사는 몇 달 전에 그만둔 상태였다.
'차용증서'는 우연히 수영네에 찾아온 친구 부인 'P 여사'의 조언에서 나온 말이었다. 계를 들고 있던 아내가, 외출 중에 '계 사고'가 날 것 같다는 말을 전화로 전한 뒤였다. 지레 분해 있던 수영에게 집에 찾아온 P 여사가 사전 대비 차원에서 해준 말이 '차용증서'였다.
'2000원'과 '차용증서'는 욕망의 다른 이름들이다. 생활인의 벌거벗은 일상을 유감 없이 보여 준다. 라디오용 수필을 쓰면서 이들을 출발점으로 삼은 까닭이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돈 문제는, 세속인을 향해 교훈을 전하는 수필의 내용이나 주제로 안성맞춤이지 않은가.
산문 <금성라디오>에는 P 여사와 나눈 대화도 실려 있다. '2000원'이나 '차용증서'와 같은 맥락에서 써 놓은 이야기다.
"라디오 드라마를 써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P 여사가 대뜸 물었다. 수영은 P 여사가 노상 물어오는 이 난제에 노상 대답을 하지 못했다. P 여사는 수영에게서 대답이 나오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꼬박꼬박 물어왔다.
수영은 P 여사가 오기 전에 제임스 볼드윈(James Arthur Baldwin, 1924~1987, 미국 현대 흑인의 대표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노상 물어오는 물음에 대답을 못하는 게 겸연쩍었을까. 수영은 뜬금없이 볼드윈의 소설 얘기를 꺼냈다.
"볼드윈의 소설의 주인공인 흑인가수는 파리로 가서 백인의 눈초리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사랑을 하고 자기 자신을 찾았다는 얘기를 막 읽고 있던 참인데, P 여사는 파리에 가면 무엇으로부터의 해방감을 우선 느끼겠어요?"
알 듯 모를 듯한 질문이었다. 물론 수영은 P 여사에게 '해방감'에 방점을 찍어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돈으로부터 해방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서 말이다.
고리대금을 하는 시인
말을 마친 수영은 P 여사의 표정을 살폈다. 수영 자신도 아내와 함께 고리대금을 하고 있었다. 시인에게 고리대금이라니 자랑스러이 내세울 일은 아니다. 그는 "고리대금을 하는 시인의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고리대금을 하는 소설가의 표정을 살핀다"면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덧붙여 놓았다.
"고리대금을 하는 소설가가 라디오 드라마를 써야 좋으냐는 질문을 한다. 순수한 문학의 길을 지키기 위해서 라디오 드라마를 쓰지 않으려고 고리대금을 하는 소설가가 새삼스럽게 라디오 드라마를 그래도 써야 하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을 고리대금을 하는 시인에게 한다. 그 질문에 대해서 고리대금을 하는 시인이 대답을 하려고 한다. 이미 대답이 나와 있는 대답을 하려고 한다. 이보다 더 큰 난센스도 드물 거라고 생각되는 이런 난센스를 우리들은 예사로 하고 있다."(<금성라디오>, 김수영 전집 2 산문, 103쪽)
수영에게 물질에 집착하고 욕망에 탐닉하는 것은 "나를 죽이는"(3연 3행) 일이었다. '타락'은 죽음과 다름 없었다. 그는 산문 <금성라디오>의 말미에 "나는 내 앞에 놓인 나의 라디오와 연애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연애'라지만 그것은 분명 스스로 죽어가기 위한 연습이었을 것이다. 그는 갈수록 '타락'해 가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라디오'를 보며 이렇게 외치고 싶었을지 모른다.
'나 돌아갈래. 새 금성라디오가 없는 세상으로!'
지금 나에게 '새 금성라디오'는 과연 무엇일까. "내 몸과 내 노래는 타락했다"며 씁쓸히 노래하는 수영의 표정에서 문득 나를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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