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 주민들, 몸으로 함께 백골단을 맞서?

[서평] 윤구병 외 5인의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등록 2014.02.24 21:15수정 2014.02.2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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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겉그림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책겉그림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 철수와영희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학생들이 경쟁에 또 경쟁을 하는데, 인디언 어느 부족 아이들은 모든 과제를 서로가 돕고 푼다고 말이죠. 더욱이 하나의 정답을 찾기보다 그들은 여러 갈래의 답들도 모색한다고 하죠.

그런 일들은 그 옛날 시골에서 유행한 품앗이와 같지 않나 싶습니다. 농삿일이 많을 때 이웃들이 서로 돕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 말이죠. 물론 지금도 그런 모습을 시골에선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 동네에 사는 젊은 아낙과 나이든 할머니가 함께 김을 매는 광경 말이죠.


윤구병 외 5인의 강연을 엮은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를 읽다 보니 문뜩 그런 것들이 떠올라 주절주절 댄 것입니다. 요즘같이 따로 국밥처럼 사는 세상에서 공동체를 생각하며 산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니 말입니다.

이 책은 길담서원에서 벌인 청소년인문학교실의 강연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주제가 '품'과 관련이 있는데, 다들 공동체에 관련된 고민과 대안을 내 놓고 있죠. 윤구병 선생도 그렇지만 이현주 목사라든지 또 이계삼 선생 같은 경우에는 참으로 재미난 입담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얼마 안 있으면 곧 도시에는 물질에너지 상태가 교란이 와요. 지금 도시에서는 90퍼센트 이상을 물질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는데 교란이 오면 그때는 이제 다 시골로 올 수밖에 없어요. 단전이 되면 단수가 되죠. 다른 것은 견딜 수 있어도 단수가 되면 사흘을 못 견딥니다. 더구나 고층 빌딩에 있는 사람들은 똥오줌 어떡할 거예요?"(41쪽)

철학자이자 농부이기도 한 윤구병 선생이 한 강연 내용입니다. 지금은 너도 나도 대기업과 화이트칼라 직업을 꿈꾸며 살아가지만 머잖아 농사일에 대한 소중함을 깨우칠 때가 있다는 것이죠. 지금도 우리나라의 주곡 자급률이 25퍼센트 미만이라는데, 앞으로는 모두 다 수입할지도 모르는 세상이 올 거라고 이야기하죠.

그래서 그러는 걸까요? 윤구병 선생이 변산공동체 학생들에게 농사일도 가르치는 것 말입니다. 물론 그것 때문에 하는 것만은 아니겠죠. 학생들 서로가 몸을 부대기며 살고, 함께 일을 해 나가면 진정으로 공동체에 대한 소중함을 자기들 몸으로 깨우칠 수 있다고 하죠. 과연 그런 교육보다 더 소중한 교육이 따로 있을까요? 


"학교가 시작된 독일에서처럼 근대 학교 교육은 한 마디로 말을 잘 듣게 만드는 거예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말을 잘 듣는 군인과 노동자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하나의 국민'으로 엮어 세우는 것이에요."(114쪽)

밀양에서 갓 시작한 귀농학교 일과 농사일을 병행하고 있는 이계삼 선생의 강연 내용입니다. 그는 오늘날의 학교 교육이 독일에서 시작됐다고 말하죠. 과거 프러시아 제국이 프랑스와 전쟁에서 졌는데, 그게 국민들이 멍청해서 그랬던 것이라고 단정했다고 합니다. 하여 프러시아 제국의 프리드리히 3세가 나서서 학교를 만들어 학생들을 그곳에 다 집어넣고 '국민'을 길러냈다고 하죠. 그만큼 국가에 잘 순응하는 국민들로 말이죠.


그걸 읽고 있자니 우리를 억압했던 일제시대, 지금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제시대의 국민교육이 떠오릅니다. 국민학교제도도 그렇고, 일본어 교육도 그렇고, 국민교육헌장도 모두 독일식 국민교육을 본 떠 만든 게 아닐까 싶죠.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아직도 우리나라에 땅에 그런 일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성미산 마을에 산다는 유창복 선생의 이야기를 보면 환히 알 수 있는 내용이죠. 2001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에서 성미산을 쓸어버리고 배수지를 만들어 깨끗한 수돗물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하죠. 그런데 그것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거짓으로 들통이 났고, 그걸 철회하기까지 무려 2년이나 걸렸다고 하죠.

그를 통해 그가 깨달은 바는 그것이었다고 합니다. 공무원들이 계획한 일은 무조건 밀어 붙이고 본다는 것 말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성미산 주민들이 피해를 보든 뭘 하든 상관치 않는다고 말이죠. 그들이 백골단까지 동원해 성미산 주민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일도 모두 그런 일들 때문이라고 하죠.

그 과정만 보더라도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는 아직도 일제시대의 잔재를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조건 위에서 지시하고 명령하면 모든 게 깔끔하게 처리되는 세상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 말이죠. 그런 모습들을 보노라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공동체를 세우기란 정말로 힘든 일이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부디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보고 진정으로 공동체를 살릴 길이 무엇인지, 함께 몸을 세워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모두가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 공동체에 대한 고민

윤구병 외 지음,
철수와영희, 2014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윤구병 #변산공동체 #성미산 주민들 #유창복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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