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청와대에 한국 사회정도의 산업국가를 이끌어 갈만한 지적베이스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경제개혁 3개년 계획'이나 '474' 같은 게 나오는 거다."
권우성
- 결국 공약이행이 지지를 결정하는 데 판단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박 대통령이 계속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도 그런 차원의 결과로 봐도 될 듯하다. 공약 폐기 논란 이외에 또 우리가 얘기해 봐야 할 '박근혜 1년'은 무엇이 있을까? 기자로서 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철도민영화 논란과 철도노조의 파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박근혜 정부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남아있는 공공분야를 민간에 넘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전부터 계속 시도됐던 것으로, 박근혜 정권의 의지라기보다는 정권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경제관료들의 의지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나 역시 철도민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전에 우선 하나의 사건을 꼽는 게 아니라, 선출된 권력과 관료, 기업의 관계를 봐야 한다. 그런 부분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기대감이 있었다. 이 사람은 기업에 빚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재산을 가지고 있고, 또 과거에 '로얄패밀리'의 일원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이니까 관료들도 주물러서 어느 정도 자기가 원하는 정책방향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국의 대통령제가 5년 만에 '왕'을 뽑는 거라면, 제대로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게 낫겠다는 종류의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통제력이 있는지를 떠나서, 지금의 청와대에 한국 사회 정도의 산업국가를 이끌어 갈 만한 지적 베이스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경제개혁 3개년 계획'이나 '474' 같은 게 나오는 거다. 그런 헛소리를 어느 부처와 상의도 없이 청와대가 단독으로 던졌다. 신년 기자회견에 처음 이야기하고 두 달 만에 만들어낸 경제개혁 3개년 계획이 박근혜 청와대의 현재를 정확히 보여준다. 관료조직을 이끌어야 할 정치가 죽어 있다는 거다. 심지어 박근혜가 해도 안 된다는 얘기다."
- 비슷한 사례로 박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떠오른다. 당시에 고용율 70%를 국정의 최대 과제로 제시했는데, 그건 대선 당시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얘기였다. 물론 고용율 70%는 중요한 과제지만, 그 전에 선거에서 이야기했던 재벌개혁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차별대우에 징벌적 과징금 제도 같은 공약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오히려 비정규직 확산 우려가 있는 '시간 선택제 일자리'가 핵심 사업이 됐다. 이 역시 기존 관료들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정치가 사회의 가장 큰 세력인 기업과 관료를 통제할 힘이 없다는 거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기업과 관료들에게 끌려 다니면서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계속 그렇게 거짓말을 하다 보면 자기도 그 거짓말에 속게 된다."
- 앞서 이야기가 나온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돌아가 보자. 박근혜 정권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탄압했다. 그럼에도 유난히 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컸다. 대학생들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도 이를 계기로 나왔고, 이후에는 노동자들의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를 해결하자는 '손잡고'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 당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로 시작된 '희망버스'의 모습과도 겹친다. '노동'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그렇게 연결할 수도 있지만 개별 사건의 맥락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손잡고'의 경우는 한참 전에 시도됐어야 했는데 상당히 늦었다. '안녕들하십니까'와 '철도파업'의 맥락도 다르다. 우선 철도파업에 지지가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경찰이 크게 물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울시민들이 가지는 경찰에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에 나왔던 사람들은 경찰의 폭력을 학습했고 그런 경찰이 민주노총을 침탈했다가 오히려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서울의 지하철이 서지 않았다는 것도 파업 지지여론이 유지된 요인 중에 하나다. 비슷한 시기에 파업에 들어가려고 했던 서울지하철이 협상타결을 못하고 지하철이 운영이 안 됐다면 지지여론은 유지되기 어려웠을 거다."
- '안녕들하십니까'는 사회에 20대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어떤가? 앞서 이야기 한 '촛불을 경험한 세대'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그렇게 뜨거운 사건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20대가 무언가 하기만 하면, 그 세대가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은데, 결국 과거 386들이 자기들의 대학생 후배를 찾으려는 시도가 아닌가 의심했다. 물론 대학생이 대학생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가지고 '안녕들하십니까'가 20대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대자보라도 붙이는 게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으로 보자면 100만 대군이 패배해 99만 명이 죽고 1만 명이 살아 돌아가는데, 중간에 적군을 만나 100명을 사살했다고 전과를 올렸다 한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 대학사회가 이미 후퇴할 만큼 후퇴해 '안녕들하십니까'가 보여준 흐름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인가?"대학이 대안사회로 기능하던 시대가 이미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대자보가 개인의 이름으로 붙었다. 개인들도 실명을 거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걸 보면서 기뻐할 수 있는가. 참혹한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개별적인 이야기가 어떤 경우는 아름다웠고 의미가 있었지만, 대자보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담론을 생성하려는 게 의미 있다는 평가와 별개로 과거의 대안사회로 여겨지던 대학이 얼마만큼 후퇴했는가를 보여준 게 아닌가. 그것이 20대라는 세대의 담론을 보여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명박산성'보다 진일보한 '기춘산성', 컨테이너에 비할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