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대성당포르투 여행의 시작점이라 불리는 포르투 대성당. 언덕 위에 있어서 도르강변과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송진숙
11일 아침 딸은 저가 항공사의 짐 검사가 엄격하다는 말에 엄청 떨고 있었다. 아무 계획 없이 온 여행이지만 나라 간의 이동인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가는 항공권은 예약을 하고 왔다. 유럽은 저가항공이 발달되어 있어서 기차 요금과 큰 차이가 없다. 저가항공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항목 당 추가 요금이 상당히 많이 붙는다. 기내 반입 가능 수하물의 크기도 규격이 정해져 있고, 무게도 10kg 이내여야 한다.
초저가 여행을 표방하는 우리는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갈로 가는 비행기를 최대한 저렴하게 예매하기 위해서 수하물 추가를 하지 않고 왔다. 딸은 짐을 자기 캐리어에 넣었다가 다시 빼서 내 캐리어에 넣는 등 밤늦게까지 소동을 벌인다. 포르투갈에서 묵을 숙소와 여행 코스도 짜지 않았는데 딸은 짐을 싸는 데 몰두해 있다. 포르투갈에서의 여정이 걱정되지만 딸이 너무 예민해져 있어서 말도 건네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딸은 뭘 빼서 짐을 줄여야 할지 고민을 했고 시간이 되자 결국 공항에서 정리하자며 숙소를 나섰다. 공항 가는 방법도 정하지 않고 나와서 갈팡질팡 하다가 길 찾기가 편할 것 같은 렌페를 타기로 하고 전철을 탔다.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초조하기도 하고 네 정거장만 가면 되기에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마드리드를 떠나려니 아쉬운 것이 많다. 호스텔 직원들은 매우 부지런해서 볼 때마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빈 방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어느 곳이나 깨끗했다. 또한 하루 종일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아 어깨가 들썩거려진다는 점도 좋았다. 저녁때는 탱고와 플라멩코 교실도 열려서 춤을 추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한 번쯤 배워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동참하지는 못했다. 격일로 스페인의 대표음식인 빠에야를 인당 2유로라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는데 역시나 먹지 못했다. 생동감 넘치는 마드리드를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마드리드를 떠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약간의 소란과 동시에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옆에 선 낯선 남자가 노란색의 뭔가를 내민다. 노란 커버의 핸드폰이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폰. 그렇다. 내 폰이었다. 내 폰을 왜 남이 건네줄까? 내가 흘렸나? 내 폰을 내민 건장한 흑인 아저씨는 소매치기에게 호령을 하며 등짝을 쳤다. 소매치기는 안 걸릴 수 있었는데 하는 억울한 표정인지 뭘 어쨌느냐는 표정인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서있었다. 미안하다거나 민망해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계속되는 아저씨의 닦달을 받고서야 다음 역에서 소매치기는 내렸다.
전철을 타고 5분도 안 되는 이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 앞에서 '멘붕'이었다. 우선 폰을 찾아준 사람한테 연신 "그라시아스, 땡큐"라고 했다. 무어라고 더 말할 정신도 없었고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지팡이를 짚고 있는 할머니를 부축하며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내렸다. 그제야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머니에 폰을 넣고 다니면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의 실수였다.
승객이 없는 한적한 새벽 전철에서도 소매치기를 당할 수 있구나. 누군가 말하길, 등에 맨 가방은 남의 것, 옆에 맨 가방은 남과 함께 공유하는 것, 앞에 맨 가방만 나의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겉옷 주머니에 넣었던 폰이 하마터면 남의 것이 될 뻔한 순간이었다. 구입한 지 한 달 밖에 안 된 새 폰인데. 마음씨 곱고 정의로운 사람 덕분에 스페인이 격하게 좋아졌다. 이번 여행은 행운이 따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라이언 에어의 악명높은 짐 검사에 긴장하여 다시 한 번 캐리어 정리를 했다. 아침 끼니용으로 챙겨온 샌드위치와 물은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버렸다. 기내용 캐리어를 재는 틀에 우리의 캐리어를 넣어 보니 들어갈듯 말듯 아슬아슬하다. 캐리어를 들고 보안검색대 앞에 섰는데 앞사람이 신발 벗고 혁대까지 푸는 것을 보니 긴장되기 시작했다. 난 예상과 다르게 몸 수색도 안하고 캐리어도 수월하게 통과시켜 줬는데 딸은 그렇지 못했다. 검색대 직원이 모니터를 보더니 캐리어를 열어 보란다. 직원 둘이서 짐을 샅샅이 헤쳐 보더니 핫팩을 꺼내든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라는 짧은 영어와 함께 보디랭기지까지 동원해서 설명하자 미소를 지으며 통과를 시켜 준다.
탑승구 앞에서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던 딸은 "엄마, 우리 것보다 큰 캐리어는 없는 것 같아요"라며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다. 비행기에 무사히 오르고 선반 위에 캐리어를 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륙한 지 한 시간 만에 포르투갈에 도착했다.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았다. 숙소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친절한 한국인을 만나 숙소의 이름과 위치를 소개받고 유심칩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정보가 전혀 없이 도착했기에 포르투갈 내에서 전화와 문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유심칩을 구입하여 공항 밖으로 나왔다. 안개가 잔뜩 끼어 있는 것이 몽환적이다. 몽환적인 분위기도 잠시 시간이 지나니까 춥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스페인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포르투갈 호스텔 겉보기로 판단하지 말길숙소가 있는 상벤투역까지는 공항철도를 타고 편히 왔다. 역에서 내려 숙소까지는 언덕길이었다. 거리풍경은 낡고 초라하다. 지도를 보고 잘 찾아온 것 같은데 숙소가 보이지 않는다. 헤매는 우리를 봤는지 중년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와 어디를 가냐고 묻는다. 숙소 주소가 써진 종이를 보여주니 저쪽이라고 알려준다. 그 길로 갔는데도 안 보여서 캐리어를 끌고 왔다 갔다 하니까 저 멀리서 걸어와 숙소 앞까지 데려다준다. 바로 코앞에 있었다. 호스텔 입구가 그냥 일반 건물처럼 소박해 보여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