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또하나의 약속 제작위원회
저는 한때 우리나라에서 광고비로만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어느 날 출근하는데, 회사 1층 복도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초조하게 서 있더군요. 동료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건네 들었다며, 회사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청년이 공장 기계에 깔려 죽었다고 했습니다. 보상을 요구하는 가족들이 회사로 몰려온 거라면서요.
전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죽은 청년이 있다는 사실도 그렇고 황망한 자식의 죽음 앞에 회사까지 달려 왔어야 하는 가족들의 입장이 말이죠. 당연히 나의 사랑하는 회사는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적절한 보상을 해주라 믿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농성을 시작한 걸 보면 말이죠.
가족들은 회사 1층 복도에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이 생전 녹음했다던 정태춘의 노래를 반복해서 크게 틀어 놓았습니다. 출퇴근 때나 점심시간에 우리 직원들은 죽은 그 청년의 노래를 귀가 쩡쩡 울리도록 들으며 나 자신이 죄인인양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숙이고 다녔습니다. 가끔은 드시라며 음료수를 놔드리기도 했고요. 우리들과는 다르게 무심한 표정으로 그 앞을 지나치는 회장님, 사장님, 이사님들의 태도에 혀를 내두르면서 말이죠.
그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넘어가니, 저를 비롯한 말단 직원들에게도 그런 상황이 힘들어지더군요. 완강한 회사보다도 끈질긴 가족에게 좀 지친 상태가 된 거였습니다. 그리고는 회사에서 건네주는 이런 저런 이야기 '친부모가 아니다', '얼마를 주기로 했는데 몇 배를 더 요구한다', '죽은 자식 가지고 장사한다 등등'의 얘기에 혹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입장이 달라지니 그들을 보는 시각도 변하더군요. 어쩔 줄 몰랐던 초반과는 다르게 나중에는 그들 앞을 지나며 경멸의 눈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회사에서 들은 온갖 파렴치한 말을 되새기면서 말이죠.
그 청년은 저와 비슷한 또래였습니다. 저처럼 정태춘 노래를 좋아했고 아마도 비슷한 영화와 책을 좋아했을 청년이었을 겁니다. 우리 집과 별반 차이도 없는 가족 성원들이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벌레 보듯하며 회사의 굳건한 조치에 응원까지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때 제가 괴물이 되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회사는 선량한 직원들을 모두 괴물로 만들었습니다저는 <또 하나의 약속>속의 오해를 안타깝게 생각하시는 부장님 글을 읽으며 당시의 저를 생각했습니다. 부장님 말씀처럼 영화에서 냉혈한으로 묘사된 그 인사담당자는 평범한 가장에 직장인이었을 겁니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분이셨을 수도 있지요. 저는 부장님도 좋은 아빠에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까지 한 솥 밥 먹던 동료들이 허기와 공포 속에 놓여있을 때 그들을 공격하던 사용자 편의 쌍용 직원들도 뭐가 다르겠습니까. 비정규직 처우개선 대신 자식 고용을 먼저 앞세운 분들도 모두 평범한 가장에 성실한 직장인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저처럼 한 발만 물러서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괴물이라 불립니다. 부장님은 아니라고 하시지만요.
글을 읽으며 부장님도 그때 저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한껏 멋을 내고 자랑스럽게 출근하는 회사 입구에서 추레한 모습에 결연히 서 있는 이들 앞을 지나며 마음 편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경멸하면 됩니다. 투쟁이나 하고 자식 목숨 값을 흥정하는 장사꾼으로 몰면 간단합니다. 내 소중한 회사를 해하려는 악의 무리처럼 보면 됩니다. 그 대신, 사실과 진실에 대해선 알고 싶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나 자신을 합리화시켜줄 출처를 알 수 없는 온갖 소문과 뒷담화에만 반응하면 됩니다. 이 모든 것이 괴물만 되면 아주 쉽습니다.
전 지금도 정태춘의 노래를 들으면 그 청년의 목소리가 오버랩 되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더불어 당시 임원들이 참 원망스럽습니다. 기업의 목표는 오직 오직 이익 창출이란 낡은 모토로 모든 사항을 보셨던 그 계산법이 말입니다. 광고비를 조금만 줄여서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시설 점검을 통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했으면 좋으련만, 그건 이윤창출과는 거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6년여의 근무 기간 중 그런 사례를 몇 번 더 보았으니 말입니다. 회사는 선량한 직원들을 모두 괴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적자생존이 판치는 한국 사회에서 이는 여전히 횡행하는 참으로 흔한 이윤 창출의 방법입니다.
삼성이 더 이상 직원들을 괴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