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소통이 시작되었다. 작년 초에는 개성공단 완전 폐쇄까지 논의되던 상황이었지만 최근에는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가 논의되었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바닥을 쳤던 지난 정권 탓에 박근혜 정부의 1년은 상대적으로 더 나아 보인다. '신뢰'를 강조하며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 평화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최근 남북관계 개선은 합당한 결과로 보일 수도 있다. 과연 현 정부의 1년은 신뢰를 쌓기 위한 대화와 행동을 제대로 실천했을까?
대화라는 뜻의 Dialogue. 즉 두 개(dia) +법칙(logue)이라는 뜻이다. 반면 독백이란 뜻의 Monologue. 하나(mono)+ 법칙(logue)이라는 뜻이다. 대화는 두 개의 법칙이 만나는 것이고, 독백은 하나의 법칙이다. 남북대화가 시작되었지만 현 정부는 사실 거의 독백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작년 초 한국은 북한에 개성공단 관련 대화를 하자고 했는데 이 때 우리는 북한을 적으로 상정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는 동안이었다. 올해 초에도 마찬가지다.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면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다거나 키리졸브 훈련과 겹친 일정을 양보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이는 북한을 두고 하는 우리만의 독백(monologue)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아예 사라지게 한 이명박 정부 이상의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협상을 주도해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남북관계의 당사자임에도 파탄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노력에 치중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양보나 북한과의 타협을 적에 대한 굴종으로 인식하는 강경한 자세의 대북 외교는 북한의 인내심을 바닥내기 십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일과의 회담을 통해 신뢰를 쌓은 경험이 있고, 현재 김정은 체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김정일 유훈 통치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 입장에선 관계 개선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압박 일변도로 나간다면 언제든 관계는 이전 정부 수준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따라서 상대의 입장을 인정하면서 양보와 타협을 할 수 있는 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정부와 달리 북핵 문제와 교류, 협력을 연계하지 않고 있다. 이 장점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대북정책 결정구조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의 정책 결정구조는 거의 대통령 개인 선호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안보실이나 통일부의 자율성이 거의 없고, 국정원의 지원도 부족하다. 합리적으로 정책을 조정하고 결정해서 대화에 임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통일부가 대북 정책의 실질적인 힘을 가지며 관계 부처들이 남북관계 개선에 지원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남북관계를 대통령 개인이 끌어나가기에는 미중 패권경쟁 등 주변 환경의 압력이 너무 거세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동북아 평화협력을 구상하며 다자안보의 틀을 주장했지만, 실제로 성과가 없었던 한미정상회담으로 인한 대미 발언권 약화와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으로 인해 우리는 '동맹 외교'의 압력에 더 크게 노출되었다. 따라서 한국 정부에 대해 느끼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은 앞으로 커질 것이라고 예상한다.'균형외교'를 위해서 미국의 동맹 강화 압력에 현 정부가 얼마나 견디느냐가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중국과 대만의 사상 첫 당국 간 회담을 눈여겨 볼 필요도 있다. 대만의 마잉주 총통 집권 이후 교류가 활발해진 중국과 대만은 최근 장관급 회담을 통해 상징적이긴 하지만 상설 기구를 만들며 핫라인을 개통하기로 논의했다. 아직 양안은 무력통일 원칙을 철회하지 않아 남북관계보다 더 불안정한 관계이다. 그럼에도 제안된 대화 시도였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중관계나 국내 정권교체에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통일부를 중심으로 하는 북한과의 상설 대화(dialogue)창구의 설치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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