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물상 여사장님 별명은... '삽다리 총각'

경기도 안성 K고물상 여사장 유병옥씨의 사는 이야기

등록 2014.03.06 10:45수정 2014.03.0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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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물상(안성 보개면 사무소 뒤) 직원들은 모두 그녀를 '사장님'이라 부르지 않고, '이모' 또는 '고모'라고 부른다. 그녀는 직원들에게 '삼촌'이라 부르며 존대한다. 그러는 게 서로가 좋아서이고, 자연스러워서이다. 


a 유병옥 유병옥 사장은 고물상을 하고부터 하루가 금방 간다고 했다. 고물  손님과 마을 손님 등이 끊이지 않고, 그들과 이야기 하며 맞이 하는 게 그렇게 좋단다. 이 직업이 너무 좋다며 자랑했다.

유병옥 유병옥 사장은 고물상을 하고부터 하루가 금방 간다고 했다. 고물 손님과 마을 손님 등이 끊이지 않고, 그들과 이야기 하며 맞이 하는 게 그렇게 좋단다. 이 직업이 너무 좋다며 자랑했다. ⓒ 송상호


"어, 남자 분인 줄 알았어요."

지난 4일 고물상에서 만난 그녀의 이름은 유병옥(55세).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처럼 이구동성으로 "남자 이름인 줄 알았어요"라고 한다. 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도 그녀에게 "당신은 남자 팔자라 열심히 일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릴 사주요"라고 했다. 그녀와 만나서 1분만 이야기 해보면 이름과 사주뿐만 아니라 행동과 말투도 남성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목소리도 허스키하다.

사실 그녀는 5년 전만 해도 남편과 함께 3대째 내려오는 배 과수원을 하던 농민이었다. 이런 그녀가 고물상을 하게 된 이유는 배농사의 어려움 때문이다. 우루과이라운드라는 역풍을 맞으며 배 농사는 힘들고, 돈은 안 되고. 나아가서 농가 빚은 자꾸만 불어 나가고….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돌파구가 필요하던 그녀에게 누군가 추천해준 직종이 '고물상'이었다. 웬만한 여성 같으면, 아니 남성일지라도 엄두도 못 낼 일에 그녀는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과수원 3천 평 중 절반을 사람을 사서 밀어버리고, 지목을 변경하고, 장비를 사들여 고물상 환경을 만든 것은 전적으로 그녀가 직접 해낸 일이다. 지금도 3천 평 중 절반은 남편이 배 농사를, 절반은 아내가 고물상을 하고 있는 셈이다.

a 고물 집게차 지금 '삼촌(여기선 유병옥 사장이 직원에게 '삼촌'이라고함)이 지금 고물 작업을 하고 있다. 직원들은 유병옥 사장에게 '이모' 또는 '고모'라고 한다고 했다.

고물 집게차 지금 '삼촌(여기선 유병옥 사장이 직원에게 '삼촌'이라고함)이 지금 고물 작업을 하고 있다. 직원들은 유병옥 사장에게 '이모' 또는 '고모'라고 한다고 했다. ⓒ 송상호


고물상하면서도 팔순 시모, 남편과 아들 섬겨


지금 그녀와 함께하는 사람은 상시 직원 두 명, 영업 담당 한 명 등 모두 3명이다. 모두 남성이다. 힘으로 일을 해내는 남성들에 비해 그녀는 여전히 여성스러움을 활용해 세밀한 일들을 해낸다.

"5년 전 처음 시작할 때 어려운 것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나온다.

"난 원래 컴퓨터랑 친하지 않아 애를 먹었어유. 그래서 사람을 들여 컴퓨터를 배웠쥬. 지금은 독수리타법으로 간단한 것만 할 줄알아유."

오전 5시 30분이면 일어나 화장을 하고, 6시면 가족 모두 식사를 시킨다. 그녀가 감당해야할 식구는 팔순 시어머니와 남편과 아들 등 세 명이다. 그녀는 사업을 하면서도 조금도 주부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연중 설과 추석 명절만 쉬고 363일은 연중무휴다.

a 집과 배과수원과 고물상 1500평 고물상 바로 밑에 배 과수원 1500평이 있다. 고물상은 아내가 경영하고, 남편은 과수원을 한다. 그리고 마을쪽으로 보이는 첫집이 유병옥 씨의 집이다. 여기에 유사장이 모시고 있는 팔순 시모와 가족이 산다.

집과 배과수원과 고물상 1500평 고물상 바로 밑에 배 과수원 1500평이 있다. 고물상은 아내가 경영하고, 남편은 과수원을 한다. 그리고 마을쪽으로 보이는 첫집이 유병옥 씨의 집이다. 여기에 유사장이 모시고 있는 팔순 시모와 가족이 산다. ⓒ 송상호


고물상이자 마을 사랑방

인터뷰를 하다가도 손님만 오면 자동적으로 일어나 나가서는 미소와 함께 "아저씨, 커피 한 잔 잡숴~"가 터져 나온다. "괜찮아유~"라고 하면 "그럼 물이라도 드릴까?"라는 후속 멘트는 항시 준비되어 있다. 

"우리 고물상엔 고물 손님 말고도 마실 손님이 많아요. 동네 분들이랑 남편 친구 분들이죠. 그 분들이 오면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가유."

이 집엔 동네 분들도 자주 온다. 그들은 마실 왔다가 농사에 필요한 기구들을 사간다. 그들은 헐값에 물건을 구입해 가서 좋고, 고물상은 팔아서 좋고. 헐값에 좋은 물건을 사간 동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농사지은 시금치 등 농산물을 선물로 가져오기도 한다.

여기엔 커피가 있고, 필요한 물건이 있고, 수다가 있고, '이모'의 따스한 마음이 있다. 그래서 여기는 고물상이면서 마을 사랑방이기도 하다. "우리 고물상은 매일 같이 마실 꾼들로 북적 대요"라는 그녀의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사람 오는 게 좋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누가 오나 기대가 되유. 난 이 고물상이 너무 좋아유. 동창 친구들에게도 '나 고물상 혀'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녀유~"

a 유병옥 5년 전만 해도 남편과 함께 배 밭을 일구던 농민 유병옥씨는 지금 고물상을 경영하는 CEO다. 이 일이 자기 천성메 맞다며 항상 즐겁다고 했다. 오늘도 고물 분리를 하면서 웃고 있다.

유병옥 5년 전만 해도 남편과 함께 배 밭을 일구던 농민 유병옥씨는 지금 고물상을 경영하는 CEO다. 이 일이 자기 천성메 맞다며 항상 즐겁다고 했다. 오늘도 고물 분리를 하면서 웃고 있다. ⓒ 송상호


"이모 손님왔어유, 삼촌 손님 받어유"

어렸을 적 동네에서 불리던 별명이 '삽다리 총각'이라는 그녀. 어렸을 적 동네 머슴아들을 주먹으로 휘어잡았다는 그녀는 골목대장이 따로 없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젠 중년이 되었다.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나아가서 고물상 사장으로서 주먹이 아닌 웃음으로서 삶을 당당하게 휘어잡아가고 있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평생 고물상을 하겠다고 했다.

오늘도 이 고물상에 손님이 오면 "이모 손님 왔어유", "삼촌, 손님 받아유"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신명 나는 하루를 열고 있을 게다.
#고물상 #고물상 여사장 #재활용 #유병옥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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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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