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5년간 재벌그룹 자산 77.6퍼센트 ↑'. 2013년 2월 27일 자 <연합뉴스>가 올린 기사들 중의 하나다. 재벌 성장에 관한 경제기사를 다루는 대목에서 저자가 활용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이 기사를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속으로 '역시 이명박이군' 하며 자칭 '경제 대통령'이 다스린 정부의 노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한국 대기업의 뛰어난 능력에 칭송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혹시 그가 친기업론자라면 주변 사람에게 재벌의 당위성이나 경제적 위상을 설파하는 논거로 사용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아서는 곤란하다. 자산은 순수한 자기 자본뿐만 아니라 부채도 포함한다. 자산 규모가 늘었다는 말 속에 부채 증가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빚도 재산으로 보는 사람들에게야 별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허나 그런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보통 사람들의 '상식'은 '자산'을 '부채'가 빠진 '순수한 자기 재산'으로 정의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위의 기사 제목은 재벌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줄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무능하고 불합리한 경제 정책을 호도하는 데 악용될 위험성도 있지 않을까.
다 좋다. 이명박 정부 5년간 재벌이 '성장'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기간 우리나라 경제도 진정한 의미에서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까. 건전한 경제 구조는 밖에서 오는 충격과 안에서 만들어지는 혼란을 잘 견딘다. 재벌의 성장 덕분에 우리 경제 구조가 외우내환에 단단히 맞설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경제기사가 제대로 말하지 않는 '진실'의 문제 28가지를 파고든다. 저자가 이 책에서 훑어 본 '진실'은 다양하다. 저자가 보기에 경제기사는 돈을 잃게 하는 통로다. 경제기사를 통해 돈 궁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업의 본질을 외면하거나 거품 낀 꿈과 희망을 선물하는 것도 경제기사가 저지르는 못된 짓들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은 경제를 어려워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늘날을 경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도태되기 쉬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사들이 경제기사를 비중 있게 처리하는 배경일 것이다. 사람들은 경제기사를 통해 자신의 경제 지식이나 경제 감각을 기른다.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나 관료들도 경제기사에 기대곤 한다. 경제기사가 '사실'뿐만 아니라 '진실'의 문제를 신중하면서도 공정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다.
현실의 경제기사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겉으로 보기에 세세하고 친절해 보이는 사실 위주의 설명은 우리 경제의 불편한 민낯을 감추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글머리에 인용한 기사도 마찬가지다.
'9988234'란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다 죽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전혀 다르게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 기업 숫자의 99퍼센트, 고용률의 88퍼센트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2~3년 이내에 죽는다'는 뜻이다. (88쪽)
빈말이 아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코트라(KOTR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자료를 보자. 2010년 한국의 기업 수는 312만 5,457개다. 이 중 대기업은 187개로 0.00006퍼센트, 중견기업이 1,291개로 0.04퍼센트를 차지한다. 나머지 99.9퍼센트는 중소기업이다. 압도적인비중이다.
고용 규모면에서도 중소기업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대기업이 전체 노동자의 7.5퍼센트, 중견기업은 7.6퍼센트를 고용하고 있다. 나머지 84.9퍼센트의 노동자는 중소기업이 고용하고 있다. 적어도 수치로만 보면 한국의 중소기업이 한국 기업 생태계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우리 경제가 탄탄해지려면 결국 전체 기업의 99.9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건강한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위 기사에서처럼 재벌의 '자산 규모 성장'을 알리는 일도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거대한 몸집을 갈수록 불리는 그들의 탐욕스러운 행태를 문제 삼는 일이 아닐까. 승자독식에 따른 경제 양극화의 주범이 재벌들이라는 게 명확히 드러나도록 말이다.
'민영화? 사유화가 바른 말이다'라는 제목으로 짚고 있는 사영화('민영화'가 아니다!) 관련 기사 문제도 살펴보자. 우리나라 대다수 언론은 기사에서 '사영화'나 '사유화'가 아니라 '민영화'라는 말을 쓴다. 문제는 저자의 말처럼 '민영화'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준다는 점이다. 말의 긍정적인 뉘앙스가 사영화의 폐해를 감출 수 있기에 말이다.
사영화의 폐해는 도로나 항만, 전기 등 사회간접자본(인프라)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족 등으로 '민간 자본'을 공공적인 인프라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만든 '민간 투자 사업'의 예를 든다.
저자가 보기에 민간 투자 사업은 자본의 배만 불려주는 세금 잡아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있다. 최소운영수익보장제도 같은 것 때문이다. 저자는 이 제도가 도입 취지와 관계없이 자본주의의 기본질서에 반한다고 일갈한다.
최소운영수익보장제도는 일종의 특혜다. 그리고 이 특혜를 방조 혹은 조장한 것은 정치권력이다. 사실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굳이 민간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인프라 건설과 운영이 가능했다. 돈이 부족했다면 국채나 지방채를 발행했으면 될 일이었다. 대체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무슨 이득을 보았는가. 민간자본은 어떻게든 자신들이 투자한 돈 이상을 회수해가는 자본가일 뿐이다.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민간자본을 끌어들인 건 어떤 '의도'가 숨어 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128쪽)
최소운영수익보장제도 자체는 2006년에 없어졌다. 물론 제도가 남긴 유물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정부가 2011년까지 최소운영수익보장 대상 민자고속도로 사업자에게 보전해 준 누적 금액이 1조 5,251억 원에 이른다.
앞으로도 6조 6000억 원 정도의 보전금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더 큰 문제는 항만이나 부두시설, 지하철, 경전철, 국도, 터널 등에 끼어든 민간 사업자들이다. 저자는 정부와 지자체가 이들에게 부담해야 할 보전금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한국전력공사(한전)의 천문학적 적자 문제도 결국은 '전력 민영화'의 결과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한전이 갖고 있는, 2012년까지 지난 4년의 누적 적자액은 8조 원에 이른다. 한전의 총 누적 적자 규모는 50조 원이다. 이런 천문학적인 적자 규모는 한전이 전기요금 인상의 구실로 자주 들이미는 단골 메뉴다.
그러나 한전 적자의 '진실'은 다른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기는 한전이 아니라 한국수력원자력이나 한전 자회사(남동발전, 남부잘전 등), 민간기업인 민자발전소 등에서 생산한다. 한전은 전기 생산 회사들이 만든 전기를 구입할 뿐이다.
그런데 각 구입처에서 사오는 전기의 구매가가 서로 다르다. 민자발전소에서 사오는 전기가 가장 비싸다. ··· 이들 민자발전소 대부분은 재벌이 운영한다. 포스코, 지에스(GS), 에스케이(SK)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발전회사는 이명박 정부 들어 해마다 영업이익률이 15~30퍼센트에 이르는 호황을 누렸다. 반면 한전의 원가보상률은 88퍼센트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말은 100원의 원가를 투입해 88원 정도를 번다는 뜻이다. 실제 한전은 민자발전소에서 170원에 전기를 사서 80원에 기업으로 공급하고 있다. (130쪽)
그러니까 한전은 국민 지갑에서 받은 돈으로 거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발전소의 전기를 비싸게 사들인 뒤, 그 전기를 그들에게 싼 값에 되파는 코미디 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대기업 발전회사에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 주는 전기 구매방식이 결과적으로 한전의 적자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기부를 다루는 경제기사의 행태도 저자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재벌들의 기부 소식을 상당히 비중 있게 전한다. 재벌의 사재 출연 소식은 굳이 홍보가 필요 없는 기삿거리다.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과 같은 보수 족벌 언론은 재벌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당연히 재벌의 '선행'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하지만 저자는 기부가 일상화된 나라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기부가 아름다운 건 분명하다. 다만 한 나라 전체의 복지 체계를 완성하는 데 기부는 분명 한계가 있다.
오히려 복지 수준은 기부와는 무관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기부가 가장 활발한 나라다. 하지만 질 낮은 복지 제도나 빈부격차 문제는,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갑부들이 내는 천문학적인 기부액이 무색할 정도로 극심하다. 이는 세금으로 복지를 유지하는 북유럽과 크게 대비된다.
기부와 관련되는 경제기사들은 궁극적으로 세금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기부가 권장되면 될수록 국가의 복지 시스템 완비보다 개인의 개별적인 선행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 늘어날 게 뻔하다. 같은 돈이라도 세금과 기부 중에서 골라서 내라고 하면 사람들은 기부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기부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확산되는 것에 반비례하여 세금으로 체계적인 복지 시스템을 구비하는 일은 더욱 더 멀어질 것이다.
기부문화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학교나 회사에서 만나는 기부 관련 행사는 흔한 일이 됐다. 그렇게 해서 우리 사회 전체의 복지 수준이 높아졌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무엇보다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 조세부담률 문제가 있다. 조세부담률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에 21퍼센트를 기록했다. 그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20.7퍼센트, 2009년 19.7퍼센트를 지나 2010년에 19.3퍼센트로까지 떨어졌다. 저자에 따르면 복지가 미비한 국가일수록 조세부담률이 낮다.
복지 사각 지대가 갈수록 늘어나는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송파 세 모녀 가정'과 같은 가구가 여기저기서 신음하고 있다. 제법 '화끈한' 대선 복지 공약을 내세운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가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노년층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이 된 박근혜 씨는 입을 싹 씻고 있다. 대신 '청와대 2중대'라는 조롱을 받는 여당이 이른바 '복지3법(기초연금법·장애인연금법·기초생활보장법)'을 들고 나와 바람을 잡고 있다. '송파 세 모녀 가정'에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복지 방안을 적용하면 '기초연금 0원, 월세공제 0원, 기초생활수급 0원'(<경향신문> 3월 7일 자 기사)인데도 말이다.
'사실'에 충실한 경제기사는 많다. 하지만 '진실'을 외치는 경제기사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경제기사를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기사가 전하는 '사실'의 이면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경제기사를 읽을 때는 '왜?'나 '정말?'과 같은 까칠한 질문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진실'을 모르는 것은 둘째 치고,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순한 양이 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돈과 시간을 잃는 것은 시간 문제다.
<경제기사가 말해주지 않는 28가지> (윤석천 지음 | 왕의서재 | 2014. 2. 28. | 279쪽 | 14,000원)
경제기사가 말해주지 않는 28가지 - 편집된 사실 뒤에 숨겨진 불편하고 낯선 경제
윤석천 지음,
왕의서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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